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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를 느리지만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28년 묶여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이 높은 국회의 입법 장벽을 넘어 개정됐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시작됐습니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짚어봅니다.[편집자말]
지난 7일 오후 성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충남 태안화력에서 나홀로 근무하다가 숨진 고 김용균씨의 장례가 사고 58일 만에 민주시민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성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충남 태안화력에서 나홀로 근무하다가 숨진 고 김용균씨의 장례가 사고 58일 만에 민주시민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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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21세기의 발전소 역시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다. 태안 9·10호기는 신규 설비임에도 외주화와 경쟁체제를 전제로 설계와 시공이 이뤄져 타 발전소보다 열악한 작업환경을 갖게 되었고, 이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더욱 위협했다.

태안화력인권실태조사단은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 이상으로 석탄이송운전업무 전반에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산인권센터와 인권운동사랑방 등 6개 인권단체와 노무사, 연구자들로 꾸려진 태안화력인권실태조사단은 김용균씨가 숨진 이후인 지난해 12월 27~28일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조합원 등 노동자 48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를 벌인 바 있다.

추락에 떨고, 가스에 중독되고, 벨트에 휘말리고

석탄 하역 후 거치는 시설은 '저탄장→ BB(Blending Building: 혼탄설비)→ SCB(Screen & Crusher Building: 탄을 거르는 설비)'이며, 이 모든 공정은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되어 있다.

컨베이어 벨트의 길이는 수킬로미터에 이르고 높은 곳은 70~80m 이상이 되지만, 바닥이 튼튼하지 않다. 탄을 저장해 쌓아두는 옥내 저탄장도 건물 높이가 50m 이상이다. 건물 꼭대기의 하역기를 점검할 때 통로 쪽 난간에 안전 고리를 걸지만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저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가스에 노출되어 두통 등을 호소하고 있다. 일산화탄소 농도가 30ppm이상이면 현장 출입을 해서는 안 되지만 언감생심이다. 노동자들은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구토를 하면서 일을 한다. 저탄장의 가장 큰 문제는 석탄에 저절로 불이 붙는 자연발화인데, 이처럼 불이 나서 일산화탄소 농도가 치솟아도 진화를 위해 저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계속 돌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 점검과 낙탄 처리의 위험은 널리 알려졌지만,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으니 기가 막혔다. 이상 부위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보고하기 위해서는 돌아가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나 회전체 가까이로 몸을 집어넣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찍은 영상을 보니 금방이라도 회전체에 빨려들어갈 것처럼 아찔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낙탄을 제거하다 삽이나 봉이 빨려 들어간 경험을 했고, 삽‧봉을 놓는 타이밍을 놓쳐 끌려가 부딪히는 일도 겪었다. 빨려들어간 삽 때문에 벨트를 정지해야 할까봐 붙잡고 있다 같이 끌려간 경우, 헬멧이 벨트에 닿았는데 다행히 벗겨져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 회전체에 옷이 빨려 들어가 30분을 어깨를 긁힌 채 버틴 경우 등 아찔한 순간에 대한 증언이 넘쳐났다.

직무 전 교육도, 일상적 안전교육도 없다
  
고 김용균씨는 겨우 3일 교육받은 채 현장에 투입되었다. 비슷한 사례가 수도 없었다. 발전소의 계통, 설비 위치에 대해서만 대충 교육을 받거나, 그런 교육도 전혀 받지 못하고 근무자들끼리 알아서 교육하라며 바로 투입된 노동자도 있었다. 교육해줄 선임도 없어서 독학을 하거나, 다른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물어물어 배운 경우도 있었다. 본인이 다루는 설비가 어떤 것인지, 업무는 앞뒤 공정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지 못한 채로 투입된 노동자들이 어디가, 또 무엇이 위험한지 제대로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인력이 부족해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일상적인 안전 교육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을 받지 않고 사인만 했다는 증언이 많았고, 교육을 받았지만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인권실태조사단은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들의 발전소 내 사고사례나 위험상황에 대한 정보량이 차이나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는데, 이러한 노동자 내 정보격차는 일상적인 안전 교육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나마의 안전 교육도 교육이라기보다는 '너네가 이렇게 하니까 사고가 나지' 등 질책에 가까웠다는 증언도 있었다.

