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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우리 아이들이 희생됐다. 지난 18일 강릉 펜션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서울 대성고 학생들의 이야기다.

가족들의 눈물을 뒤로하고 21일 발인했다.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 앞에 우리사회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성장과 발전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험한 물질주의적 가치추구,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다수의 위험요인,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법과 규정, 그리고 적극적으로 위험을 관리하기보다는 위험을 수용하고 회피하는 성숙하지 못한 안전의식 등이 한데 모여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미국에서는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산화탄소 가스중독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중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다고 보고되어 있다. 그래서 무색, 무취인 일산화탄소는 '침묵의 살인자(Silent Killer)'라는 악명을 가지고 있다.

올 해 3월을 기준으로 미국의 대다수 주에서는 '주 법'(State Statutes), '주 보건안전규정'(State Health and Safety Code) 또는 '주 공사안전기준'(State Construction Safety Standards)에 의해 설치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소관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주마다 소방국, 건축과 등 다양하다.

일산화탄소 감지기의 주된 설치장소는 일반주택, 유치원, 학교, 보일러실, 요양보호소 그리고 호텔과 모텔 등이며 일부 주에서는 새로 신축되는 모든 건물에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에는 시민들의 구매를 돕기 위해 주 소방국에서 인정한 일산화탄소 감지기 제품목록을 만들어 놓았다. 알래스카 역시 주 소방국의 인증을 받은 감지기를 일반 가정에 설치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미네소타에서는 심지어 모터보트(Motor Boats)에도 감지기를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내 유치원에 설치된 일산화탄소 감지기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내 유치원에 설치된 일산화탄소 감지기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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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내 소방대원 숙소에 설치된 일산화탄소 감지기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내 소방대원 숙소에 설치된 일산화탄소 감지기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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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일산화탄소 감지기는 수십여 종에 이른다. 건전지를 넣어 사용하는 타입과 콘센트에 꽂아 사용하는 타입이 대표적이며, 가격은 우리 돈으로 2만 원부터 10만 원을 훌쩍 넘는 제품까지 있다.
 
현재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일산화탄소 감지기
 현재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일산화탄소 감지기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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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수명은 보통 10년이며 주택용 연기감지기와 마찬가지로 테스트 버튼이 있어 사용자가 언제든지 작동 점검이 가능하다. 일부 고가의 제품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연동해 원격조정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가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산화탄소 감지기는 우리가 거주하는 건물의 다양한 위험 요인들 중에서 일산화탄소라는 특정 위험요인을 예방하기 위한 하나의 시스템에 불과하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거나 건물이나 보일러가 노후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오작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소방관 사이에서는 일산화탄소 감지기 오작동으로 출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사용자들은 감지기의 건전지를 빼놓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여러 위험요소들을 찾아내 법과 규제의 시스템 안으로 포함시켜 위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려는, 소위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 전략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생명존중'이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안전은 잠시 유보될 수 있다며 위험을 회피하는 소위 '위험 회피(Risk Avoidance)' 전략을 구사하는 우리와는 대비된다.

태그:#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일산화탄소 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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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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