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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하셨는데 이게 미국과 먼저 협의가 돼 있었는지, 그래서 서울에 오셨을 때 종전선언을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9월 20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대국민보고 기자회견에서 CBS 기자가 윤영찬 수석에게 한 질문.

정세현이 던진 질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제기한 '한국 언론의 미국 의존증'이 세간의 화제가 됐습니다. 한 기자가 관련 내용을 브리핑하는 윤영찬 수석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미국과 사전협의가 됐나"는 질문을 던졌고, 이를 정 전 장관이 "(남북관계가)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냐. 기자가 주인의식을 가져라"며 비판하자 여론이 뜨거워졌습니다.

해당 기자와 언론 등을 가리켜 '기레기'라고 비판하는 여론이 쏟아졌습니다.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자 해당 기자의 소속 언론을 포함한 몇몇 언론에서는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한다고 한 정 전 장관의 말은 '팩트'가 아니다. 해당 기자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서 반박보도를 냈습니다. 정 전 장관의 말이 틀렸다는 것인데, 특정한 개인을 향한 언론의 반박보도는 이례적입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먼저 정 전 장관의 발언이 나오게 된 '맥락'을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논란의 발언은 정 전 장관이 지난 20일 KBS 특집대담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나왔습니다.

대담에서 사회자는 "미국은 비핵화를 견인하려면 북한에 당근을 주지 말라고 한다"면서 "우리(한국)가 북한에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며 '미국의 입장에서' 정 전 장관에 물었습니다. 여기에서 정 전 장관의 발언이 시작됐습니다. 정 전 장관은 쓴웃음을 내비치고는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며 사회자의 발언을 겨냥한 뒤 말을 이어갔습니다.

정 전 장관은 "어떤 젊은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합의했는데 미국과 협의하고 한 것이냐"고 묻자 "깜짝 놀랐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됐나"라며 "남북 정상 간에 가고 오고하는 것도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기자라니 큰일 났다. 주인 의식을 가져야한다. 오너십이 있어야 한다"고 성토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논란이 된 정 전 장관의 발언은 '미국이 북한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북한의 진심을 믿을 수 있냐'는 인식을 드러낸 사회자를 비판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정 전 장관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한 젊은 기자'의 사례를 인용해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입장만을 연신 강조하는 한국 언론의 전반적 분위기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따라서 CBS 기자가 "미국의 허락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정 전 장관을 질타하는 듯한 언론의 보도는 초점을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입니다. '팩트를 말하자면' 정 전 장관은 어디까지나 기자 개인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만을 따라 '북한의 선(先) 비핵화 조치'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언론에 쓴소리를 던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명 일관하는 언론?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의 성과를 안고 함께 백두산에 오른 20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벌어진 기자들의 질문은 실시간 생중계됐습니다. 저 역시 화면에 비친 기자들의 질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일관되어 보는 내내 답답해하며 '이건 좀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청와대 기자단들은 모두 '그래서 미국은 북한을 못 믿겠다는데 북한이 정말 비핵화를 할까?'라는 취지의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마땅히 국민을 대신해 질문을 고려해야 할 청와대 기자단의 수준이 기대 이하'라는 여론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터져 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 수행원들은 평양과 백두산을 찾아 북측의 진심어린 환대를 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평양 시민 15만 명의 앞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라며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향해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라고 연설을 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평양남북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은 80%를 넘어섭니다. 국민이 진정 궁금해 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언급한 우리 동포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평양 시민들 앞에서 우리 민족이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떠한 취지에서 그런 말을 했나" "민족 자주의 원칙이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물음이 끝내 나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언론은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개 기자가 소속된 언론은 27일 "미국과 사전협의 거쳤냐'는 질문이 '허락 받았냐'로 둔갑(했다)"며 오직 정 전 장관을 '공격'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김 위원장 서울 방문 때 트럼프 대통령도 참여한 3국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가능성까지 내다본 수준 높은 질문"이라며 소속 기자를 적극 칭찬했습니다.

해당 언론은 "문 대통령의 이런 접근법을 알고 있는 언론 입장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에 대해 미국과 사전에 협의가 있었는지를 물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심지어 남북의 경의선 북쪽 철로 구간 공동점검이 "한미연합사령관이 사령관으로 있는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거부되는 상황"이라며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미국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고 북한에 제안할 수 있을까?"라며 여전히 '굳건한' 미국 중심적 시각을 견지했습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그 한번만 콕 찝어서 언급할 건가? 전체 맥락과 행간을 봐라. 이따위(를) 기사화해야 하는지" "왜 사전 협의가 필요한지 그러한 사고를 한다는 자체가 바로 '속국근성' 아닐까요? 그것도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 직접 문의 하는 과정에서 한다는 게 너무 황당합니다. 그냥 쉴드치는 것으로만 보이네요" 등의 신랄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만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첫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며 한반도는 지금껏 보지 못한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정 전 장관의 발언이 나오고 일주일 만에야 '그게 아닌데 억울하다'는 변명을 기사로 봐야 하는 현실이 갑갑합니다.

한반도와 우리 민족이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한 지금, 여론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언론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해 언론이 본연의 자세를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야 언론이 남북관계 개선에 초를 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권방송>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정세현, #미국속국, #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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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일본의 동향에 큰 관심을 두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깨부수는 민중중심의 가치가 이땅의 통일, 살맛나는 세상을 가능케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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