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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재에서. 연홍빛 산철쭉 꽃들이 이쁘다.
  곰재에서. 연홍빛 산철쭉 꽃들이 이쁘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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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에도 산행을 떠나고 싶었다. 산철쭉 꽃들이 만개해 있다면 행운일 테고 설령 듬성듬성 피어 있다 해도 이쁠 테니까.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기억에 남는 하루를 만들고 싶었다.

지난 4월 25일 오전 8시 경남 창원 마산역서 새송죽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출발하여 산행 들머리인 제암산자연휴양림(전남 보성군 웅치면)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40분께. 촉촉이 봄비 머금은 숲길에 접어들자 초록이 한층 싱그러워 보였다. 이따금 바람이 훅 지나갔는지 나뭇잎에 맺혔던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제암산(807m) 정상을 향해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오르며.
  제암산(807m) 정상을 향해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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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제암산 정상에서.
  장흥 제암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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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로 올라갈수록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어 앞서가는 일행이 마치 숨바꼭질하듯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조망도 아예 기대조차 할 수가 없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길 따라 걸어야 했다. 그렇게 1시간 10분 정도 갔을까, 짙은 안개 속에 어슴푸레 잠겨 있는 거대한 임금바위에 이르렀다.

전남 보성과 장흥군에 걸쳐 있는 제암산(帝岩山, 807m)은 정상의 바위를 향해 주위 바위들이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휘감은 안개 탓에 그 위풍당당한 임금바위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만 찍고 몇몇 일행과 함께 서둘러 곰재 쪽으로 향했다.

문득 안갯길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길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래는 신의 영역이니까 지금, 여기, 현재에 충실해야 하듯이 사방에 안개가 뿌옇게 낀 길 역시 바로 그 순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안개이기에 느끼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을 테니 시야를 가린다 해서 투덜거리기보다는 오히려 안개를 즐기고 싶어졌다.
 
    안개가 서려 있는 가족바위를 지나며.
  안개가 서려 있는 가족바위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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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진달래 꽃들은 처연히 지고 연홍빛 산철쭉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바위 틈새에서도 한 줌 흙만 있으면 이쁘게 피는 산철쭉의 강인한 생명력 또한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둥굴레 군락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자줏빛 할미꽃도 눈길을 끌었다.

산철쭉 산행의 백미, 곰재에서 간재까지
 

 
    한가한 걸음으로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걷고 싶었던 연홍빛 산철쭉 꽃길이 이쁘디이쁘다.
  한가한 걸음으로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걷고 싶었던 연홍빛 산철쭉 꽃길이 이쁘디이쁘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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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 20분쯤 기묘하게 생긴 가족바위를 지나게 되었다. 안개가 서려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인해 울퉁불퉁한 바위 모습이 아니라 그림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곰재까지는 0.5km. 곰재에서 간재에 이르는 길은 제암산 산철쭉 산행의 백미이다. 꼬불꼬불 연홍빛 산철쭉 꽃길이 한없이 이어져 참으로 이쁘디 이뻤다.

산철쭉 개화 시기에 비해 이른 산행이라 아쉬움도 있었으나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대로 기뻐할 줄 아는 게 나이 들어가면서 얻은 지혜이다. 망울만 맺히고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들도 어쩜 그리 예쁜지 정말이지, 행복한 꽃길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다면 좀 더 머물고 싶은, 한가한 걸음으로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걷고 싶은 그런 꽃길이었다.
 
    꼬불꼬불 연홍빛 산철쭉 꽃길에서.
  꼬불꼬불 연홍빛 산철쭉 꽃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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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암산 철쭉평원(630m).
  제암산 철쭉평원(6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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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재로 가는 길에서.
  간재로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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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산 미봉(666m) 정상에서.
  사자산 미봉(666m)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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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가 흩뿌리는 제암산 철쭉평원(630m)에서 일행과 같이 도시락을 먹었다. 배가 너무 고파도 걷기가 힘들다. 점심을 해결하고서 간재 방향으로 나 있는 산철쭉 꽃길을 설렘과 아쉬움이 뒤범벅이 된 채 계속 걸어갔다. 안개 속에 묻힌 소나무들의 자태가 정겨운 꽃길과 어우러져 어떻게나 아름다운지 절로 감동이 밀려왔다.

간재를 거쳐 사자산 미봉(666m) 정상에 이른 시간은 오후 1시 40분께.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고 우리는 이내 골치재 쪽을 향해 걸었다. 안개가 조금 걷힌 산길에서는 초록빛 나뭇잎들의 싱그러움이 돋보였다. 그런데 몸이 자꾸 지쳐 가서 힘들었다. 오르막길을 걸을 때는 털썩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함께하는 일행이 있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골치재 사거리에 3시쯤 도착했다. 일림산(667.5m)으로 오르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용추계곡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계곡에서 들려오는 맑은 물소리에 산행의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산행길에서 안개가 친구 되어 준 날, 안개한테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하루였다.

태그:#산철쭉꽃길, #곰재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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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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