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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SIB가 뭔지 알아?"

며칠전에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지인이 내게 물었다. SIB라니, 무슨 첩보영화 제목도 아니고 도대체 뭘까,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그건 어디에 쓰는 용어야?"

SIB란 'Social Impact Bond'의 약자다. 뜻은 '사회성연계체권'이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낯설었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민간의 투자로 공공사업을 수행한 뒤, 성과목표 달성 시 정부가 예산을 집행, 투자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함께 상환하는 계약"이다(출처; 팬임팩트코리아 브로셔).

얼마전에 티브이에서 세금이 밀린 사람들을 추적해 재산을 압류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들의 집에서는 현금과 각종 귀금속이 발견되었다. 돈이 없어서 세금을 못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국민의 의무중 하나가 납세의 의무다. 국민이 낸 세금은 계획대로 잘 쓰이고 있을까? 피땀흘려 번 돈으로 낸 세금이 제대로 잘 쓰이길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낭비 하는 것을 막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보니 SIB 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었다.

최초의 SIB사업은 2010년 영국 피터버러시(市)에서 시작됐다. 피터버러시는 당시 높은 범죄자들의 재범률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평균 재범률이 60%를 넘고 교도소 수감자 1명당 수감비용만 연간 4만파운드(6800만원)가 지출됐다.

이때 소셜 파이낸스(Social Finance Ltd. UK)라는 회사가 재범률을 낮추는 교육을 해서 재범률을 떨어뜨려 보겠다며 SIB구조를 설계해 영국 정부(법무부)와 기업에 제안을 했다. 세계적 자선 단체인 록펠러 재단 등 17개 기업과 단체로부터 총 500만파운드(약74억원)를 유치했다. 소셜 파이낸스는 곧바로 재범률을 줄이는 교육 사업을 시작, 재범률을 낮추는 데 성공하자 영국정부는 예산을 편성해 기업 등이 투자한 원금에 이익을 얹어 지급했다.

이 모델은 결국 사회문제를 투자상품화한 것으로서 '자본의 물길을 사회문제로 돌리면 돈이 된다'는 공식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출처; econovill.com).

정부는 성공한 사업에만 예산을 집행하여 국민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고, 더 많은 공공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투자자는 사회공헌과 투자를 동시에 실행하여 효율적·효과적인 자금이 활용 가능하다. SIB는 공공의 과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방법론으로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사업을 기획.운영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는 얘기를 앞서 질문한 지인이 말해주었다. 팬임팩트코리아(www.panimpact.kr)가 그곳이다.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어서 팬임팩트코리아의 곽제훈 대표를 지난 9월 말, 서울역 인근에서 만났다.
 
팬임팩트코리아의 곽제훈 대표
 팬임팩트코리아의 곽제훈 대표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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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저 SIB가 무엇인지 설명을 좀 부탁합니다.
"정부가 하는 사업은 다 공공사업입니다. 공공사업을 할 때 결과와 무관하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예산을 집행하죠. 그 돈은 다 국민의 세금에서 나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낭비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왜냐면, 사업이 잘됐는지 잘 안됐는지 확인도 안 하고 성과에 대한 평가도 없고 실패한 사업에도 예산을 계속 쓰고 있으니까요.

또한 영수증 처리와 산출물에만 집중하니까 실질적으로 사회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느냐에는 집중하지 않죠. 그런데, SIB 사업방식은 먼저 민간 돈으로 공공사업을 하고 그 사업이 성공했을 때만 정부가 예산을 집행해서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일종의 계약이에요. 이렇게 함으로써 정부는 실패한 사업에는 세금을 안 쓰고 성공한 사업에만 세금을 쓰는 거죠. 예를 들어 범죄를 줄이는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SIB는 범죄율이 얼마나 줄었나를 나중에 평가해요. 말 그대로 성과 자체에 집중을 하니까요. 그래서 예산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어요."

- 국민의 피같은 돈으로 모인 세금을 아낄 수 있고, 성과에 집중하니까 사회문제 해결 방식으로는 꽤 적합한 방식이네요. 현재 SIB방식으로 진행 중인 사업이 있다면 어떤 사업인가요?
"
혹시, 경계선지능아동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마 못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게 뭐냐하면 지능(IQ)이 71이하면 지적장애예요. 그런데 72이상이면 지적 장애가 아니에요. 71이하는 지적 장애로 분류가 되니까 나라에서 도와줘요. 수급비도 주고, 특수 교육도 시켜주고요. 경계선지능 아동은 지능지수가 71~84 사이에 있는 아동이에요.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을 못받고 있어요. 이 아동들을 방치했을 때, 지능이 낮아져 지적장애가 될 수 있는 비율이 아주 높아요. 수급자가 될 비율도 일반아동에 비해 15배가 넘고요. 지능지수라는 게 상대적인 지표예요. 나이 먹음에 따라 같이 성장을 해야 하는데 못 하는 거죠. 그러면 지적장애가 될 수밖에 없고요.

