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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은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고 알림을 종료한다고 했다. 뭔가 잘못 들어온 느낌이었다. 차는 아파트단지 안으로 들어와 있어서 더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돌려 천천히 차를 몰았다. 경사진 아파트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맞은편 길에 흑백의 펼침막이 보였다.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을 추모합니다."
 
펼침막    복잡한 도로에 걸려있는 펼침막.
▲ 펼침막 복잡한 도로에 걸려있는 펼침막.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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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칙칙한 양쪽 전봇대를 기둥으로 연결해 놓은 펼침막. 그걸 보고도 금방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모란공원은 눈에 띄지 않아 한산하고 쓸쓸하기까지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유일하게 꽃집이 한 군데 있었다.

밖에 나와 있는 꽃들은 거의 조화였다. 달랑 한 곳의 꽃집조차도 한적함을 더한다. 나는 고무 양동이에 담긴 흰 국화 두 송이를 샀다. 꽃집 주인은 무심한 듯 국화 밑동의 젖은 부분을 가위로 잘라 포장도 없이 건넨다. 오랫동안 이런 고객을 만난 탓일까.

7월 23일(월), 그날도 집안에 널린 잡다한 일들 앞에서 간신히 세탁기만 돌리고 있을 때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찜통 무더위에 흐느적거리는데, 습관처럼 핸드폰을 켜자 속보가 떴다. '노회찬의원 사망'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뭔가 서늘한 기운이 두 어깨에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그가 정의당 국회의원이라는 것, 티브이 화면에서 만나는 그의 모습은 하고 많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구별되었다. 그는 해직노동자, 청소노동자 등 어렵고 힘든 사람들 가까이에서, 치열한 투쟁현장에서 여유와 재치로 함께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그가 시나브로 다가왔다.

평소 그의 말은 어렵지 않았다. 어떤 어려운 주제도 그의 말을 통해서라면 쉬웠고 또 재미있었다. '노회찬의 말'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알아듣고 배시시 웃게 한다는 기대를 하게 했다. 우리는 정의당 당원이 아니지만 정치인 노회찬에 대해서는 그를 존경했다. 속보로 그의 소식을 듣고 그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 노회찬의원이 안장된 곳. 액자속의 그는 웃고 있었다.
 고 노회찬의원이 안장된 곳. 액자속의 그는 웃고 있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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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돗자리가 깔린 옆으로 꽃무니 양산이 놓여 있다. 누군가 놓아두고 간것일까요?
 돗자리가 깔린 옆으로 꽃무니 양산이 놓여 있다. 누군가 놓아두고 간것일까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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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금), 남편의 휴가 일정에 노회찬의원이 안장된 모란공원에 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모란공원은 남양주시 화도읍에 있었다. 자주 이사를 다니며 한때 남양주 진건읍에 살기도 했었는데, 모란공원을 이렇게 찾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오전 11시, 전국이 폭염으로 끓고 있는 중에 찾아간 모란공원묘역. 그래도 일반적인 추모공원과는 다를 줄 알았다. 언제나 아련한 선열의 얼이 담긴 곳. 그곳은 함부로 범접 못할 뭔가가 있다고 어렴풋이 느껴왔다.

모란공원이 국립묘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 시대의 정신을 이끌고자 했고, 민족의 스승이라 할 분들이 묻힌 곳인데 이렇게도 초라할 수 있나 싶었다.

        모란미술관 오른쪽으로 모란공원이 있다. 미술관은 그날 휴관중이었다.
 모란미술관 오른쪽으로 모란공원이 있다. 미술관은 그날 휴관중이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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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당신이 옳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김근태의원의 묘가 있다.
 김근태 당신이 옳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김근태의원의 묘가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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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 입구에 들어서고 몇 걸음 떼자 '김근태 당신이 옳았습니다'라는 팻말이 나무계단으로 보였다. 묘역에 세워진 솟대는 방향에 따라 누구의 묘가 있는지 알리는 역할을 했다. 묘역이 있는 대부분의 공간은 좁았다.

안장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회찬 의원의 묘에는 검은 비닐로 된 그늘 차광막이 처졌다. 노란 국화가 소복하게 덮인 무덤 위에는 의원의 웃는 얼굴이 프린트 된 액자가 놓여 있었다. 조화와 달리 대부분의 생화는 염천더위에 시들었다.

