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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화씨는 2013년 한강에 투신한 시민을 구조한 공로로 남상호 당시 소방방재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정주화씨는 2013년 한강에 투신한 시민을 구조한 공로로 남상호 당시 소방방재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 정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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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0일 22시 20분경. 한 시민이 한강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생명의 끈을 놓으려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정주화 소방관이 우연히 목격하고 본능적으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모든 소방관의 기도처럼 한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뒤늦게 그의 선행이 알려지며 이곳저곳으로부터 감사와 격려의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 소방관은 소방방재청장으로부터 표창도 받게 된다. "소방관은 월급이 아닌 명예를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다. 단순히 월급만 보고 하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의미다.

때로는 크게 다칠 수도 있고 현장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도 다가온다. 이 모든 희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소방관이란 명예이자 사명감 아닐까.

특채로 구급대원이 되어 화재진압과 구조 분야 선배들로부터도 인정받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했다. 왜 그랬을까? 지난 2일 이제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직 구급대원 정주화(36)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어려운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 맨 처음 소방관이 된 것은 언제인가?
"2011년 특채로 구급대원 시험에 합격해서 그 이듬해 94기로 서울소방학교에 입교해 정식 교육을 받고 서울 영등포소방서 대림안전센터와 당산안전센터에서 약 5년간 근무했다."

- 소방관이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부천 세종병원과 서울 삼성병원 흉부외과에서 3년간 근무했다."

- 어떤 계기가 있어서 소방관을 하게 되었나?
"병원 근무자들의 이직률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병원을 그만둔 동료들의 경우 국과수 검시관으로 가거나 아니면 학교 보건교사, 의료심사평가원, 또는 보건직 공무원 등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활동적인 성격과 적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방관이란 직업에 도전하게 됐다."

- 소방에 입문한 후에는 주로 어떤 부서에서 근무했는가?
"간호사 면허를 가지고 구급대원 특채로 입사를 했기 때문에 구급대원과 구급반장으로 일했다."

"욕설과 폭행 당하면서 참고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 들어"

- 소방관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아직 시민들의 안전 의식 수준은 많이 미흡하다고 느꼈다. 구급차를 부를 상황이 아닌데도 본인들의 필요에 따라서 출동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일전에 한 어린이의 치아가 빠졌는데 자동차나 택시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구급차로 병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한 경우가 있었다. 현장에서 그 아이의 부모를 만나 단순히 치아가 빠진 경우에는 구급차로 이송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내가 청와대의 누구를 안다. 당신 이름과 소속을 밝혀라. 당신 옷을 벗겨버리겠다'고 말하며 협박까지 해왔다.

단순외래인 경우에는 법에 따라서 출동 거부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말 구급차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드리고 구급 출동을 거부하면 협박을 당하거나 욕설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두 번째로 느낀 점은 국가가 절대로 날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방관으로서 현장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건 사고에 연루되는 경우가 있다. 신속히 구급 출동을 하다가 접촉사고라도 나면 민원을 방지하기 위해 구급대원들이 자비로 상대방의 수리비를 지불하기도 하고 출동 중이라고 해도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자비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개선이 되어 가고 있지만 마음 편히 소방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강력한 법과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다. (지난 2월 21일, 법무부는 소방청, 정부법무공단과 '소방공무원 직무 관련 법률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소방관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을 때 정부법무공단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 편집자말)

세 번째로 느낀 점은 소방을 오히려 잘 아는 사람들의 갑질이 심하다는 것이다. 각 소방서에서는 소방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시민으로 구성된 의용소방대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의용소방대원들이 불필요한 외래진료 상황에 구급차 출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드리고 구급 출동을 거부하자 오히려 소방서장에게 해당 구급대원이 불친절하다고 민원을 넣기도 했다."

-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술에 취한 사람(주취자)들로부터 듣는 업신여김과 욕설이 정말 힘들었다. 한 번은 현장에 출동해서 '신고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 신고자가 다짜고짜 하는 말이 '그래. 이 개XXX, 내가 신고했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다른 욕설도 참기 어렵지만 특히 부모를 욕하거나 심지어 상대방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을 때는 정말 참기 어려웠다.

사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심각한 수준의 음주로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셨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다. 그런데 구급대원이 되어 현장을 다니다 보니 어릴 적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곳곳에 있어서 많이 힘들었다."