부실한 설비와 소용없는 장비
 
태안화력발전 내부 모습.
 태안화력발전 내부 모습.
ⓒ 시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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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통해 많은 설비들이 있으나 마나한 부실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상황에서, 더 강도 높은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낙탄을 빨아들이도록 설치한 버큠클리너는 몇 번 써보니 차라리 삽질이 낫다고 판단될 정도로 부실했고, 탄을 거르는 SCB의 배관은 잘못 설계되어 자주 막히는 바람에 노동자들이 들어가 막힌 석탄을 뚫다가 큰 석탄에 맞아 다치거나 배관으로 같이 쓸려 내려갈 위험에 노출되고 있었다.

개인에게 지급되는 안전장비가 산업안전보건규칙에 미달하거나, 작업환경 상 실제로는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회전체를 취급할 경우 손에 밀착되는 장갑을 지급해야 하지만 목장갑을 지급해 장갑이 빨려 들어가 손을 다친 노동자가 있었다. 또한 방독마스크가 부족해서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저탄장에서 먼지만 막는 방진마스크를 사용하거나, 안전띠가 회전체에 말려 들까봐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쳐도 사비로 통원, 산재처리는 꿈도 못 꿔

지난 5년간 한전의 전체 재해자 중 하청업체노동자는 95.7%로, 서부발전 역시 95.5%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서부발전은 지난 5년간 산재보험료 총 22억 원을 감면받았으며, 태안사업소 역시 3년 연속 '무재해 사업장'으로 정부 인증을 받았다.

하청노동자들의 부상은 일상적이지만 산재처리를 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사비로 한다. 산재가 회사 통계에 잡히면 재입찰시 불리하기 때문이다. 산재처리의 어려움은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발전기술의 경우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는 공상처리조차 별로 없다.

사무실에 있는 구급상자로 처리가 안 되는 큰 부상이 발생할 경우 잠시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 다녀오지만, 대체근무자를 당장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회사로 복귀하여 다시 일을 한다. 뼈가 보일 정도로 손이 찢어졌지만 다시 돌아와 일했다는 노동자도 있었다. 또한 원청엔 의무실이 있고 간호사들이 상주하고 있지만, 오히려 더 위험한 업무를 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이를 이용하지 못한다. 최근엔 일하다 계단에서 떨어져 다친 노동자가 산재처리를 시도했지만, 산재처리는커녕 병가조차 연차를 다 소진한 후 사용하게 해주겠다고 한 일도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나

태안화력 하청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시설과 설비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에 수도 없이 설비개선을 요구해 왔으나 비용 등을 이유로 묵살 당했다. 원청인 서부발전이 책임지고 설비를 개선한다면 위험을 훨씬 줄일 수 있다.

둘째, 인력 충원을 통해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량을 맞춰야 하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가 멈출까 삽에 딸려가도 놓지 못하고, 위험해도 풀코드를 당길까 말까 고민하는 생산 압박을 줄여야 한다. 이러한 압박을 줄이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인력 충원이다. 인력 충원이 되어야만 교육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

셋째, 위험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조직문화 및 제도가 필요하다. 위험업무를 하청이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산재발생률은 하청업체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재계약시 불이익을 고려해 산재 처리를 꺼리고, 하청의 산재통계는 원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원청은 하청의 산재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작업장의 위험을 체계적으로 감춘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위험을 드러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조직 내에서 고민해야 한다. 원청이 하청업체의 산재를 줄이기 위해 움직이고, 하청업체가 산재발생을 숨기지 않을 조직문화와 이를 장려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넷째, 노동자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 태안화력 9·10호기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산업안전보건법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현장이었다. 외부의 관리감독은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한계가 있다. 매일 그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원청과 하청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지키라는 요구를 할 수 있도록, 비상시 현장 판단으로 조치를 해도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힘이 강화되어야 한다.

태그:#태안화력, #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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