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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전국에 최강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1일 오후 강원 홍천군 홍천읍 일대 온도가 40.6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날 홍천 기온은 40.6도까지 올라 관측 이래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2018.8.1
 전국에 최강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1일 오후 강원 홍천군 홍천읍 일대 온도가 40.6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날 홍천 기온은 40.6도까지 올라 관측 이래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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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더워도 너무 덥다.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라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다. 낮에는 이글이글 폭염, 미세먼지, 오존, 밤에는 지긋지긋한 열대야까지 사중고(四重苦)에 시달리다 보니 이젠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오는 듯하다. 매스컴에서는 '살인적 폭염'이라고 한다. 실제로 더위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무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죽어 나가는 현실이다. 혹서(酷暑)를 넘어 숫제 재앙에 가깝다.

참을 수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까지 죽이는 폭염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발표에 따르면, 지구는 장기적으로 뜨거워지는 추세에 있고, 그 원인을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꼽았다. 기상 전문가들은 폭염의 주된 원인으로 '열돔 현상(Heat Dome)'을 꼽고 있다.

열돔 현상이란 지상에서 약 5~7km의 상공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되면서 반원 형태의 열 막을 형성하여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둬놓는 기상 현상을 말한다. 열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보고 있다. 40년 전인 1980년과 비교해서 지구는 지금 온도가 약 0.8°C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0.8°C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평균기온이 1°C만 더 상승해도 지구별의 미래는 극명하게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는 단지 평균 기온뿐만 아니라 기후 체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 때문에 한 곳에서 가뭄과 홍수가 잇따르기도 하고, 메마른 숲이 증가하면서 산불 발생 지역도 넓어진다고 한다. 폭염은 인명 피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전 세계 식량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아스팔트와 공항의 활주로를 녹아내리게 하거나 치솟게 하여 대형 교통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제갈공명을 전략가로 만든 숨은 공신

오랫동안 대단한 자정 능력으로 균형감을 유지하던 지구별이 병이 심해 마침내 신음을 토해내고 있는 듯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예외 없이 지구 환경을 파괴한 공범자다. 결국, 자동차나 에어컨 등에서 뿜어내는 온실가스가 폭염의 주범인 셈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만 자동차와 에어컨이 없으면 못 견디는 역설의 처지에 놓여 있다.

오늘도 여전히 자동차는 쉴 새 없이 질주하고 냉방기는 여전히 돌아간다. 정말 우리가 이렇게 에너지를 흔전만전 써도 괜찮은 것일까? 누구는 냉방병에 걸릴 만큼 에어컨을 팡팡 틀어놓는 반면에 가난한 누구는 일사병에 걸리는 게 현실이다. 조금 편해지자고 무분별하게 일회용품을 써댄 결과, 태평양에는 제주도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쓰레기가 떠다닌다. 그것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아와서 복수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의 환경과 기후는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별의 앓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경각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덥다고 짜증만 내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심하게 병든 지구별을 치유하는데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일회용품을 덜 쓰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실내온도를 너무 낮거나 높게 두지 않는 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일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그러니까 30년 전쯤만 해도 열대야는 없었던 듯하다. 낮에는 햇볕이 쨍쨍하여 덥다가도 해가 지면 한낮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 밤이 깊으면 서늘해졌다.

반세기 전만 해도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으니 부채가 여름날 필수품이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집마다 부채 몇 자루씩은 있었다. 부채는 순수한 우리나라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부'자와 가는 대나무라는 뜻의 '채'가 어우러진 말이다. 부채를 뜻하는 한자는 선(扇)이다. '깃 우(羽)'가 쓰인 것으로 미뤄 후한의 채륜(蔡倫)이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는 깃털 같은 것으로 부채를 만들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영화 <적벽대전>스틸컷
 영화 <적벽대전>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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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부채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 황제(黃帝) 시대에 부채를 사용했다고 한다. 부채 하면 '지혜와 전략'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제갈공명을 빼놓을 수 없다. 유비가 세 번이나 초막집을 찾아 부탁하고서야 신하 되기를 승낙했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 고사에 못지않게 그가 늘 들고 다닌 부채도 유명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아내 황월영은 재능이 뛰어나고 됨됨이가 훌륭해 남편이 촉나라의 승상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제갈량은 아내가 준 깃털 부채 학우선(鶴羽扇)을 늘 들고 다녔다. 아내 황씨는 이렇게 말하며 부채를 건넸다.

