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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혼인 평등을'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혼인 평등을 요구하며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 "한국에도 혼인 평등을" 지난 2018년 7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혼인 평등을 요구하며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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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종종 겪었던 상황 중 하나가 외국에서 온 이메일이나 혹은 국제전화에 답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한국에서 성적소수자 관련 연구를 하려는 이들의 인터뷰 요청이었지만 이따금 생활밀착형(?) 질문도 받곤 한다. 가령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가 자기 아이들이 갈 만한 학교가 있냐고 묻는 경우다.

아마 질문한 사람도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평범한 학교를 다녔다간 차별이나 혐오에 마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녀분을 위한다면 한국에 오시지 않는 게 낫겠다고 답하고 싶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매번 '대사관에 문의해보세요'라고 말하기도 미안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틈틈이 각 나라의 대사관 홈페이지에 접속해보곤 한다.

내가 주로 살펴보는 곳은 '자주 묻는 질문(FAQ)' 페이지다.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곧 내가 마주할 가능성이 높은 질문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하루는 미국대사관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흥미로운 항목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동성 간의 결혼이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다.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질문을 클릭했다.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외국에서 부부관계를 인정받은 경우라면 결과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나의 기대를 배반하듯 대사관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은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같이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적인 나라에서 결혼을 한 경우에도 한국에서는 그 결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권위의 결정이 아쉬운 이유

다소 김이 새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순간이기도 했다. 대사관 홈페이지에 저런 문답이 올라와 있다는 것은 이미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같은 질문을 한 동성 부부들이 많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순간이 없었다면 나는 얼마 전 접한 사건을 한국에서는 예외적이고 특수한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영국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영국 국적의 남성이 결혼이민비자를 신청했지만 법무부가 이를 거부했고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지만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이었다. 여기서 '각하'란 국가인권위법에 따라 인권위의 조사 대상이 아닌 사건에 내리는 결정이다. 즉 진정 내용에 대한 판단이 아니며 사건이 '인권침해·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기각'과는 다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인권위가 발표한 입장처럼 한국 법원은 지금껏 동성부부의 혼인관계를 인정해오지 않았다. 때문에 동성부부가 혼인신고를 반려당해 법원으로 가도 이들은 똑같은 결과를 마주했다. 그래서 인권위는 법원이 민법에 대한 '사법적 해석'을 바꾸지 않는 이상 동성부부의 혼인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듯하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원의 판결에 개입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보면 이번 사건은 법원이 아니라 법무부가 동성부부의 결혼이민비자를 거부한 일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인권위법에 차별 행위를 했을 경우 조사를 해야 한다고 규정된 '국가기관'에 속하지 않나. 나는 인권위의 이번 결정을 이해한다. 다만 손쉽게 법원에 공을 넘기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냐는 질문은 하고 싶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긴급 회견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스포츠분야 폭력-성폭력 완전한 근절을 위한 특별조사단 구성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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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 불인정'은 이미 차별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권위는 '각하는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동성 결혼에 대한 인권위의 공식 입장은 아직 없지만, 성적 지향에 따라 고용이나 재화 이용 등에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권위의 기본적인 입장인 만큼 향후 논의를 해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을 덧붙이기도 했다.

인권위의 이 같은 입장이 이전에 비하면 전향적이기에 환영할 만했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한 아쉬움을 느꼈다. 성적 지향에 따라 혼인 관계를 달리 인정하는 것은 이미 차별이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재화의 이용과 고용 등에 이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권위가 동성 결혼에 대한 공식입장을 논의까지 하면서 향후에 정할 필요는 없다. 인권위가 가진 기본 입장에 따라 '그것은 차별이다'라고 확인만 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인적인 일로 만난 한 외국인은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보다 넓은 '가족용 기숙사'와 1인 가구를 위한 '개인용 기숙사'를 따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동성인 반려자가 있는데 과연 가족용 기숙사를 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안타까운 사정이지만 방법이 없을 듯했다. 일단 기숙사 관리자들이 동성 부부를 가족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낮았다. 하지만 가족용 기숙사를 주지 않는 결정에 대해 반발한다고 해도 부부관계를 인정받은 서류 한 장도 없이 벌이는 싸움에 과연 승리의 가능성은 있을까. 아마 결과는 뻔할 것이다.

제도가 사람을 좇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이 '동성 부부의 혼인 관계를 인정하면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에 혼란이 올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를 이유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견고한 질서는 상상 속의 개념이며 그렇게 힘이 세지도 않다.

대가족에서 4인 가족으로 다시 1인 가족으로 가족의 형태가 급변해온 것이 그 증거다. 이 과정을 우리가 그렇게 혼란스럽게 받아들였느냐를 따져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1인 가구가 '싱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특별한 존재로 간주되어 주목 받았던 것도 벌써 과거의 일이다. 이제 혼자 사는 사람은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혼란'은 다른 이유로 발생한다. 제도가 사람을 좇지 못할 때다. 가령 '1인 가구 문제'는 1인 가구의 존재 자체를 문제시 하는 게 아니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하게끔 만들 제도가 없는 상황을 지시하는 표현이다. 동성 결혼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성 부부와 달리 동성 부부에게만 결혼이 인정되지 않고 부부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을 때, 동성 부부들은 제도 밖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 쪽이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할 때 동의서에 서명은 어떻게 할지,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한 쪽이 사망했을 때 거주하던 집과 함께 모으던 재산의 상속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이성애 부부와 다르게 결혼 이후 제도적 지원 없이 함께 살 집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이 모든 문제에서 자구책을 마련해두어야만 한다.

사회적 혼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일상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제도의 밖에서 개인들이 자구책을 찾아다니는 상황. 나는 그런 개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을 계속할 정도로 불안에 떠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인권위의 이번 입장이 한편으로는 아쉬운 이유다. 우리는 보다 현실을 반영한 진전된 입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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