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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반갑고 설렜다. 지인들은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당일 행사장 부스에서 수제 물건을 팔거나 타로 상담을 하겠다고 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축제에 참가하기로 했다.

며칠 후 약속이 있어 동인천에 들렀다. 사흘 후면 퀴어축제가 열릴 장소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거리 곳곳에 퀴어축제를 반대한다는 검은색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세계보건기구가 경고를 했다는 둥, 동성애자 때문에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을 거라는 둥 말도 안 되는 거짓과 혐오 표현이 가득했다.

축제 당일인 8일, 오전부터 기독교 단체가 동인천 북광장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행사가 열릴 예정이던 장소를 반대 단체 사람들이 뺑 둘러싸 참가자들이 안으로 들어가지도, 이미 들어가 있던 이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경찰이 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고 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경찰이 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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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가 조금 넘어 동인천 광장에 도착했을 때,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던 지인들은 광장 주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보수집회 참가자들은 다수가 중년 이상의 노인이었지만, 퀴어 반대 단체에서 온 이들은 20, 30대 젊은이들이 많았다. 10대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사랑의 힘일까, 혐오의 힘일까

지인 중 한 명이 축제 주최 측(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과 소통하고 있어 진행 사항을 문자로 전달받았다. 지금 동인천 고가 아래에서 퍼레이드 차량이 반대 측에 둘러싸여 움직이지 못한다는 소식에 그쪽으로 향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과 외침이 그곳에 가득했다. 기독교에선 이걸 '방언'이라 한다는데, 기독교 단체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방언을 쏟아내는 통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차량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과 마이크 소리는 잘 전달되지 않았다. 반대 측 사람들이 차량 위로 올라와 진행자를 밀어뜨리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퍼레이드 차량 바퀴는 반대 측에서 펑크를 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오후 세 시, 결국 견인차가 퍼레이드 차량을 끌고 도롯가로 이동시켰다. 반대 측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고 축제 참가자들은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축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축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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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측 사람들은 온종일 악을 썼다. "사랑하니깐 반대한다"는데, 사랑의 힘인지 혐오의 힘인지, 하여튼 엄청난 에너지였다.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한 노인이 지인의 팔을 물었다. 상처가 나고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노인을 잡지 못했다.

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중엔 청소년도 많았다. 그 중엔 지인의 자녀와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과 근처 떡볶이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십대들은 친한 친구들과 자신의 성정체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축제 반대 측의 험악하고 집요한 혐오의 말에 혹 상처받지 않았는지 조심스레 물었더니 역시나, 그들의 표정과 기세가 너무 무섭단다. 그래도 오후에 예정된 퍼레이드에 꼭 참여하고 싶단다.

그 사이 문자가 왔다. 오후 세 시 반, 동인천 남광장. 남광장을 이리저리 배회하던 중 다시 한번 소식통이 날아왔다. 배다리에 또 다른 퍼레이드 차량이 준비돼 있으니 그리로 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 차량 역시 반대 측 사람들로 막혀 있었다.

우리는 바로 옆 배다리 전철이 지나가는 고가 아래에서 다음 문자가 날아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그곳엔 한 무리의 젊은이들도 모여 있었다. 지인이 그곳에서 타로를 보겠다며 자리를 잡았다. 옆의 젊은 친구들은 동그랗게 모여 춤을 췄다. 지인들과 서로 물병을 건네고 웃음도 주고받았다.

내내 긴장했던 몸과 맘에 잠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숨통이 트였다. 단 하루, 그냥 이렇게 모여 즐겁게 놀다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놔두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저리 혐오의 말을 내뱉으며 악다구니를 쓰는 건지... 아주 잠시 동안 낭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주민들이 건네준 무지개 부채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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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도로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퍼레이드 차량을 둘러싼 반대 측 사람들 사이로 장애인차별연대 참가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간 것이다. 무지개 깃발을 높이 들고 말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차량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잠시 후 어디선가 축제 참가자들 수십 명이 한꺼번에 차량 주위로 몰려왔다. 차량 위에서 반대 측 사람들에게 고립되어 있던 퍼레이드 진행자가 이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반대 측 사람들의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고함에 맞서 우리는 "차별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크게 외쳤다.