"당신이 친정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지켜보고 포부가 크고 기개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비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표정이 환했지요. 하지만 조조에 대해 말할 때는 미간을 많이 찌푸리더군요. 손권을 언급할 땐 고뇌에 잠긴 듯 보였고요. 큰일을 도모하려면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침착해야 해요. 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세요."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였다. 덕분에 제갈공명은 위기와 긴급한 상황에서도 태연함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부채가 좋은 8가지 이유

예로부터 부채는 참 쓰임새가 많은 기물이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쓴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팔덕선(八德扇) 이야기가 나온다. 부채의 좋은 점 8가지를 해학적으로 말한 것이다. 바람 맑은 덕, 습기를 제거하는 덕, 깔고 자는 덕, 값이 싼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는 덕, 햇볕을 가리는 덕, 독을 덮는 덕이 그것이다.

부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방구부채와 접부채이다. 주로 집 안에서 부녀자들이 사용했던 단선(團扇)은 우리말로 둥글다는 의미에서 '방구부채'라 불렀다. 접부채(쥘부채)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부챗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을 말하며, 한자로는 접선(摺扇)이라고 한다.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쓰는 부채가 바로 접부채이다. 소리꾼은 부채 하나로 멋지게 효과를 살린다. 펼치면 책이 되었다가 접으면 칼이나 몽둥이가 되기도 한다.

접부채의 원조가 고려라는 설과 일본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는데, 나는 고려 쪽에 더 무게를 둔다. 당시 고려의 승려들은 죽간(竹簡)에 불경을 적어 원통에 넣고 이를 뽑아 보곤 했다. 날씨가 더우면 여러 개를 손에 쥐고 쫙 펼쳐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을 것이다.

한 승려가 그것에서 착안하여 가는 대오리에 한지를 붙여 만든 것이 접부채의 시초라고 한다. 고려 때 송나라에 매년 100자루 이상이 국교품(國交品)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귀족층이 탐을 내는 귀물(貴物)이라서 누구나 손에 넣고 싶어 했다.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고려에서 온 백송(白松)으로 만든 접부채를 보고 감탄하며 장인들에게 그것을 모방해 보라고 권유했다는 기록이 있다.

접부채도 더위를 식히는 데 사용되었지만, 풍류의 도구로 더 많이 활용되었다. 접부채는 옛 선비들이 문자향(文字香)과 예술의 향취를 표출하는 좋은 소재였다. 서권기(書卷氣)가 가득한 문인화의 품격을 갖춘 추사 김정희의 부채 그림 '지란병분(芝蘭竝芬)'이 좋은 예이다. 부채의 중심에 엷은 먹으로 난초를 대담하게 그렸다. 난초의 꽃술은 진한 먹으로 톡톡 찍었다. 묵란(墨蘭)은 선비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이다.

난초보다 조금 진하게 영지(靈芝)를 그리고, 진한 먹으로 쓴 추사체의 그림 제목이 있다. 추사는 "지초와 난초가 함께 하다, 남은 먹으로 장난하다(戱以餘墨)"라고 관서(款書, 낙관 위치에 쓰는 글 - 편집자 말)했다. 추사의 친구 권돈인은 "백 년이 지난다 해도 도(道)는 끊어지지 않고, 만 가지 풀이 모두 꺾인다 해도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쓰고 낙관을 했다.

훗날 이 부채를 소장하게 된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지초와 난초를 꿰차다(紉珮芝蘭)"라는 글귀를 적어 넣었고, 마지막으로 홍우길(벽호 홍명희의 증조부)이 '추사 선생을 우러르며 이 그림을 즐겼다'라고 썼다. '지란지교'는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높고 맑은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지란병분'은 네 사람의 사상이나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어느 사학자는 조선말 수십 년간에 걸쳐 자행된 세도정치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당시의 정황을 대놓고 말할 수 없었기에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인데, 깊이 생각해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옛 선비들은 여름에 늘 손에 쥐고 더위를 식히는 실용품에조차 시서화(詩書畵)를 곁들여 멋진 풍류 정신을 표현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맑은 바람이 일어나는 부채

 전통부채
 전통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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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국문화원연합회 기자로 근무할 때, 단오 특집을 취재하기 위해 전주문화원을 찾아갔었다. 전주는 예로부터 '한지'와 '부채'의 고장으로 통한다. 조선 시대 전주에 소재한 전라감영에는 부채를 만들고 관리하던 선자청(扇子廳)이 있었다. 이곳에서 부채를 제작하여 임금님께 진상하였고, 진상 받은 부채는 단오선(端午扇)이라 하여 신하들에게 하사하였다.

전주문화원장의 안내로 합죽선(合竹扇) 명장 이기동 선생을 만났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코미디언과 이름이 같아서 장인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기동 명장은 11세 때부터 오직 합죽선만을 고집하면서 우리 전통문화재의 맥을 이어온 분이었다.

