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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군 고서면 후산마을에 있는 대한민국 명승 제58호. 명옥헌 원림.선홍빛 꽃들 사이로 머리에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아담한 정자가 양반집 규수 인양 다소곳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담양군 고서면 후산마을에 있는 대한민국 명승 제58호. 명옥헌 원림.선홍빛 꽃들 사이로 머리에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아담한 정자가 양반집 규수 인양 다소곳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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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나라 때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동지섣달 월계화 앞에서'라는 그의 시에서 "지도화무십일홍(只道花無十日紅), 차화무일무춘풍(此花無日無春風)"라고 노래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그저 붉은 꽃이 피어야 십일을 넘기지 못하지만, 이 꽃은 날도 없고 봄바람도 필요 없네"라는 뜻이다. 

열흘 가는 붉은 꽃이 없는 줄 알았던 옛 시인은 날도 따로 없고 봄바람도 필요 없이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월계화를 보고 그 아름다움과 강인한 생명력을 찬양했다.

'차이나 로즈(China rose)'로 알려진 월계화는 야생 장미의 일종으로 중국 남방 지역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고 해서 투설홍(鬪雪紅), 봄을 이긴다 해 승춘(勝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시인 양만리가 유독 사랑했던 월계화에 버금가는 꽃이 있다. 사시사철은 아니더라도 한 여름부터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까지 백일 동안 남도 땅을 온통 붉디붉게 물들이는 꽃이 있다. 사찰이나 무덤·서원·향교·누정을 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주인공은 중국 자미성(紫薇省)에서 건너온 목 백일홍 꽃이다.

요즘 남부 지방 어느 곳을 지나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백일홍은 여느 꽃과는 다르다. 단 며칠 동안 화사하게 피었다가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 그런 꽃이 아니다.

석 달 하고도 열흘 동안 꽃을 피워낸다. 나락이 필 때까지 질기게 피어 있다. 모든 것이 먹을 것과 연결되는 가난했던 시절, 이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남도사람들은 이 나무를 '쌀밥 나무'라고 불렀다.

 명옥헌 원림에는 상지와 하지 두 개의 연못이 있다. 모두 네모난 모습이며 안에는 둥근 섬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에서 바라본 원림의 풍경. 조선시대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방지원도의 모습이다.
 명옥헌 원림에는 상지와 하지 두 개의 연못이 있다. 모두 네모난 모습이며 안에는 둥근 섬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에서 바라본 원림의 풍경. 조선시대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방지원도의 모습이다.
ⓒ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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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자 잊자, 다 잊자

대나무와 메타세콰이어 나무길로 유명한 담양에도 백일홍 꽃으로 널리 알려진 옛 정원이 있다. '계곡물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집', 대한민국 명승 제 58호 '명옥헌 원림(鳴玉軒苑林)'이 그곳이다.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후산리.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다.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옛날 기와집과 새로 지은 전원주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명옥헌을 알리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골목을 지나자 바로 마을 안쪽에 수십 그루의 백일홍이 붉은 아우성을 토해내고 있다.

선홍빛 꽃들 사이로 머리에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아담한 정자가 양반집 규수 인양 다소곳한 모습을 드러낸다.

계곡 사이 검은 바윗돌에 떨어져 흩날리는 붉은 꽃잎들. 연못에 풍덩 빠져 동심원을 그리며 잔잔하게 일렁이는 꽃물결. 암수 한 몸 되어 맴돌다 수면에 살짝 내려앉은 고추잠자리 한쌍. 머리 위에서 웅웅 거리는 꿀벌들의 평화...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가상의 선경,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 세상의 풍경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실화'다. 늦여름의 더위쯤이야 한 방에 날려버린다. 과연 대한민국의 명승답다.

 연못에 풍덩 빠져 일렁이는 꽃물결.
 연못에 풍덩 빠져 일렁이는 꽃물결.
ⓒ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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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별서정원, 명옥헌에는 그 아름다움과 달리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조선 중기 광해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해군의 폭정과 패륜정치에 환멸을 느낀 선비, '밝은 계곡'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 1583~1624)는 중앙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외가가 있는 이곳 후산마을로 내려온다.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여덟 살의 어린 동생 영창대군을 방에 가둬 놓고 불을 때서 증살(蒸殺)시킨 광해군의 광기를 옆에서 지켜본 오희도는 벼슬의 뜻을 초개처럼 버리고 낙향한다.

