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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선 까치울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 부천생태공원전경 7호선 까치울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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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성탄절 오후 경기도 부천의 부천자연생태공원에서 열린 송년 특집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다녀왔다.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 660, 7호선 까치울역 인근에 위치한 부천자연생태공원은 지난 2014년 7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에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올해 12월 행사는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 2시부터 4시까지 시낭송을 비롯하여 노래, 연주, 공연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송년 특집으로 진행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에 왠지 가슴에 설레고 기분이 들떠 무작정 거리로 달려 나가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했지만, 요즘은 사회분위기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그런 낭만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하지 않으면 왠지 손해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할 일을 찾아보다가 다행히 부천자연생태공원에서 열리는 송년 특집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알게 됐다.

부천자연생태공원은 내가 사는 동네에 있으면서도 첫 방문이다. 어린아이들이나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른들이 더 많다.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자연생태박물관 3층 행사장은 이미 만원이다. 150석 규모의 객석은 먼저 온 사람들로 빼곡해서 한참을 뒤에 서 있다가 겨우 빈자리 하나를 발견하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 앉았다.
 
힐링시낭송아카데미 단원들이 이경림 시인의 <새재>를 낭송하고 있다.
▲ 시낭송 힐링시낭송아카데미 단원들이 이경림 시인의 <새재>를 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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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예술단의 난타와 <독도는 우리 땅> 태극기 퍼포먼스(솔직히 태극기를 보고는 살짝 긴장했었다), 통기타 연주가 끝나고 시낭송이 시작되었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같이 시들은 모두 귀에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특별히 송수권 시인의 <여승>이라는 시를 낭송할 때는 가슴 안쪽으로 뭔가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밀려들었다.

 
복사골시낭송예술단 장주호, 장나래 낭송가가 송수권 시인의 <여승>을 낭송하고 있다.
▲ 시낭송 복사골시낭송예술단 장주호, 장나래 낭송가가 송수권 시인의 <여승>을 낭송하고 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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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을 쓴 여성 낭송가의 손끝 발끝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예리한 파편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문득, 지금은 고인이 되고 없지만 송수권 시인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낭송가를 만나는 일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때의 느낌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낭송회에 다녀온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껏 시의 마지막 구절이 귓전에 아른거린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 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 송수권 '여승' 부분


중간 중간에 이어진 오카리나 연주도 좋았고 색소폰 연주도 좋았다. 또 패션쇼를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시낭송 퍼포먼스로 활용한 아이디어도 빛났다.

 
신영희 포엠 패션셀렉션 단원들의 시낭송 퍼포먼스
▲ 시낭송 신영희 포엠 패션셀렉션 단원들의 시낭송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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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
▲ 참가자 일동 참가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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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진행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실수 아닌 실수들이다. 예를 들면 객석의 크고 작은 소음이라든가, 진행상의 사소한 미스들, 마이크의 잡음, 부족한 조명 시설 등과 같은 것들...

이것은 절대 비꼬는 말이 아니다. 사실, 비싼 돈 들여서 유명 아티스트의 연주회에 갔을 경우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러나 그런 작은 실수들이 오히려 관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혀주며, 관객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는 순기능으로 작용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실수가 어디에 있겠는가?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가만 있고 관객이 없는 예술은 사실 공허하다. 죽은 예술이다. 조금의 실수가 있고 부족한 점이 있어도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예술이야말로 살아있는 예술이요, 대한민국 최초의 문학창의도시 부천시가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닐까 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더 많은 장소에서 문학과 함께 웃고 울며, 함께 참여하고 소통하는 도시, 문학창의도시 부천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시티저널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부천시, #문학창의도시, #현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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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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