무덤 앞에는 은색 돗자리가 깔렸다. 우리처럼 그를 만나러온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하며 그를 기렸다. 무덤 옆에 꽃무늬 양산은 누군가 잊어버리고 간 게 아니라 놓고 간 것 같았다. 우리가 자리를 뜨면서 되돌아보자 중년의 부부인 듯 두 남녀가 무덤을 쓰다듬으며 조문하는 모습이 보였다. 젊은 남자 셋이 뒤를 이어 노 의원을 만나고 있었다.

매미울음소리가 떼창하듯 울어대는 소리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곡처럼 들렸다. 솟대에 적힌 이름들은 뉴스에서 들어 알거나 책을 통해서 만난 분들이었다. 왜 이다지도 이 사람들의 삶은 고난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가야했을까. 묘지에 적힌 간단한 이력과 사연을 읽고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솟대에 걸린 이름들이 먹먹하다. 문익환, 박용길, 문송면...
 솟대에 걸린 이름들이 먹먹하다. 문익환, 박용길, 문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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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철의 부친 박정기선생의 말이 들리는 듯, "종철아! 잘 가 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박종철의 부친 박정기선생의 말이 들리는 듯, "종철아! 잘 가 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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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열사가 안장된 묘와 추모비
 전태일열사가 안장된 묘와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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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다섯 어린 나이에 수은중독으로 쓰러진 문송연 군.
 열다섯 어린 나이에 수은중독으로 쓰러진 문송연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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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과 이소선 어머니,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 그리고 박종철 열사와 지난번 지병으로 돌아가신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씨까지 묘지를 둘러보며 우리는 잠시라도 그들의 뜻을 기리며 묵념했다. 부부는 합장이 돼 있었고, 모자(母子)와 부자(父子)는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문송면' 이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충남 서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15살 어린 학생. 돈도 벌고 야간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공장에 들어간 소년. 온도계 안에 수은을 넣는 일을 하다가 쓰러진 문송면은 두 달 만에 수은중독 진단을 받았다. 공장에서는 보호장비조차 없었고 환기시설도 없었다. 문송면의 꿈은 상경 7개월 되던 1988년 7월에 스러졌다.

모란공원입구는 마치 허름한 시골 창고를 들어가는 입구를 연상시켰다. 화려한 곳에 묻히기를 자원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여름휴가기를 맞이해 '모란미술관'이 잠시 문을 닫는다는 안내판을 본 것은 민주열사의 묘역을 다 돌아보고 나오면서였다. 모란공원은 마치 모란미술관에 붙어있는 것 같았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단 한번 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 놓은 열사들. 그들이 묻힌 곳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스산할까 싶다. 그분들 생전 삶이야 이름을 내세우기 위한 게 아닐지라도, 후세의 누군가를 위해서, 명성을 얻기 위한 삶이 아니었다 해도 참으로 안타깝다.

공장의 용접공으로 위장취업까지 했던 노 의원. 공장일을 통해 '노동'의 신성한 삶을 이 사회에 바로 세우기 위해서 헌신하신 노 의원이 묻힌 길목. 그 입구가 이렇게 초라한 곳인가 믿기지 않았다. 새삼 이승에서의 삶 소박하고 누추하였으니, 저 세상이라고 달라질 것을 바랄 리가 있겠냐는 반증인가.

          노동운동가 박태순 열사의 묘. 아직도 그의 죽음은 까닭을 알 수 없다.
 노동운동가 박태순 열사의 묘. 아직도 그의 죽음은 까닭을 알 수 없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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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덤인들 그 인생의 삶이 소중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곳에서의 무덤은 그저 평범한 민초의 무덤과 같으면서도 같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꽃다운 나이에 이승을 떠난 분들, 그것도 어느 날 권력을 앞세운 폭력적 집단의 악행과 고문에 의해서 온갖 고통을 겪다가 떠난 분들도 있다.

누구를 위한 삶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반인륜의 만행이 한 눈에 들어오는 무덤들. 묻어야 할 것은 진작 묻지 못하고, 묻혀서는 안 될 사람과 역사는 서둘러 묻혀버리고 마는 이 세상은 언제 제대로 돌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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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