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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원 주화
 500원 주화
ⓒ 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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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까지 끓여 파는 것은 너무한 거지. 없으면 모를까, 식당이 버젓이 있는데 매점에서 김밥까지 말아 팔고 말야. 솔직히 매점 쪽 입장도 생각하다 보니까 내가 김밥까지는 이해한다고 쳐. 근데 라면까지 3000원에 끓여 팔면 3,500원 받는 나는 그냥 눈뜨고 앉아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지!"

주말이라 모처럼 찾은 동네 찜질방 겸 목욕탕 매점 앞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두어 달 전 목욕탕에 입주해 장사를 시작한 식당 사장이 매점 사장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중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뜨거운 찜질방 열기로 땀에 흠뻑 젖은 나는 시원한 매점 식혜로 목을 축이고, 가져온 책을 읽으려고 막 페이지를 펼치며 엎드렸던 참이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겠거니 했는데 싸우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나 앉아 소동이 벌어진 매점 앞을 지켜봤다.

내가 다니는 목욕탕은 지은 지 20년 가까이 됐다. 초창기부터 이곳을 애용한 내가 기억하기로 목욕탕 사장만 해도 벌써 여러 번이 바뀌었다. 특히 매점이나 식당 사장은 어림잡아 2~3년에 한 번씩은 달라졌다.

근래에는 그간의 역사가 입증한다며 '의욕 있게 들어가 봤자 결국은 다 까먹고 두 손 탈탈 털고 나온다'라는 말이 돌아서인지 식당 자리가 2년 가까이 텅 빈 채 방치된 상태였다. 그래서 식당 자리가 비어 있을 때 새로 바뀐 매점 사장은 식당 메뉴였던 찜질방 단골 요깃거리, 미역국이나 라면 등을 끓여 팔았다.

그간 매점에서 5000원 하는 미역국이나 3000원 하는 라면을 하루 평균 몇 그릇이나 팔아 왔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근방에 새로 생긴 시설 좋은 목욕탕이 많은 터라 오래되고 시설이 낙후한 이곳의 고객 수가 현저히 줄어들은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여름은 더더욱 발길을 하는 이가 적어져, 매상이 썩 시원하게 나오지는 않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던 차에 임자가 나타난 식당이 새롭게 문을 열었고 식당 사장은 이런저런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의욕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매점 사장은 그동안 당연하게 팔던 미역국이나 라면을 식당에게 양보해야 했다(대신 목욕탕 주인이 세를 좀 내려줬다는 후문이 있다).

"밥장사면 밥장사답게 음식을 맛있게 할 생각을 해야지, 어딜 와서 행패야? 음식 맛있어 봐. 매점에서 먹나? 손님이 거기 음식 맛이 없다고 여기서 끓여달라는데, 그럼 손 놓고 앉아 둘 다 굶어 죽어?"

찜질을 하면서 식혜며 구운 계란을 사먹으며 얼굴을 익혀 왔던 매점 사장은 주문 받은 김밥을 말다가 매섭고 차가운 목소리로 응수했다. 분노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는 식당 사장의 항의가 무색할 정도였다.

"누가 그래요? 누가 그딴 소리를 해요? 데리고 와 봐요. 여기서 라면 먹은 사람한테 내가 다 물어볼 테니까. 험담을 해도 유분수지, 500원 싸다고 여기서 먹으려면 뭔 소리를 못 해? 그런 사람들 한 번이라도 내 음식 먹어 봤으면 손에 장을 지지겠네. 그런 소리 했다고 라면 판 사람이 더 나쁜 거고!"

사람 품성으로까지 말이 나가자 매점 사장도 김밥 말던 손을 멈추고 달려 나와 퍼부어 댔다. 분위기가 한층 험악해졌고, 더 나아가면 머리끄덩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이 "그런 문제는 목욕탕 주인하고 해결을 보라"는 말로 둘의 격앙된 감정싸움을 뜯어 말렸다. 식당 주인을 식당으로 데리고 가면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소동이 멈췄다.

'근기법'보다 '500원 라면값'이 가까운 이들

자영업자와 봉급생활자 체감경기 달라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향후경기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자영업자가 79로 봉급생활자 91보다 12포인트 낮다. 둘 간의 격차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컸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지하도상가 점포에 붙은 임대문의 안내문.
▲ 자영업자와 봉급생활자 체감경기 달라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향후경기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자영업자가 79로 봉급생활자 91보다 12포인트 낮다. 둘 간의 격차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컸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지하도상가 점포에 붙은 임대문의 안내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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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재밌는 것이 싸움구경이라지만 두 사람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최근 인천에서도 소상공인연합회가 나서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소득으로 사는 소상공인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 21일 인천시청 앞 미래광장에서 "경제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소상공인을 보듬어주는 정책을 펼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지역 소상공인연합회에 가입하지 않고 (시간·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동네에서 혼자 장사를 하거나, 퇴직했거나, 마땅한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한 남편 또는 취업준비생인 아들딸을 동원해 말 그대로 인건비를 아껴가며 그날그날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은 소위 '2년 사이 최저임금이 29% 인상', '현행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일률적 적용' 등 연합회가 주창하는 구호들을 알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다는 편이 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이들에게 그러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당장 500원을 덜 받고 라면을 끓여 파는 것과 500원을 더 받고 라면을 끓여 파는 것의 간극에 비한다면 말이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이내 '평화'를 찾은 찜질방에서 나는 다시 찜질을 하고 책을 읽고 식혜를 더 사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으로 아침에 끓여놓은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는 대신 찜질방 식당에 들러 제일 비싼 6000원짜리 소내장탕을 먹어야겠다고. 그리고 그 비장한 결심을 지킨 나는, 어쩔 수 없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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