사마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오희도는 벼슬도 명예도 다 잊은 채 어머니와 함께 이곳 후산마을에 은거하며 '망재(忘齋)'라는 서재를 짓고 학문에만 정진한다. 이때 지은 망재가 '명옥헌의 원형'인 셈이다.

명옥헌은 아수라장 같은 정치판을 벗어나고파 했던 효심이 지극한 옛 선비의 '시크릿 가든'이었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정자에는 방이 하나 있고 사방으로 우물마루가 놓여 있다. 전형적인 호남지방의 정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정자에는 방이 하나 있고 사방으로 우물마루가 놓여 있다. 전형적인 호남지방의 정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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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좀 도와주시오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저지른 광해군의 폭정은 필연적으로 파국을 잉태하고 있었다. '인조반정'의 싹이 트고 있었다. 반정의 중심에 조선 16대 왕, 인조(仁祖)로 등극하게 되는 광해군의 조카, 능양군이 있었다.

왕자 시절 능양군은 쿠데타에 동참할 지지 세력과 인재를 모으러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요즘 정치인들이 즐겨하는 전국 민생 투어를 한 셈이다. 전라도 담양에 재야의 이름난 선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능양군은 말머리를 돌려 이곳 후산마을로 오희도를 찾아왔다.

"나를 좀 도와주시오..."

효성이 지극한 오희도는 노모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에 능양군의 청을 단번에 거절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촉한(蜀漢)을 세웠던 유비(劉備)가 남양에 있는 제갈량(諸葛亮)의 초가를 세 번이나 찾아가 큰 뜻을 밝히고 그를 초빙하여 책사로 삼았듯이, 인조는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세 번이나 후산마을을 찾아왔다고 전해 진다.

지금도 명옥헌의 서까래 밑에는 삼고(三顧)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인조가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인조가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세 번이나 후산마을을 찾아왔다는 의미의 '삼고(三顧)'현판
 인조가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세 번이나 후산마을을 찾아왔다는 의미의 '삼고(三顧)'현판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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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가 오희도를 찾아왔을 때 명옥헌의 북쪽 정원에는 은행나무가 있었고 뒤에는 오동나무가 있었다. 그때 인조가 타고 온 말고삐를 이 나무에 맸다고 하여 '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 또는 '인조대왕 계마상 (仁祖大王 繫馬像)'이라고 부른다.

오동나무는 고사하여 없어졌고 은행나무만 남아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 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조가 오희도를 만나러 올 때 타고 온 말를 맸다는 은행나무‘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전라남도 기념물 제 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은행 열매가 풍성 하게 열려 있다.
 인조가 오희도를 만나러 올 때 타고 온 말를 맸다는 은행나무‘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전라남도 기념물 제 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은행 열매가 풍성 하게 열려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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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후 인조는 오희도를 어전 회의(御前會議)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예문관 검열'에 제수했다. 검열(檢閱)은 지근거리에서 왕을 보좌하는 직책이어서 신망이 두터운 관리에게만 주어지는 벼슬이다.

오희도는 안타깝게도 그해 천연두에 걸려 그의 나이 41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도승지로 증직 되었다. 저서로는 <명곡 유고>를 남겼다.

옥구슬 구르는 소리 들리는 집 짓고

오희도의 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이곳에 은거하며 정원을 만든다. 경관이 아름다운 골짜기에 정자를 지었다. 연못을 파고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원림을 만들었다.

연못을 끼고 계곡을 올라가다 보면 바위 벽면에 '명옥헌 개축(鳴玉軒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암 송시열은 오희도의 후손이자 그의 제자인 오기석에게 정자 이름을 명옥헌이라 지어주고 바위에 이를 새겼다. 명옥헌 현판은 이 글씨를 모각하여 만든 것이다.

