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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하나둘 사라지는 새끼 오리... 대체 무슨 일이

사람들에게 올해 기억에 남는 자연현상이 있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은 지난여름의 혹독했던 무더위를 떠올릴 것이다. 일부는 지난가을 남부 지방을 할퀴고 간 태풍을 언급할 테고.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지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지난 5월과 6월의 폭우였다. 사흘 동안 내리부은 두 번의 폭우는 내가 처음 겪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5월의 폭우는 도로시와 아이들을 만나게 했고, 6월의 폭우는 생태계의 차가운 현장을 목격하게 한 것.
 
 탄천에 폭우가 내리면 징검다리는 잠기고 물이 급류를 이뤄 그 자리를 짐작케 한다.
▲ 징검다리 있던 자리  탄천에 폭우가 내리면 징검다리는 잠기고 물이 급류를 이뤄 그 자리를 짐작케 한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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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가 내려 평소 물새들이 올라 먹이활동을 하던 섬이 잠겼다.
▲ 탄천의 작은 섬  폭우가 내려 평소 물새들이 올라 먹이활동을 하던 섬이 잠겼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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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에도 폭우가 내렸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는 새벽이 되며 폭우로 변했다. 5월의 폭우가 연상될 정도였다. 아침에 내다본 바깥은 물 그 자체, 풍경은 물론 모든 소리조차 비에 묻혔다. 말 그대로 물 세상이었다.

탄천에 나가려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아 좀 잦아진 점심 즈음에 나가보았다. 노란 통제선이 쳐진 탄천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산책로까지 물이 차 있었다. 노란 형광 조끼를 입은 사람들과 경찰들만이 탄천 입구를 오가며 통제를 했다.

얼핏 보기에는 지난 5월의 폭우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상류 지역에서 교량 보수 공사와 미금보 해체 공사를 하고 있어서 그 잔해들이 떠내려왔다. 마치 굶주린 사자 떼에 쫓기는 누 떼의 모습이 저럴까! 가뜩이나 폭우로 잔뜩 불어난 탄천은 각종 부유물이 위태롭게 떠내려가는 아수라였다.

산책로에 물이 빠진 오후 늦게 탄천으로 나갔다. 큰 소리를 내며 거칠게 흐르는 물 위에는 쓰레기만 떠내려갔고 물새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리들은 기슭에 올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깃을 말리고 있었고, 왜가리 등 백로들은 나무 위에 올라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한 물을 피해서 뭍에 오른 모양이었다.

산책로로 올라온 오리 가족
 
 물억새와 수초가 누워 잔잔한 곳으로 다닌다.
▲ 도로시와 아이들  물억새와 수초가 누워 잔잔한 곳으로 다닌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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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로 불어난 물을 피해 기슭으로 올라왔다.
▲ 도로시와 아이들  폭우로 불어난 물을 피해 기슭으로 올라왔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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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만난 청둥오리 가족, 도로시와 아이들도 기슭에 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숫자를 세어보니 전날과 다름없었고. 역시 노련한 어미가 새끼 오리들을 잘 이끈 덕분이라 생각했다. 이동할 때도 물억새와 수초가 누워 물살이 약해진 곳으로만 다녔다.

내가 서 있던 곳과 가까워 그랬는지 도로시가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는 게 또렷하게 들렸다. 그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들렸고 아이들도 평소와 다른 것을 느꼈는지 어미 곁으로만 뭉쳐서 다녔다.

당시 도로시네 아이들보다 늦게 태어난 새끼 오리들이 있었다. 두 가족으로 모두 6월 6일에 부화한 흰뺨검둥오리들이다. 흰뺨이네로 이름 지은 가족은 일곱 마리가 태어나 그즈음 두 마리가 남았고, 검둥이네로 이름 지은 가족은 아홉 마리가 태어나 여섯 마리가 남았다.

이 두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어 탐색에 나섰다. 새끼 오리들이 아직 작아서 간밤의 폭우를 이겨냈을까가 걱정되었던 것. 그런데 두 가족 모두 무사했고 내게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산책로를 따라 탄천과 기슭을 살피며 걷는데 멀리서 오리 가족이 보였다. 산책로를 걷고 있던 오리들.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들이었다. 아이들을 세어보니 여섯 마리. 검둥이네였다.
 
