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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0일 토요일 낮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느 주말 때처럼 성당에서 반찬을 만들어서 어려운 가정에 배달하는데, 한 대상자 집에 반찬 가방을 들고 갔다가 문 앞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문고리에 반찬 가방이 걸려 있는데, 무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상해서 전화를 했는데, 전원이 껴져있다는 안내음만 들렸습니다.

반찬을 만들어서 보통 스무 집가량 배달하는데, 일이 있어서 집을 비울 경우에 대상자들은 빈 그릇을 가방에 넣어서 문 앞에 놓아두곤 합니다. 나는 그 집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더욱 놀란 것은 거기에 어느 복지단체인가에서 방문했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는데, 계속 연락이 안 돼서 방문했으며, 이것을 보면 꼭 연락을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무슨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문을 열어봤습니다. 뜻밖에도 문이 열렸습니다. 원룸인데 옷이 벗어져 있고, 휴대전화와 열쇠, 그리고 안경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 집에 주려던 반찬은 다른 집에 골고루 나눠서 담았고, 문에 걸려 있었던 가방은 가져와서 반찬은 다 버리고 설거지를 간단하게 해놨습니다.

'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던 찰나

함께 봉사하는 회원들도 알아야 하기에 그 내용을 단체카톡방에 올렸습니다. 그것을 본 회원들도 그 대상자의 안위를 걱정했습니다. 나는 성당 봉사를 마치고 다른 행사가 있어서 참석했다가 오후 8시쯤 전동차를 타고 다시 성당으로 갔습니다. 그날 성당에서 교리공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당으로 막 걸어가고 있을 때에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회원인 영수(가명)씨였습니다. 그는 대상자가 걱정이 된다며 아까 문을 열고 봤을 때 화장실을 들어가 봤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안 봤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이도 있고 기력도 없어서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습니다. 그 얘기에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나는 그에게 교리공부 끝난 뒤에 같이 가봤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약속시간을 정했습니다.

영수씨에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섬뜩한 생각이 사라지지를 않았습니다. 괜히 그런 약속을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가 왜 그런 전화를 걸어서 나를 귀찮게 하나 하는 원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지만 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예전에 읽었던 어느 작가의 끔찍한 소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자서전의 성격을 지닌 소설이었는데, 주인공이 가깝게 잘 아는 친구의 집을 저녁에 방문했습니다. 그 친구는 열쇠를 주면서 어느 날에 꼭 왔으면 바란다는 뜻을 미리 전해왔습니다. 주인공이 가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나오는데, 아까 그 집에 들어가서 방문을 열었을 때 뭔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냥 열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닿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집에 들어가서 그 방문을 열어봤습니다. 주인공의 예감은 불행하게도 적중했습니다. 친구는 문 옆 벽에 죽어있었습니다.

교리공부 하는 한 시간이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자꾸만 대상자가 사는 집의 화장실만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만이 떠올라서 매우 괴로웠습니다. 드디어 교리공부가 끝나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겨서 그가 기다리고 있는 대상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심호흡 또 심호흡, 빈집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마음은 몹시 떨렸지만 영수씨가 있어서 힘을 냈습니다. 문은 낮에 그랬던 것처럼 쉽게 열렸습니다. 먼저 불을 켰습니다. 그는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봤습니다. 창문은 조금 열려있었고, 가스레인지에는 무슨 반찬인가 데우다 만 흔적이 보였습니다. 마침내 그가 말했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자고요.

구석에 있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나는 속으로 심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용기를 내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것, 내가 먼저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제발 여기에서 대상자를 보는 일이 없기를 하고 말입니다. 내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습니다. 아, 나의 소원이 고맙게도 이뤄졌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소설 생각이 나서 화장실 문 뒤를 잘 봤습니다. 역시 없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영수씨는 바로 내게 말했습니다. 경찰서에 지금 가서 실종신고를 하자고요.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대상자의 방을 몇 군데 사진을 찍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악몽에서 벗어났기에 그 무거웠던 발걸음은 거짓말처럼 하늘을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다행이다. 경찰이 그를 찾았다.
 다행이다. 경찰이 그를 찾았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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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가까운 시간에 경찰서에 갔습니다. 입구에서 절차를 밟아서 담당하는 경찰에게 갔습니다.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대상자의 이름과 주소만 알고 있어서 그들은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이름과 전화번호, 사진을 찍어온 그 대상자에 집에 붙어 있었던 쪽지, 대상자를 처음으로 알려준 복지단체의 단체장 이름과 전호번호 등을 알려줬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얘기를 잘 듣고 열심히 이것저것을 적었습니다. 한 명은 컴퓨터에 무엇인가를 쓰면서 모니터를 보곤 했습니다.

그들은 알았다고 했습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찾아보겠다고 하면서 꼭 연락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녔기에 몸과 마음은 완전히 파김치가 됐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빨리 샤워부터 한 뒤에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봤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요? 영수씨의 메시지가 와 있었는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는 겁니다. 그 대상자는 어느 병원에 잘 있다는 겁니다. 정보 문제가 있어서 그것은 알려줄 수 없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일이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대상자가 무사히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영수씨는 내가 전화를 받지를 않으니 바로 문자로 알려준 것입니다. 고마웠습니다. 그가 있어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체카톡방에 내가 올린 글을 그는 관심 있게 봤고, 먼저 대상자의 안전을 걱정한다는 문자를 올려줬습니다. 몇 시간 뒤에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장실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계속해서 대상자의 안위를 염려하며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밤에 나랑 만나서 대상자 집을 방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와 같이 경찰서에 가서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이웃에 대한 영수씨의 한결같은 따뜻함 덕분에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종신고라는 것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보이지 않던 대상자의 행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수씨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영수씨,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태그:#봉사, #실종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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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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