 우암 송시열이 바위에 섀겼다는 명옥헌 현판
 우암 송시열이 바위에 섀겼다는 명옥헌 현판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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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는 방이 하나 있고 사방으로 우물마루가 놓여 있다. 전형적인 호남지방의 정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의 경관을 차경 할 수 있도록 창호를 달아 놓았다. 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원림의 '붉은 아름다움'이 숨을 턱 막히게 한다.

명옥헌 원림에는 두 개의 연못이 있다.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모두 네모난 모습이며 안에는 둥근 섬이 조성되어있다. 조선시대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모습이다.

 오른쪽 둑방길에서 본 명옥헌. 아래 연못과 위쪽 연못 사이에 정자가 있다.
 오른쪽 둑방길에서 본 명옥헌. 아래 연못과 위쪽 연못 사이에 정자가 있다.
ⓒ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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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쪽 연못과 아래쪽 연못 사이에 정자가 소담스럽게 앉아 있다.

야트막한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은 자연스럽게 계류를 따라 위쪽 연못을 채우고 다시 아래 연못으로 흘러간다. 이때 '물이 흐르면 옥구슬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정자 이름을 '명옥헌(鳴玉軒)'이라 했다.

유홍준도 극찬한 배롱나무 심어놓은 뜻은...

뭐니 뭐니 해도 명옥헌의 화룡점정은 연못 주변에 심어진 백일홍 꽃이다. 이름처럼 백일 동안 붉은 꽃이 핀다고 하여 백일홍(百日紅)이라고 부르지만, 한 꽃이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꽃이 떨어지면 또 다른 꽃봉오리가 올라와 그 자리를 잇는다. 이렇게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한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 동안  붉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연못 가운데 섬과 양쪽 둑방길에 고목이 된 배롱나무가 꽃무리를 가득 달고 꽃술을 흔들고 있다. 늦여름 한줄기 바람에 떨어지는 붉은 꽃잎은 꽃비가 되어 흩날린다. 나무도, 땅도 붉다. 연못도 붉다. 나도 붉다. 연못에 뚝뚝 떨어진 꽃잎들이 처연하다.

 연못에 뚝뚝 떨어진 꽃잎들이 처연하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꽃잎>이 연상 된다.
 연못에 뚝뚝 떨어진 꽃잎들이 처연하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꽃잎>이 연상 된다.
ⓒ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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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까칠하면서도 구수한 입담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는 "연못 주위에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장엄하게 포치 하고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야를 끌어들임으로써 더없이 시원한 공간을 창출한 뛰어난 원림"이라고 명옥헌을 소개 한 바 있다.

특히, 그는 "명옥헌의 배롱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만한 장관"이라고 극찬했다.

백일홍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발음을 따라 배롱나무가 되었고, 나무 잘 타는 원숭이도 이 나무에서는 떨어진다 하여 '미끄럼 나무'라는 별칭도 있다. 중국 자미성에서 왔다고 '자미화'라고도 한다. '자미(紫薇)'는 북극성이 의미하는 황제를 상징한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궁궐에 많이 심어져 있는 이유다.

 연못을 중심으로 양쪽 둑방길에 고목이 된 배롱나무가 꽃무리를 가득 달고 꽃술을 흔들고 있다.
 연못을 중심으로 양쪽 둑방길에 고목이 된 배롱나무가 꽃무리를 가득 달고 꽃술을 흔들고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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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없는 배롱나무는 겉과 속이 똑같다. 백일홍의 붉은 꽃은 변하지 않는  마음, '단심(丹心)'을 의미한다. 선비들이 주위에 백일홍을 심어놓은 뜻은 백일홍처럼 끈질기게 학문에 정진하고, 자신을 드러내 한 점 부끄럼 없이 의리와 지조를 지키며 청렴결백하게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명옥헌 정자에 올라 본다. 서까래 밑에 걸려 있는 '삼고(三顧)' 현판이 크게 다가온다. '한자리 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권력의 주변에서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한물 간 인사'들에게 '들 때와 날 때를 알라'고 서늘하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변심과 변덕, 배신이 죽 끓듯 하는 하 수상한 세상이다.  청아한 옛 선비들의 붉은 마음, '단심'을 숭모하듯 명옥헌의 백일홍은 올여름 유독 붉게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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