길 건너에서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 중 몇몇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지개색 부채를 던져주기 시작했다. 녹색당에서 이날 사용하기 위해 준비한 부채였다. 배다리 인근에 보관해 두었던 것을 그때까지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품에 부채를 가득 안고 차량 사이를 뚫고 달려와 공중으로 수차례 부채를 던져주던 그들의 모습에 우리는 환호하며 부채를 나눠 가졌다. 그곳은 순식간에 무지개색으로 넘실대는 축제의 현장으로 뒤바뀌었다. 특히 맘에 들었던 건 그 부채 양면에 적힌 "왜", "뭐"라는 문구였다. 그 부채 하나로 끈끈한 연대감이 생겼다. 피곤이 날아가고 다시 힘이 샘솟는 신비한 경험이었다.

오후 4시 30분 예정이었던 퍼레이드는 전혀 진척이 없었다. 차량을 둘러싼 대치 중 축제 참가자가 타고 온 휠체어를 반대 측에서 밀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소란은 계속 일어났다.

오후 여섯 시가 지났을 무렵 차량 진행자가 앞쪽에서부터 무리마다 다가와 어떤 말을 전하고 있었다. 그가 한 말은 "이쯤에서 해산해야 할 것 같아요"였다.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가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해산이 아쉬운 분들은 동인천 북광장으로 와 주세요. 흩어져서 천천히 모여주세요."

마음 속에선 '천천히'를 되뇌면서도 걸음은 자꾸 빨라졌다. 반대 측 역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광장에 마련된 축제 현장은 여전히 반대 측과 경찰에 둘러싸여 고립돼 있었다. 그 안에 솟은 무지개 색 깃발들이 처연해 보이다가도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음에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실패한 퀴어축제? 그들이 모르는 것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들이 연대발언을 하고 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들이 연대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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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해질 무렵, 드디어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고립되었던 깃발이 움직였다. 여전히 반대 측은 극렬하게 막아섰다.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경찰과 반대 측 사람들 때문에 퍼레이드 행렬에 다가설 수 없었다. 멈춰 선 듯 보였지만 행렬은 조금씩 아주 천천히 이동했다.

어딜 가도 반대 측 사람들이었다. 퍼레이드 행렬의 깃발을 반대 측 사람들이 낚아채기도 했다. "집에 가" "깃발 내려" 끝이 나지 않는 고함에 나와 지인들은 급격한 피로를 느꼈다. 종일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해 배가 너무 고팠고 다리도 아팠다.

분식집에서 후다닥 밥을 먹고 나왔을 땐 행렬도, 반대 측 사람들도 모두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보니 오후 9시가 넘어 퍼레이드 행렬이 남광장에 도착했고 주최 측의 마무리발언으로 축제를 마쳤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것이 못내 아쉽다.

방송에선 퀴어 축제가 반대 측의 방해로 무산되었다는 내용의 뉴스가 나왔다. 차량을 앞세운 퍼레이드도 못 했고, 부스도 제대로 못 열고, 행사장은 고립되었고, 축제 참가자들은 흩어져 우왕좌왕했다. 이것은 실패일까?

계획대로 행사를 진행하지 못한 것이 실패라면 퀴어 축제는 제대로 실패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 실패라면 퀴어 축제는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했다. 그날 참가자들은 반대 측에게 맞서 구호를 외쳤고, 무지개 장신구 하나로 서로에게 연대감을 느끼며 정보를 나눴고, 눈빛으로 지지하며 격려했다. 그리고 그들이 결코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축제 참가 전날, 털실로 무지개 색 팔찌를 만들었다. 이걸 본 지인들이 예쁘다며 부러워했다. "내년엔 많이 만들어서 부스에서 팔아"라는 말을 누군가 내뱉었다. "그래, 잘 팔리겠다." 혐오의 말이 넘쳐나는 아수라장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내년'을 생각했다.

장담하건대, 그날 축제 참가자들 중에서 이대로 퀴어축제가 쪼그라들어 사라질 거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혐오세력이 아무리 극렬해진다 해도 우리는 결국 해낼 거란 믿음, 내년엔 더 잘 되길 바라는 소망,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며 연대한 서로에 대한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성경에 나온 말이라 했던가. 성경의 말씀에 따라, 혐오세력의 악다구니는 그냥 지나가는 통과의례라 여기며 우리는 다음을 꿈꾼다. 마지막으로 내가 듣지 못한 신우리 공동조직위원장의 마무리 발언 중 일부로 글을 마친다.

"그 무엇도 우리의 존재를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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