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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함진규 정책위의장,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머리 맞댄 김성태-함진규-윤재옥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함진규 정책위의장,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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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꽉 차 있었는데 지금은 40명 정도 자리했다. 허허."

의원총회 마무리 발언을 위해 단상 앞에 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헛웃음을 지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회의실이 가득 찼지만, 끝날 때는 참석했던 의원 절반 이상이 자리에 없었다.

자유한국당은 30일 오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국정감사 평가와 더불어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와 사회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맡긴 결과를 들었다. 김석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한국보수정당의 위기와 재건-자유한국당의 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 원인 분석'이라는 제목의 PPT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내용은 소셜미디어 빅데이터와 설문조사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유권자 성향 변화 등을 분석한 결과였다.

발표가 끝난 후 질의를 신청하는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여러분들 어떻게 보셨나?"라고 물었지만, 돌아온 건 침묵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하드카피가 정리되면 여러분들이 정독해주시고, 다음 의원총회에서 여러분들 의견을 세밀하게 구하도록 하겠다"라고 하고 이날 총회를 마쳤다.

"당 재건 노력, 국민들은 관심 없어"
 

김석호 교수가 이날 발표한 내용은 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정당 지지자들이 어떻게 분화했고, 자유한국당을 지지했다가 이탈한 이들이 정치적으로 어떤 요구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김 교수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한국당의 위기는 구조적, 장기적, 복합적이다"라면서 "단기 선거에서, 한두 번의 경쟁에서 부진한 거로 진단하는 것은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의 싹도 잘라버릴 수 있는 잘못된 현실인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는 잦은 실수·실언, 국민이 원하지 않는 가진 자 위주의 정책들이 반복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계속 상실하고 있다"라면서 "당의 재건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아무리 문재인 정권이 실정을 하고 지지율이 떨어져도 자유한국당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의원 개개인의 개인기로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그건 당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의원 개인이 각자 도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석호 교수는 유권자의 성향을 지지자, 이탈자, 반대자로 구분했다. 지지자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홍준표 전 대표에게 투표한 이들, 이탈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투표했으나 홍준표 전 대표에게는 표를 주지 않은 이들, 반대자는 두 번 모두 다른 당의 후보를 찍은 이들이다.

김 교수는 이탈자에 대해 주목했다. 그는 이들의 이념적 호감도가 바른미래당의 현 입장과 거의 비슷한 점, 또한 이들의 이념적 거리감이 자유한국당보다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유연한 대북정책을 선호하고 있음을 간파하지 못했다"라며 "합리적 보수 노선의 경제사회 정책을 갈망하는 유권자의 요구 역시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자유한국당이 이탈자들의 표심을 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 강경하고 원칙적인 대북‧안보 프레임을 버리고 유능하고 적극적인 평화와 통일의 비전 제시 ▲ 합리성과 효율성에 근거한 건설적이고도 차별화될 수 있는 보수 노선의 경제정책을 확고히 수립 ▲ 보수의 도덕적‧윤리적 가치에 바탕을 둔 주요 사회적 의제를 명확히 설정 등을 거론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자유한국당이 대부분의 이슈에서 '소유권'을 상실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외교‧안보 쟁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했다. 특히 이전까지의 여성‧청년 정책이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진열하는 식"이었다고 비판하며 ▲ 포용성 ▲ 사려깊음 ▲ 진정성 등을 새로운 가치로 설정하여 이들을 껴안아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자리 이탈한 의원들... "다 맞춰놓고 하는 것 아니냐"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생각에 잠긴 김병준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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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석호 교수가 발표한 연구 용역 결과는 최근 일련의 자유한국당 움직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자유한국당은 현재 평양공동선언 및 남북군사합의서의 국회 비준을 요구하며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외교‧안보 이슈에서 강경 대여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김병준 위원장 역시 이날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남북문제에 전부 올인해 '평양냉면 굴욕 사태'라고 해도 될 만큼 겁박을 듣게 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가"라며 "경제인들을 모시고 가서 그 정도 모욕적인 언사를 듣게 했으면 청와대가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라고 각을 세우기도 했다.

김 교수가 '이탈자'를 강조하면서 당에 중도층 표심잡기를 주문한 것 역시 최근 당의 움직임과 배치됐다. 당 인적쇄신을 주도할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은 2012년 총·대선 당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 정책을 "몰락의 시작점"으로 진단하는가 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불복을 주장하는 '태극기 부대'까지도 보수 통합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 위원만 아니라 김진태·윤상현·심재철 의원 등은 최근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며 '우파 본색'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의원총회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스크린에 뜬 내용을 촬영하며 열심히 듣는 의원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보는 등 발표 내용에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한 의원은 대놓고 발표 도중에 회의실 안에서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대놓고 불만을 표기하는 의원도 있었다. "다 아는 내용을 굳이 저렇게..."라며 불평하는 의원도 있었고, "미리 답을 다 짜맞춰놓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원도 있었다. 상당수 의원은 아예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PPT 슬라이드가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불을 꺼놨던 회의실에선, 김석호 교수의 목소리 뒤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자리를 지키는 의원들의 숫자는 줄어만 갔다.

김성태 "현주소 여과없이 보여줘... 검토하고 참조하겠다"

그러나 김성태 원내대표는 연구 용역 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유한국당의 현주소를 서울대 용역 연구팀이 여과 없이 보여줬다"라면서 "보고서 내용대로 더 큰 쇄신과 변화를 위해 더욱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여성과 청년 이슈에 있어서도 젊은 마인드를 갖도록 하겠다"라며 "남북관계 역시 과거의 안보관으로 너무 경색해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좋은 충고도 중요하게 받아들이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정책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내용에 깊이 공감한다"라면서 "낡은 이미지의 정책은 과감하게 내던지겠다. 새 시대를 만들어가는 정책으로 이미지를 연결짓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당내 반발에 대해서는 "당 내부에서 연구 용역을 맡기자는 공감대가 있어서 맡겼던 것"이라며 "연구 용역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결과는 저도 오늘 처음 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교수의 주문이 전원책 위원의 주장과 배치되는 데 대해서도 "전원책 위원은 조강특위 위원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다만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데 대해서는 "오늘 들은 건 외부 연구 용역 보고서일 뿐"이라며 "세세하게 검토하고 참조하는 용도"라고 답했다. 이어 "앞으로 비대위 각 회의에서 논의를 거치고, 최종적인 건 의원총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김용태 사무총장 역시 따로 입장문을 내고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그는 ▲ 대북안보정책에 있어서 유연성과 대안제시가 필요 ▲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과거 집권 9년 동안의 경제정책 운용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정책 담론 및 모델을 만드는 노력이 절실 ▲ 당 구성원들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혁파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은 이 연구의 제안을 무겁게 받아드리는 당 혁신의 소중한 밑거름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태그:#자유한국당, #김성태, #연구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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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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