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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언론에서 보도한 임진왜란 원숭이 부대 기사가 최근에도 신문과 라디오 뉴스에서 보도됐다. 임진왜란 때 원숭이 부대가 실제로 활약했다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학술 성과를 보도하는 내용이다.

경북 안동의 풍산 김씨 문중에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란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천조는 말 그대로 '하늘의 조정'이란 의미로 조선이 상국(上國)인 명나라 정부를 높여 부르던 표현이다. 천조장사전별도는 임진왜란 때 참전하고 돌아가는 천조 부대(천조)의 장병(장사)들을 위한 작별 잔치(전별)를 묘사한 그림이란 의미다.

이 그림의 왼쪽 하단에 원병삼백(猿兵三百)이라 적힌 깃발과 함께 원숭이들이 명나라 군인들 옆에서 열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있다. 원병삼백은 말 그대로 원숭이 병사 3백이란 의미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원병을 실제 원숭이 병사로 이해하지 않고 원숭이처럼 날쌘 병사로 이해했다.

안대회 교수는 원병삼백을 문자 그대로 원숭이 병사 3백으로 이해했다. 임진왜란 의병장 조경남의 <난중잡록>이나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 등에 실제의 원숭이 부대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입각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 논문이 학술 모임에서 공개된다고 지난 6월 보도됐고, 그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다고 9월 6일 보도됐다.

원숭이들이 소사 전투 승리에 결정적 영향?
 
 베이징동물원에서 찍은 중국 원숭이.
 베이징동물원에서 찍은 중국 원숭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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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다루는 지난 6월과 이번 9월 6일의 언론 기사들은 임진왜란 2라운드인 1597년 정유재란 때의 소사 전투에서 원숭이 부대가 승리를 일궈냈다고 강조했다. 일본군이 지금의 충남 천안에서 벌어진 소사 전투에서 양호(揚鎬) 장군 휘하의 명나라 부대에 딸린 원숭이 부대 때문에 대패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30일자 <동아일보>는 '임진왜란 때 왜적 혼 빼놓은 원숭이 기병대 실제 있었다'는 제목 하에 "1751년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이 쓴 <택리지>의 '팔도론·충청도'에는 이처럼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 나타나 있다"면서 <택리지>의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명나라의 양호(揚鎬)는 원숭이 기병 수백 마리를 데리고 소사하 다리 아래 들판이 끝나는 곳에서 매복하게 하였다. 원숭이는 말에 채찍을 가해서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왜적들은 원숭이를 처음으로 보게 되자 사람인 듯하면서도 사람이 아닌지라 모두 의아해하고 괴이하게 여겨 쳐다만 보았다. 혼란에 빠져 조총 하나, 화살 하나 쏴 보지도 못하고 크게 무너져 남쪽으로 달아났는데 쓰러진 시체가 들을 덮었다."
 
원숭이들이 말을 타고 일본군 진영에 뛰어들자 일본군이 조총과 화살도 써보지 못하고 크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체가 들을 덮었다고 했다. 한편, 9월 6일자 <한국일보>는 '임진왜란 때 활약했다는 원숭이 기병대 실존했다'는 제하에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지금의 천안인 소사 전투에서 명나라의 양호 장군이 승리해 일본군의 북진을 차단했다. 이중환은 이 전투와 관련, 이렇게 썼다.

'거리가 100여 보가 되기 직전에 교란용 원숭이를 풀어놓았다. 원숭이는 말을 타고 말에 채찍을 가해서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중략) 적진으로 바짝 다가서자 원숭이는 말에 내려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왜적들은 원숭이를 사로잡거나 때려잡으려 하였으나 원숭이는 몸을 숨기고 도망 다니기를 잘해서 진영을 꿰뚫고 지나갔다.'

소사 전투는 평양, 행주산성 전투와 함께 임진왜란 시기 육군의 삼대첩(三大捷)으로 꼽힌다."

원숭이들이 일본군의 반격을 받기는 했지만 일본군 진영을 잘 뚫고 다녔다고 한 뒤, 이 전투가 3대 대첩으로 꼽힌다고 했다.

실제로 소사 전투는 중요한 사건이다. 명나라 부대가 벌인 이 전투는 한양을 향해 북상하던 일본군의 기세를 꺾고 일본군의 남하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위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평양대첩·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의 3대 육상전투로 꼽히기도 한다.

소사 전투의 이 같은 중대성을 감안하면, 원숭이 부대가 일본군을 격파했다는 언론보도들은 원숭이들이 임진왜란 3대 육상전투 중 하나를 승리로 이끌어 일본군의 퇴각을 유도했다는 말이 된다. 원숭이들이 조선과 명나라의 운명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는 말이 된다.  

