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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다재다능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이고 이제 첫 소설집까지 낸 사람이 있으니, 그 유명한 톰 행크스다. 질투도 어느 정도 비슷해야 가능할 터. 질투할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소설을 읽었다. 어디 한 번 해보시게, 하는 심정이랄까.

타자기의 열렬한 애호가답게, 소설집의 제목은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17편의 소설 속엔 모두 타자기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책엔 다양한 종류의 타자기 사진이 실려 있기도 한데, 처음엔 제대로 보지 않고 책장을 휙휙 넘기다가 어느 순간 그 고운 자태에 눈길을 빼앗겼고, 급기야 맨 앞 장으로가 다시 타자기 사진만 넋을 잃고 쳐다보기도 했다.

타자기를 전혀 모르니 하는 소리일 수 있지만, 이 또한 어느 때엔 최첨단의 신문물이 아니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어쩜 이리 고풍스럽고 근사한지, 마치 처음부터 예술품으로 창조한 것은 아닌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고 만다. 행크스의 타자기 사랑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책날개에 의하면 톰 행크스는 평소에도 타자기로 글을 쓰고, 1978년부터 세계 각지의 빈티지 타자기를 100개 넘게 수집했다고 한다. 최신식 기기라면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얼리 어답터보다 내겐 더 정감있게 느껴진다. 경제력 과시로 치면 이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 짐작되지만, 새것보다 옛것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니 비합리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책표지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책표지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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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들여다 보면 이렇다. <석 주 만에 나가떨어지다>의 애나는 완벽, 그 자체다. 언제나 의욕적이고, 집중력이 강하고, 자기 일을 능숙하게 해내며, 밤잠을 설쳐도 하루종일 열심히 일할 힘을 지녔다. 외모?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그런 애나가 고교 시절부터 친구인 '나'에게 연인이 되자고 프로포즈 하니, 완전히 꿈 같은 상황 아닌가. 소설은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하다. 완벽한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환호하는 것도 잠시. '나'는 애나가 짜놓은 살인적인 스케줄(조깅, 스쿠버 강습, 요가 스트레칭도 모자라 남극대륙 여행 계획까지!)에 지쳐 나가 떨어지고 만다.

애나에게 맞추기 위한 '나'의 고군분투는 지독한 감기몸살에 걸리는 것으로 끝난다. 아픈 '나'에겐 휴식이 간절하지만 애나는 한 시간 반마다 12분씩 자전거, 하루에 한시간씩 스트레칭을 지시한다. 로맨틱 코미디답게, 이들은 서로가 어울리지 않는 짝임을 유쾌하게 인정하며 다시 친구로 돌아간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각자에게 맞는 짝이 있을 뿐.

이 단편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이후의 소설에서도 여러 번 등장한다. <앨런 빈 외 네 사람>은 이들의 거창하지만 무모하고, 어쩐지 허망하게 끝나버린 달 여행을 그려내고, <스티브 웡의 퍼펙트게임>은 끝내주는 볼링 실력의 스티브가 우연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뒤, 볼링에 완전히 흥미를 잃는 과정을 그린다. 이 사총사가 모이면 언제나 유쾌하다.

우리네 청춘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단편도 있다. <출연자 명단>의 수는 뉴욕에 올라온 뒤 좌절을 겪는다. 친구 집에서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몸조차 제대로 씻을 수 없는 지경. 약에 취한 사람과 사기꾼이 가득한 이 도시는 좀처럼 그녀에게 협조적이지 않다. 
"수는 믿음을 가지고 뉴욕에 왔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의 재능에 대한 믿음, 그리고 영원히 잠들지 않는 도시가 약속하는 미래에 대한 믿음. 어쩌면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모험일지도 몰랐다." (p202)

그러나 그녀는 뜻밖의 만남으로 기운을 얻고, 그녀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게 된다. 시골 청년의 도시 성공담은 뻔할지 몰라도 언제나 희망을 준다. 타인의 도움 한 꼬집 정도는 그 빛을 변색시키지 않는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 하에.

아무리 세계적인 배우라고는 하지만, 미국 배우의 정치적 성향까지는 나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을 보며 짐작할 수 있는 몇 가지는 있었다. 가령, 행크스는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단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엠데시는 이제 막 미국 시민으로 귀화하려는 참이었고, 그것은 엠데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일이었다. 스티브 웡의 조부모들은 1940년대에 귀화했다. 내 아버지는 1970년대에 저질 폭력배들인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을 피해 이곳에 왔다. 애나의 조상들은 그보다 오래전, 신세계에서 무엇이든 약탈할 수 있는 것을 찾으러 노를 저어 북대서양을 건넜다." (pp9~10, <석 주 만에 나가떨어지다>) 

이제 막 귀화하려는 친구를 위해, '나'는 1940년대에 만들어져 별이 마흔여덟 개만 그려진 미국 국기를 선물한다. 훌륭한 시민이라면 풍요로운 이 나라에 정착할 수 있음을 친구가 떠올리기를 기원하며. 그들은 귀화식에서 다인종의 수많은 이민자들을 보며 미국에 대한 사랑으로 북받쳐 오르기도 한다.

소설의 내용이 작가의 생각 그대로일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안될 일이지만, 나로선 이런 내용을 쓰는 작가가 트럼프의 가혹한 이민자 정책을 찬성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뿐인가. <코스타스를 찾아서>의 아산이 고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역경 자체다. 도착한 미국도 호락호락하진 않지만, 그는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195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서는 한 가정의 화목하고 정겹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가 그려진다. 아이들은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고, 남자는 온 가족이 밥 먹는 모습으로도 행복하며, 어린 딸이 아내를 꼭 닮았다는 사실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낀다.

천천히 드러나는 것은, 그가 왼쪽 다리와 왼쪽 손가락 세개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잃었다는 사실이다. 짧은 단편에서 꽤 긴 분량이 할애되어 묘사되는 전장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바로 옆에서 동료가 과다출혈로 죽어도 몰랐고, 몇몇은 폭탄에 산화했다. 전쟁도 모자라 혹독한 추위까지 젊은 목숨들을 앗아갔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전쟁이다. 그렇다면 부상 한 번 당하지 않은 자는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사람이 다치고 죽는 것을 허다하게 목격하고, 자신 또한 수많은 남자와 소년들을 죽인 이, "그 전쟁으로부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정의를 쥐어짜"(p74)내야 했던 이가 행복할 리가. 
"눈을 감으면, 섬광이 번쩍이면서 병사의 헬멧이 폭발하여 피 구름이 되고 붉은 안개가 흩뿌려지는 형상이 보였다. 거의 매일 밤 그랬다." (p76)

행크스가 묘사하는 전쟁은 이러했다. 이들은 전쟁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얼마간은 꼬투리를 잡을 생각으로 펼쳤던 소설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톰 행크스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따뜻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그의 소신을 엿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으로 여겨진다. 저자가 이미 알려진 배우라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근사한 소설이다. 배우로서의 행보뿐 아니라,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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