 불어나는 기슭을 피해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 산책로로 올라온 오리 가족  불어나는 기슭을 피해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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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가가는 걸 어미가 알아챘는지 산책로 옆 기슭으로 아이들을 이끌었다. 그러곤 꼼짝 않고 나를 쏘아봤다. 마치 "넌 누구냐?"라는 듯.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녀석들을 멀찍이서 바라봤다. "너희 무사했구나!" 한동안 시간이 흘러도 나는 물론 검둥이네도 꼼짝 않고 서로를 쳐다봤다. 마치 우연히 적과 마주한 풋내기 병사들의 긴장이랄까. 탄천은 물도 기슭도 위험하니 산책로로 올라왔나? 그래서 산책로 옆 산으로 피하려 하나?

내가 물러날밖에. 그 자세 그대로 뒤로 걸었다. 검둥이네는 나를 계속 쳐다봤고. 시야에서 얼마쯤 멀어졌을 때 녀석들이 산책로로 다시 올라와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게 보였다. 폭우가 오락가락해서 사람들이 탄천을 찾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흰뺨이네를 찾으러 이곳저곳을 더 헤맸다. 얼마나 다녔을까?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못 본 새로운 가족인가 했다. 새끼 오리 세 마리의 가족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흰뺨이네였다. 두 마리 새끼 오리 사이에 더 작은 새끼 오리가 있었던 것. 한눈에 봐도 갓 태어난 아기였다.

길 잃은 새끼 오리
 
 어떤 오리 가족에게 피한 갓 태어난 새끼 오리. 어미의 새끼 사이에 있는 더 작은 새끼 오리가 보인다.
▲ 새끼 오리  어떤 오리 가족에게 피한 갓 태어난 새끼 오리. 어미의 새끼 사이에 있는 더 작은 새끼 오리가 보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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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동화 같은 장면이!" 그 장면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본다면 길 잃은 새끼 오리를 다른 오리 가족이 거둔 훈훈한 장면이었다. 그 작은 아이는 어미는 물론 자기보다는 크지만, 아직 새끼인 두 마리 오리를 의지하듯 기를 쓰고 쫓아갔다. 보는 내내 감동이 일었다. 입양했나? 자연은 혹독하다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서로 돕는구나!
 

그런데 흰뺨이, 어미 오리가 그 꼬마를 자꾸 밀어내는 것 아닌가. 그 아이는 마치 "아줌마, 나를 받아줘요!"라는 듯 매달렸고. 어미가 꼬마를 밀어내니 두 마리 새끼도 그 아이를 밀쳤다. 새끼들은 어미의 행동을 따라 하며 배우는 법이니까.

간절히 매달리고 한사코 밀어내는 모습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자연은 관대하지만은 않고 태어난다고 해서 거저 자라게 하지도 않는 법. 흰뺨이에게는 지켜야 할 두 아이가 있었다. 아마도 그 녀석들을 성체로 키워내는 것이 그녀가 사는 가장 큰 이유였을 테니까.
 
 오리 가족을 쫓아 다니던 이 녀석은 끝내는 혼자 남았다.
▲ 홀로 남은 새끼 오리  오리 가족을 쫓아 다니던 이 녀석은 끝내는 혼자 남았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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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꼬마는 홀로 남았다. 기를 쓰고 따라다녔지만, 힘이 빠진 듯 더는 따라가지 못했다. 무척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성체 오리들도 힘든 환경인데 갓 태어난 새끼 오리에겐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처음 만난 세상이었는데.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그렇다면 저 꼬마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저 녀석이 알을 깨고 나왔다면 다른 형제자매들은?" 이런 생각도. 그래서 그 아이가 떠내려왔을 것으로 보이는 상류로 올라가며 기슭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비가 굵어지고 물이 차올라 더는 산책로에 머물 수도 없었다.

다음날 상류와 하류를 다니며 그 꼬마의 가족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또래로 보이는 새끼 오리들을 찾을 순 없었다. 흰뺨이네와 함께 있던 꼬마를 본 순간 "동화는 시작되었어!" 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자연은 잔혹 동화의 배경이었다.

이틀 후 비는 그쳤고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왔다. 탄천은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다. 두 번의 폭우를 이겨낸 도로시네 아이들은 물론 흰뺨이네와 검둥이네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탄천에는 이들 말고도 다른 생명도 살아가고 있었다. 관심 두고 보면 보이는 녀석들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탄천에서의 1년, #새끼 오리, #청둥오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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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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