임진왜란 때 원숭이들이 전투 현장에 출현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말을 타고 달린 것도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는 문헌들이 있다. 임진왜란 의병장 조경남의 <난중잡록> 무술년 편에도 말을 잘 다루는 원숭이 4마리를 명나라 군영에서 봤다는 글이 적혀 있다. 위의 <동아일보> 및 <한국일보> 보도처럼, 원숭이들이 실제 전투에 투입됐다는 기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원숭이들이 소사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이로 인해 일본군이 북진을 포기했다는 말은 상당한 과장을 담고 있다. 원숭이들이 전투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일본군을 격파한 주역은 아니었다.

언론 보도에 빠진 <택리지> 내용을 보면

위의 <동아일보> 및 <한국일보> 보도는 <택리지> 원문을 보여줬다. 그랬기 때문에 독자들은 원숭이들이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의 보도들에는 결정적인 대목이 빠져 있다. 소사 전투의 승부를 결정지은 핵심 대목에 대한 <택리지> 원문이 빠져 있다. 특히 <동아일보> 기사는 원문의 중요 부분을 생략해놓고도, 원문 전체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도했다. 또 원문 일부를 요약해서 보도하면서도, 원문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처럼 했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택리지> 원문은 실제로는 다음과 같다.
 
"양호는 타타르족 출신 장군인 해생, 파귀, 새귀, 양등산에게 철갑 기병 4천 명을 거느리게 하고, 이들 사이에 원숭이 수백 마리를 섞은 뒤, 들판이 끝나는 소사하 다리 밑에 숨어 있도록 했다. 그가 왜적을 바라보니, 직산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것이 마치 수풀 같았다.

그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 100여 보 되는 곳에 왜적이 이르자, 먼저 원숭이를 풀어놓았다. 원숭이들은 말을 타고 채찍질을 하면서 왜적의 진으로 뛰어들었다. 왜국에는 본래 원숭이가 없으므로 왜적들은 원숭이를 처음 봤다. 사람 같기도 한데 사람은 아니어서 다들 괴이하게 여겼다. 진영에 머문 채 다들 발길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왜적의 진영에 가까이 간 원숭들은 곧장 말에서 내려 진영 내로 들어갔다. 왜적들은 원숭이를 사로잡으려 했지만, 원숭이들은 잘 피하면서 온 진영을 헤집고 다녔다.

진영이 어지러워지자, 해생 등이 이 틈을 타서 곧장 철갑 기병을 풀어 신속히 짓밟도록 했다. 왜적은 총과 화살을 한 번도 쏴보지 못하고 크게 패배해 남쪽으로 달아났다. 들판은 쓰러진 시체로 덮였다. 이겼다는 기별이 오자 양호는 군사를 정돈하고 왜적을 남쪽으로 쫓아 경상도 바다에까지 이르렀다."
 
<택리지> 원문을 보면, 원숭이들이 일본군들의 주의를 산만케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군을 격파한 것은 명나라 병사들이었다.

그런데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원숭이들이 일본군 진영에 들어간 사실과 일본군이 당황해한 사실을 소개한 뒤 곧바로 일본군이 대패했다는 사실을 연결했다. 원문까지 제시하면서 이렇게 했기 때문에 독자들은 원숭이 부대가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것 같은 착각을 가질 수도 있다. 원숭이들의 실제 기여도를 과장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명나라 군대의 모습을 담은 그림.
 명나라 군대의 모습을 담은 그림.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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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전투나 평양 대첩에서는 명나라군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명나라군은 그렇게 열심히 싸우지 않았다. 적당히 싸웠을 뿐 아니라 휴전협상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전황이 너무 격렬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행주대첩을 성사시켜 일본군을 곤란케 한 권율 장군한테도 '적당히 하라'는 식의 주의를 줬을 정도다. 일본군을 너무 많이 죽이면 휴전협상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가 쓴 '임진왜란과 명나라 군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명나라군은) 결전을 벌여 일본군을 몰아내겠다던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이제 강화협상을 통해 일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명 조정에서 전비 지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다가 조선에 파견된 명군 내부에서도 염전(전쟁 혐오) 의식이 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2001년에 <역사비평>에 실린 논문.
 
명나라 군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출전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조선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므로 최선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 평양대첩이나 소사전투 등은 예외이지만, 대부분의 다른 전투에서는 열심히 싸우지 않았다. 남의 나라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의 나라 사람도 이 땅에서 열심히 싸워주지 않는데, 남의 나라 사람들이 데려온 원숭이라고 해서 열심히 싸워줄 이유가 있었을까?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을 원숭이들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전쟁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생물종 내부의 전쟁이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남의 나라 군대는 이 땅에 와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인간도 아닌 원숭이가, 그것도 조선 원숭이도 아닌 명나라 원숭이들이 이 땅에 와서 일본군을 열심히 격파할 리는 없다. 원숭이들을 풀어놓는 바람에 일본군이 당황했고, 그것이 승부에 영향을 줬다는 부분까지만 사실이다.

위 보도들은 독자의 흥미를 끌겠다는 목적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역사기록의 핵심 부분을 생략한 채 독자에게 보도했다. 임진왜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보도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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