국가는 망가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지적 장애가 되고 나면 막대한 사회비용을 들여서 뭔가를 하려고 하죠. 경계선이었을 때 도움을 주었으면 지적 장애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예산을 훨씬 덜 쓰고 이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일반가정에 있는 아이들은 경계선 지능이라고 하면 부모가 케어를 해주잖아요. 복지시설에 있는 아동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도와줄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SIB방식으로 2015년에 경계선지능아동의 인지능력과 사회성 향상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했어요. 이 사업에서 팬임팩트코리아는 사업운영기관으로 서울시와 사업계약을 맺고 사단법인 피피엘(People and Peace Link),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유비에스증권(UBS Securities)로부터 약 11억원의 투자를 받아 현재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내년 하반기(8월 )중에 사업이 종료될 예정입니다."

- 경계선지능지수 아동 사업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필요한 사업이네요. SIB가 아니었으면 막대한 예산을 썼을텐데 SIB사업 덕분에 예산도 줄일 수 있었고, 시설아동의 경계선지능도 올리는 1석 2조의 효과를 보았네요. 서울시에서 SIB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2013년 말 시의원과 공무원, 민간전문가의 참여로 조례가 제정 TF가 구성 되었고 2014년 3월 '서울특별시 사회성과보상사업 운영조례'가 제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조례가 제정된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가 사회적금융이나 SIB에 관심을 갖게 된 게 2011년도였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죠. 서울시에 정책 제안을 했어요. 그때 낸 정책제안 중에 사회투자 관련된 게 있었고, SIB가 있었죠. 처음에는 SIB가 관심을 못 받았어요. 어렵고 생소하니까. 2013년부터 공무원들을 만나고 설득을 하러 다녔는데 대부분 거절했고 근거가 없어서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2013년 말에 박운기 시의원을 만나서 SIB에 대해서 설명했더니 굉장히 좋아하시면서 조례를 만들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TF팀 꾸려서 조례 제정 작업 들어가고 2014년 3월에 이 조례가 통과됐어요.

조례가 통과되었으니 사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동 교육하는 사업을 기획해서 서울시에 제출했는데 부결됐어요. 부결된 이유는 사업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당시에 SIB에 대해서 시의원들이 잘 모르니까 오해가 확산된 부분이 있었어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슨 실험하는 거 아니냐, 투자자들은 돈놀이 하는 거 아니냐고도 했어요. 사실, 외국에는 아동 청소년 사업이 제일 많거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파급 효과도 크고요. 표결에서는 찬성이 많았지만 기권표가 나오는 바람에 과반을 못 넘겼어요. 그래서 아깝게 부결이 되었지요.

그 뒤로는 사업이 다시 진행되지 못 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서울시 의회의 결정을 비판한 기사가 나온 거예요. 외국에는 아동 청소년 사업이 많은데 서울시는 아동 사업을 부결시켰다는 식으로. 시의원들이 그 기사를 보고 좀 놀랐나봐요. 사업은 부결됐지만 저는 SIB사업 방식을 포기하기 싫어서 회사를 설립했어요. 사업을 하려면 운영기관이 있어야 하거든요. 모험을 하는 셈 치고 회사를 설립했어요. 그리고 다시 정부를 설득하러 다녔어요. 결국 부결된 사업을 똑같이 올려서 2015년 4월에 만장일치로 통과가 됐어요. 딱 7개월 사이에 반전이 일어난 거죠. 2015년 2월에 회사를 설립했는데 2개월만에 이룬 성과예요."

- 향후 계획이나 회사의 비전을 말씀해 주신다면?
"
원래 회사의 단기적인 목표는 SIB사업 방식을 한국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회사 홈페이지에도 쓰여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시스템을 바꿔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에요. 시스템을 바꾼다는 말은 포괄적이죠. SIB는 사업이 아니라 방법론이에요.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을 쓰는 새로운 방법이고, 민간 입장에서는 새로운 투자의 방법이죠. 수혜자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고요. 이같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봐요. 기존의 체제나 제도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게 어쩌면 팬임팩트코리아가 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생각과 시스템을 개혁하는 회사, 변화시키는 회사 말예요."
 
팬임팩크코리아의 브로셔
 팬임팩크코리아의 브로셔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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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제훈 대표가 자신의 포부를 담담히 말했다.

'자본의 물길을 바꿔 세상을 변화시킨다.' 팬임팩트코리아(Pan-Impact Korea)의 사훈이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회사의 미션을 수행하느라 결혼도 못하고 있다는 곽제훈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그:#SIB, #사회성과연계체권, #팬임팩트코리아, #곽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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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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