- 그런 심각한 수준의 폭언과 폭행을 당했을 때 심정은 어땠나?
"한 번은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구급차에 머리를 박으며 내 손으로 내 얼굴을 직접 때린 적이 있었다. 심각한 자아파괴를 직접 경험한 순간 이러다가 정말로 큰 일이 나겠다 싶어 너무 무서웠다. 내 가족을 뒤로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현장활동을 하는데 이런 몰지각한 사람들로부터 욕설과 폭행을 당하면서 참고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매일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 분노조절장애로 한동안 고생했다고 들었다. 그것이 퇴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나?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음악치료, 미술치료, 그리고 상담센터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가격이 비싸서 고민하던 차에 서울시에서 서울시 공무원과 지하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상담센터인 '서울시 힐링센터 쉼표'라는 곳을 방문해 6개월 동안 꾸준히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지속적으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다 보니 각종 설문에서도 나는 항상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상담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자극 상황에서 탈출, 즉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거나 퇴사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외부자극을 최소화시키는 방어막을 형성한다면 가끔씩 오는 자극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으나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은 마치 잔 속에 넘치는 물과 같아서 언제고 다시 터질 수 있다는 진단에 따라서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전직 구급대원 정주화씨가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6개월간 상담을 받은 상담카드
 전직 구급대원 정주화씨가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6개월간 상담을 받은 상담카드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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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에도 힘든 일 때문에 자살한 소방관 동료가 있다고 들었다.
"소방관이란 업무가 일반인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에 수시로 노출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쌓여 서서히 소방관의 몸과 마음을 멍들게 만든다. 내가 퇴사한 그해 겨울 소방학교 동기였던 친구가 소방서에서 목을 매 자살한 일이 있었다. 지금도 내가 퇴사할 때 그 친구를 함께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 소방관을 그만두는 날 힘들지는 않았나?
"동료들과 간단하게 송별회를 하고 나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하며 펑펑 울었다. 경북 울진이 고향인 내가 서울시 공무원이 되었다며 가족 모두 기뻐했던 일, 사람을 구해서 상도 받고 텔레비전에 나왔다며 모두들 자랑스러워하셨는데 그 기대에 못 미친 것 같아서 많이 슬펐다."

- 소방서를 퇴사한 이후에는 어떤 일들을 하면서 지냈나?
"오롯이 나를 찾는 일에 몰두하면서 지냈다. 소방관을 그만두고 1년 동안은 국립공원 관리공단 소속의 북한산 산악구조대에 근무했다. 비록 월급은 박봉이었지만 자연 속에서 힐링하며 근무할 수 있었다. 또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해 본격적으로 크로스핏(Crossfit) 대회에도 출전했고 서핑도 즐겼다."
 
북한산 산악구조대에 근무하던 시절 정주화씨가 암벽등반에 나서고 있다.
 북한산 산악구조대에 근무하던 시절 정주화씨가 암벽등반에 나서고 있다.
ⓒ 정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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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면?
"비록 적지 않은 나이지만 또 다른 인생의 꿈을 찾아서 자아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발 내디디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일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동안 생활체육 2급 자격증도 취득했고, 수제맥주 자격증, 비어 소믈리에, 그리고 양조과정도 수료했다. 앞으로 작지만 멋진 수제맥주 가게도 오픈할 계획이다."

- 아, 그런가? 술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수제맥주 가게를 오픈한다는 것이 놀랍다.
"(웃음) 비록 주취자들로부터 힘들어 소방관이란 직업을 그만뒀지만 좋은 사람들과 감성에 취해 절제하면서 마실 수 있는 수제맥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는 항상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했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맥주 브랜드를 개발하려고 한다. 자리가 잡히면 소방관을 위한 'Hero 할인'도 준비 중이다."

- 끝으로 소방관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비록 나는 회의감과 자아를 찾기 위해 소방을 나왔지만 자신의 생명의 끈을 절대로 놓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깨어있는 사고를 가진 선후배의 노력으로 앞으로 소방이 더 발전하기를 기도한다. 항상 현장 활동에서 안전에 유의하고 매일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앞으로도 나의 주어진 자리에서 소방을 응원하는 영원한 서포터즈로 남고 싶다."

태그:#소방관, #구급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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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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