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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전남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이자 목포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목포의 역사와 함께해왔던 양동교회
 광주 전남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이자 목포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목포의 역사와 함께해왔던 양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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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목포는 부산과 인천, 원산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항구도시로 유명했는데요, 특히나 목포는 항만 앞에 많은 섬들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대한제국이 자발적으로 개항한 1897년부터 해방 이후인 195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립니다.

하지만 목포는 나주와 군산처럼 일제의 수탈 현장으로서의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60년대에 시작된 경제 성장 시기부터 소외되어 크게 쇠퇴하는 아픔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인이 다수 거주했던 지역의 건축물(구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일본인 가옥 등)들은 지금도 구도심에 남아 있어서 번영과 아픔이 공존했던 역사를 증거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런 목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붕없는 건축박물관'으로 불리는 목포 구도심의 근대 건축물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목포의 역사와 근대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교회당
 
 광주 전남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이자 목포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목포의 역사와 함께해왔던 양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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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전남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이자 목포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목포의 역사와 함께해왔던 양동교회
 광주 전남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이자 목포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목포의 역사와 함께해왔던 양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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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부터 외국의 선교사에 의해 호남 지방에 유입되었던 기독교는 목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목포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1897년에 유진벨(배유지) 선교사가 목포 최초의 교회인 양동교회를 세운 것이 그 시작인데요, 천막을 치고 예배 드렸던 것을 시작으로 1910년에 석조 건물로 새로운 예배당을 세워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건물 좌·우측과 정면의 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들이 출입했던 좌측 문에는 가운데에 태극기 문양과 함께 '대한융희 4년'이라는 한자 문구가 아로새겨져 있고, 여성들이 출입했던 우측 문에는 '주강생 1910년'이라는 한글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또 정문(본래 2개였으나 1개는 종탑을 세우면서 폐쇄되었음)에는 돌조각으로 십자가가 음각(글자나 그림을 오목하게 파서 나타내는 기법)되어 있죠.

돌로 교회당을 지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각각의 문마다 다른 문양이나 문구를 새겨 놓은 것은 눈여겨 볼 만한 것이 아닐 수가 없죠. 양동교회는 건축양식뿐만 아니라 목포의 역사와 함께 한 교회로도 유명한데요, 먼저 이 교회를 세운 유진벨 선교사와 스트레이퍼 선교사는 각각 영흥학교(現 영흥고)와 정명여학교(現 정명여중·고)를 설립했고, 의료선교사인 오웬은 목포진료소를 만들어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또한 이 교회의 교역자이면서 '목포의 어머니' 다우치 치즈코의 남편인 윤치호 전도사는 공생원을 세워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이경필(제8대) 담임목사는 교인들을 비롯해 영흥학교, 정명여학교의 학생, 교사들과 함께 목포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전개함으로써 독립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또 박연세(제10대) 목사는 일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에게 '유일하신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찬양할 수 없다'는 설교를 남기며 신앙을 버리지 않는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역사에 기억될 순간을 양동교회가 함께해 왔기에 이 교회가 목포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의미가 깊은 곳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과거 목포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활용중인 목포근대역사관 1관
 과거 목포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활용중인 목포근대역사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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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목포일본영사관에서 사용했던 벽난로와 거울, 천장장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목포근대역사관 1관
 과거 목포일본영사관에서 사용했던 벽난로와 거울, 천장장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목포근대역사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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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목포근대역사관 1·2관

이번에는 목포 근대역사 문화공간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는 목포근대역사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은 특이하게도 1관과 2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두 곳 모두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건물(구 목포일본영사관-1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2관)들을 그대로 역사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먼저 살펴볼 1관은 1900년 완공된 옛 목포일본영사관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붉은 벽돌로 된 건물 외부와 벽돌로 쌓은 층간 허리 돌림띠, 앞으로 튀어 나와있는 중앙 현관 등이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실내의 천장장식과 벽난로, 거울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목포의 역사와 근대화,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운동의 모습을 담은 자료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과거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방공호를 전시실로 활용중인 목포근대역사관 1관
 과거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방공호를 전시실로 활용중인 목포근대역사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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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방공호를 전시실로 활용중인 목포근대역사관 1관
 과거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방공호를 전시실로 활용중인 목포근대역사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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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근대역사관 1관 뒷편에도 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1945년 사이에 만들어진 유달산 방공호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곳곳에 방공호를 만들어 장기전에 대비하고자 했는데요, 목포근대역사관 1관 뒤에 있는 방공호도 그러한 측면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방공호에 피신한 사람들의 모습과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된 사람들이 안전장비도 없이 감시받으며 방공호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실물 크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식민 지배가 안겨주는 서러움과 고통, 그리고 전쟁의 공포까지 느껴지는 전시관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던 곳을 과거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한 목포근대역사관 2관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던 곳을 과거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한 목포근대역사관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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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던 곳을 과거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한 목포근대역사관 2관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던 곳을 과거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한 목포근대역사관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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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근대역사관 2관은 1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일제강점기 당시 세워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1920년에 세웠던 목포 지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광복 후에는 해군사령부 헌병대가 자리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바뀌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죠.

이곳에는 과거 동척에서 사용했던 금고뿐만 아니라 과거 목포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 80점과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당시 시대상을 담은 사진 100점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특히 2관은 일본군이 독립군을 처형하는 모습이나 731부대의 생체실험같이 잔인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관람하실 때 이 점 꼭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과거 일본불교 사찰이었던 곳을 교회로 사용했고,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활용중인 이색적인 모습의 오거리문화센터
 과거 일본불교 사찰이었던 곳을 교회로 사용했고,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활용중인 이색적인 모습의 오거리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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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찰이었다가 교회당으로 바뀐 곳

한때 불교사찰이었던 곳이 교회로 사용되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목포에는 그런 이색적인 곳이 실존하는데요, 문화행사와 전시회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오거리문화센터가 바로 그것입니다. 1897년 개항과 함께 일본 불교가 유입되면서 불교사원인 동본원사의 별원이 이곳에 세워진 것이 그 시초입니다.

이 건물은 석조 건물로 지어졌지만 일본에서나 볼 법한 목조 사찰 건물의 외관을 지니고 있는데요, 일제강점기까지 일본 불교의 사찰로 사용되었다가 1957년부터 2007년까지 목포중앙교회 건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오거리문화센터'로 바뀌면서 전시·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종교인들의 유신독재 저항운동의 산실이었던 이 곳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목포시민들로 구성된 지도부가 회의를 열기도 했고, 국본이라 불리웠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6월 항쟁을 준비하며 투쟁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비록 다른 문화재보다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아보여도 한때 사찰이었다가 교회로 바뀌는 이색적인 일을 겪었고,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역사 속에 함께 있었던 목포의 중요한 문화재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s://gl-revieuer86.postype.com/post/3610855)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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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프로듀서보다 솔직담백한 국민리뷰어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