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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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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일,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공개 소환한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사법농단 수사가 막바지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그 다음은 재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재판을 누가 할 것인가?

먼저 사법농단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판사가 적지 않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법원 스스로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며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한 현직 법관만 13명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공소장에 언급된 전현직 법관은 모두 100명에 가깝다. 물론 공소장에 언급됐다고 해서 모두 사법농단에 연루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규모가 이렇다면 재판부 구성부터 과연 공정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사법농단의 구조다. 이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법원행정처 차장-법원행정처 심의관 혹은 일선 재판부 순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최상위 의사결정권자였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임종헌 전 차장을 거쳐 하급자인 심의관 등에게 전해졌다고 본다. 자연스레 피의자들의 혐의는 '상급 공무원이 하급 공무원에게 직권을 남용,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가 됐다.

스스로 만든 '방어논리'일까

그런데 사법농단에 연루된 몇몇 판사들은 최근 재판에서 자신 또는 동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직권남용의 성립여부를 깐깐하게 따졌다.

김연학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 시절인 2016년 3월, 양승태 대법원에 비판적인 법원 내 소모임을 분석한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문건을 작성했다. 그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불법사찰과 문화예술인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 운영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은 최윤수 전 국정원장 2차장의 1심 재판장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최 전 2차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문에는 직권남용의 성립요건으로 ▲ 상급 공무원의 직무 권한 범위 ▲ 지시 경위와 목적 및 내용 ▲ 양쪽이 직무수행의 위법성을 인식했는지 ▲ 직무수행으로 인한 결과 및 그 이익의 귀속 주체 등을 종합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통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직권남용 행위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나온다. 김 부장판사는 이에 비춰볼 때 최 전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2011년 '박원순 제압' 사이버활동을 벌인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신승균 전 국익전략실장의 직권남용 사건과 사뭇 다른 논리다. 이 사건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강성수)는 '하급 직원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항변한 두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업무로 볼 수 있고, 그것이 상급자 지시 없이 이뤄질 수 없다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이유였다(관련 기사 : '박원순 제압' 유죄 판결 논리, 이 남자에게도 통할까).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부장판사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 사찰 대상이었던 사촌동생 차성안 판사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로 회유하려고 했다는 의혹의 당사자다. 차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백낙종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의 재판에서 '직권남용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정농단·불법사찰사건 항소심 재판장으로, 최근 우 전 수석을 구속만료로 풀어줬다(관련 기사 : 우병우는 왜 풀려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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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판사들은 이 사법농단의 구조를 흔들었다. 이들은 ▲ 지시의 위법성 ▲ 업무가 일상적·반복적으로 수행된 점 등만으로 직권남용으로 봐서는 안되며 ▲ 그 업무로 인한 결과와 이익이 어디로 갔는지까지 봐야 한다고 했다. 법원 스스로 '방어논리'를 만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불거진 배경이다.

그래서 줄곧 공정한 재판을 위해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을 탄핵하거나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여야는 법관 탄핵 자체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고, 사법농단의 피해자 차성안 판사가 '법관 탄핵을 진행할 국회의원을 함께 찾자'고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린 청원은 목표 인원 10만 명의 1%만 겨우 넘기고 끝났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특별재판부법은 아직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법원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김명수 대법원이 시도는 했다. 징계 대상 중 일부 판사들은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가 결론을 내놓기 전 재판 업무에서 배제됐다. 그러자 몇몇 법원장, 고등법원 부장 등 고위 법관들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 선고가 아니고서는 파면되지 않는다'는 헌법 106조를 근거로 강하게 항의했다. 헌법 소원을 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남은 카드는 단 한 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0월 오전 서초동 대법원에 마련된 법사위 국정감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 국감장 입장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0월 오전 서초동 대법원에 마련된 법사위 국정감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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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정한 사법농단 재판'을 담보할 카드는 단 하나, 법원의 2월 정기인사가 남았다.

법원행정처는 1월 28일 고등법원 부장판사, 2월 1일 나머지 법관 인사를 발표한다. 보통 판사들은 같은 법원에서 2년을 보낸 뒤 다른 법원으로 옮겨가거나 기존 근무처에 남더라도 다른 종류의 재판을 맡는다.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를 바라보는 법원 밖의 의심을 거둘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시사인>은 청와대, 국회, 검찰 등 국가기관 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법원만 유독 큰 폭으로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대법원은 2017년(4.8점)보다 신뢰도 점수가 1.38점 떨어졌는데, 최근 5년간을 보면 1년 사이에 신뢰도가 1점 이상 떨어진 국가기관은 2015~2016년 박근혜 청와대가 유일했다.

이미 사법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법원은 무엇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지켜낼 것인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법조계 안팎에서 법원 정기인사를 주목하고 있다.

태그:#사법농단, #양승태, #소환, #법관 탄핵, #정기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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