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전설의 록밴드 '퀸'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데요.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해 봤습니다.[편집자말]
 LP player
 LP player
ⓒ pxhere

관련사진보기

 
1970년대 말, 세상이 뿜어내던 무거운 공기를 아이들도 맡던 시절이었다. 음악이 숨을 쉬게 했지만, 접할 수 있는 음악은 많지 않았다. 대체로 부모님이나 형, 누나들이 듣던 음악이 최고인 줄 알았다. 친구들과 음악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중학교 때 쉬는 시간이면 팝송 얘기로 주의를 끄는 친구가 있었다. "너희 그거 들어봤어?" 집에 전축이 있다고 뻐기는 거였지만 진짜 부러웠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다는 건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호사였다. 전축이 놓인 응접실이 부러움을 사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스피커가 하나인 모노 카세트 라디오가 있었다. 나는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그룹사운드들의 테이프를 들으며 거친 소리에 빠져 지냈다. 전축이 있는 그 친구는 "진짜 거친 게 뭔지 들려주지"라며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나는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 친구네 전축은 '스테레오' 스피커였다. 양쪽에서 소리가 나왔다. 스테레오는 좌우에서 나오는 소리가 다르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진짜 록 음악이 뭔지도 알게 됐다.

친구는 내게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틀어주었다. 나는 거칠지만 아름다운 소리에 푹 빠져버렸다. 그런 음악을 듣는 형을 가진 그 친구가 부러웠다. 물론 응접실을 장식한 스테레오 사운드 시스템도.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떼를 써봤을 거다. 그날 집에 들어가자마자 교복 입은 채로 드러누웠다. "내게 스테레오를 허하라!" 얼마 후 내 방에는 '금성 스테레오 카세트 라디오'가 입성했다. 그날 이후 나는 라디오에 나왔던 새로운 팝송을 녹음한 테이프를 흔들며 "너희 그거 들어봤어?"라고 뻐기는, 재수 없는 소년이 되었다.

검은 학생복을 입고, 국방색 가방을 들고, 머리를 빡빡 깎던 그 시절 남중생들은 '어떤 음악을 듣는가'로 자기를 표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너희 그거 들어봤어?"라는 말을 하며 허세를 부린 게 아니었을까. "너희랑 같은 옷, 같은 헤어스타일이지만 난 좀 다르지"라는 뜻을 담아.

그래도 혼자보다는 함께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다. 워크맨이나 마이마이가 없던 시절이어서 녹음기가 있는 집에 모여 다 같이 감상했다. 집은 각자 녹음한 음악이 모이는 광장이었던 것.

우리의 소심한 반항
 
 영화 <보헤미안랩소디> 스틸컷
 영화 <보헤미안랩소디>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알게 된 그룹이 '퀸(Queen)'이다. 어떤 음악을 먼저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듣자마자 빠져버렸을 것이다. 음반가게에서 내 돈 내고 산 첫 테이프가 퀸 앨범이었으니. 음악뿐 아니라 퀸을 둘러싼 루머도 우리의 귀를 만족시켰다.

"프레디 머큐리는 네 옥타브를 넘나든다며?"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는 직접 만든 수제 기타래."

지금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하며 왜 그리 젠체했는지 모르겠다. 그래 봤자 빡빡머리에 검은 학생복을 입은 중학생일 뿐인데.

정보가 권력이었던 그 시절, 팝송을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우리도 모르는 게 있었다. "너희 그건 들어봤어?" 나를 스테레오의 세계로 인도한 그 친구는 퀸에 대한 은밀한 얘기를 해줬다. 세상에나, 퀸의 음악 중에 '금지곡'이 있다는 거다. 그 노래는 내가 갖고 있던 테이프의 원래 앨범에도 수록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어서 빠졌다는 것이다.

제왕 같던 대통령이 갑자기 죽고 흉흉한 소문이 들리던 계절이었다. 당시 '금지'라는 단어는 그 어떤 말보다 무서운 단어였다. 절로 목소리가 낮춰졌다. 그런 걸 들어도 되는지 무서웠지만 궁금했다.

그날 방과 후, 그 친구네 마루에 모였다. 친구는 형 방에서 색바랜 파란색 LP를 꺼내왔다. 일명 빽판(불법 복제 레코드판). 금지곡이라고 하니 레코드판도 왠지 위험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처음 만났다.

분위기는 반반. 열광하거나, "이게 음악이냐?"라는 반응이거나. 난 전자였다. 음악도 감동이었지만 스테레오의 진수를 들은 기분이었다. 좌우는 물론 위아래로도 넓게 들렸다. 입체적 사운드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그런 음악이었다. 오, 맘마미아!

그런데 왜 금지곡이지? 소문은 분분했다. 가사가 불량하다느니, 위험하다느니. 아무튼 금지곡이 아니더라도 라디오에서 나오긴 애당초 글러 먹은 곡이었다. 엄청 기니까. 아무튼 나는 그날 녹음한 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들었던 기억이다.

이후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며 음악 취향은 계속 달라졌다. 그래도 퀸의 음악은 때로 한 번씩 꺼내어 듣곤 했다. 그리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을 때면 그 시절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와 분위기가 떠오르곤 한다.

해외여행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던 그 시절, 먼 나라의 음악을 들으며 소년들은 바깥세상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들의 자유스러움과 해방감을. 뭔지 모르게 움츠리게 만드는 세상에서 음악이 소년들을 견디게 했다. 금지곡을 듣는 방식으로 소심하게 반항도 하면서 말이다.

삶은 계속되는 거야
 
 프레디 머큐리
 프레디 머큐리
ⓒ wiki commons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견디고 반항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중년이 됐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극영화라고? 프레디 머큐리를 배우가 연기한다고? 감히, 누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만큼 퀸이라는 그룹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리고 팬들에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니까.

어디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는 도중 눈에 눈물이 맺혔고, 마지막 공연 장면에선 터져 흘렀다. 프레디를 연기한 배우의 연기와 노래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모든 장면이 절절했다. 한때 연인이자 친구였던 메리 오스틴에게 바친 노래 'Love of My Life'는 역설적으로 헤어져서야 '영원한 사랑'을 이룬 두 사람의 관계를 은유했다. "내 평생의 사랑"이라고. 세상에 대한 반항과 절규라고 생각했던 노래 'Bohemian Rhapsody'는 프레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고백이었다. "엄마, 난 죽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공연 장면은 가족과 밴드,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인사였다. 이렇듯 영화에서 프레디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묘하게도 그의 삶을 얘기하고 있었다.

왜 나는 영화 속 프레디의 노래에 눈물이 흘렀을까? 노래가 좋아서? 잘 불러서? 그렇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프레디가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삶은 없어"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렸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인생의 어느 정점에서 느껴지는 과거에 대한 회한이랄까?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프레디가 "그때 난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외치는 듯했다. 그런 마음이 내게도 전해진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

"맞아. 너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후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어느덧 중년이 된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영화는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영화 <보헤미안랩소디> 스틸컷
 영화 <보헤미안랩소디>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관련사진보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Show Must Go On'이 흘렀다.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삶은 계속되는 거야."

프레디는 그렇게 얘기했다. 현재형으로.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해 '영화를 보고 왔다'고 자랑했다. 다들 부러워했고, '나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아저씨들! 어서 극장으로 달려가시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실립니다.


댓글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음반, 영화, 에니메이션 등 콘텐츠 회사와 투자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프로젝트 펀딩을 담당했다. 오피니언 뉴스에 북에세이와 문화 컬럼을 게재하고 있으며 전문 문예지에도 글을 싣고 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