합죽선은 접었다 폈다 하는 접부채의 일종이다. 하지만 접부채와는 조금 다르다. 부챗살을 만들 때 긴 것(장살 또는 장시)과 짧은 것(도막살 또는 내시)을 함께 붙여 만든 부채이기 때문에 '합할 합(合)'자를 써서 합죽선이다. 무려 108번의 공정을 거친다고 하니 장인의 정성이 듬뿍 들어가는 부채이다. 합죽선은 양반들의 품격에 맞춰 만들어진 부채라서 예술미가 깊고 값도 만만찮다.

취재를 마칠 무렵에 이기동 명인은 합죽선 한 자루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림이나 글씨가 없는 백선(白扇)이었다. 하얀 선면(부채 거죽)에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글씨를 쓰면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서 합죽선을 펴고 접는 법을 설명해 주었다.

합죽선을 펼 때 한 손은 부채 속살 부분을, 다른 손은 합죽선의 겉대를 잡고 조심스럽게 펼친다. 일반인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접고 펴는 동작이다. 소리꾼들처럼 한 손으로 힘있게 쫙 폈다가 멋들어지게 한 번에 접는 것을 원하는데, 합죽선은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부채가 아니다. 판소리에서 쓰는 부채는 거기에 걸맞게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선물로 받은 합죽선에 쓸 글귀를 오랫동안 생각했으나 적당한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전국문화원장 중에는 시문이 뛰어나고 학식이 깊은 분들이 많았다. 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합죽선에 쓸 좋은 글귀가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더니, 멋진 글귀가 몇 가지 되었다.

그중 '開時成半月 揮處發淸風(개시성반월 휘처발청풍)'이라는 글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자로 썼다. 해석하면, '부채를 펼쳐 열면 반달이 되고, 그 반달을 휘두르면 맑은 바람이 일어난다'라는 의미이다. 원작자가 누구인지는 가르쳐준 그분도 몰랐고, 나도 확인하지 못했다. 부채의 몸짓은 마치 날개를 180도로 쫙 펴는 공작새처럼 우아했었다.

그 후 여름이면 직접 붓글씨를 쓴 합죽선을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귀하게 여겼다. 모르는 사람과 만난 자리에서 슬그머니 합죽선을 꺼내 살랑살랑 부치면, 좋은 대화의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나의 자랑으로 여기며 3년 정도 애지중지 아끼던 합죽선을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다. 손때 묻은 애물(愛物)을 잃은 상실감은 컸다. 그래서 두어 번 보통 수준의 합죽선을 구매했지만, 이기동 명장에게서 받은 합죽선만 못했다. 또한, 조심한다고 해도 자꾸 잃어버리기 때문에 합죽선 소지가 부담되었다. 그래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쥘부채를 구매해 가지고 다닌다.

더위 속에서 소확행 찾기

소서(消暑) 소확행 숲이 울창하니, 아무리 삼복염천의 불볕더위라도 여기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여름의 숲 계곡은 늘 서늘함을 머금고 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뙤약볕을 무성한 잎으로 굳건히 막아 내며 제 품 안으로 들어선 것들에게 아낌없이 시원한 그늘을 베풀어 준다. 휴가 때 하루쯤 붓장난을 하면서 더위를 잊는다.
▲ 소서(消暑) 소확행 숲이 울창하니, 아무리 삼복염천의 불볕더위라도 여기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여름의 숲 계곡은 늘 서늘함을 머금고 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뙤약볕을 무성한 잎으로 굳건히 막아 내며 제 품 안으로 들어선 것들에게 아낌없이 시원한 그늘을 베풀어 준다. 휴가 때 하루쯤 붓장난을 하면서 더위를 잊는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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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 길거리나 지하철 등 어느 곳을 가도 '휴대용 선풍기(일명 손풍기)'를 손에 들거나 목에 건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난해 내 딸아이가 가지고 다니기에 한 번 사용해 보았다. 생각보다 바람도 세고 세기 조절도 1, 2, 3단까지 가능하여 젊은층에 인기가 있을 것 같았다. 손풍기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전자제품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충전하면 폭발의 위험이 있고, 배터리 안전 검증이 안 된 제품이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부채는 친환경적이고 위험함도 없고, 우리 전통문화의 멋진 아이콘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부채의 바람은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과 다르다.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솔바람처럼 은은하게 와 닿는 자연 바람이다. 또한, 따가운 햇빛을 가리는 데도 아주 적격이다.

여름 휴가를 앞두고, 박석무 선생의 <다산시정선(茶山詩精選)>을 구했다. 취미로 붓장난을 즐기면서 한시에 관심이 커졌다. 모르는 한자가 많지만, 사전을 찾아가며 배우고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수한 저서를 저술한 다산은 대학자이면서 또한 뛰어난 시인이었다.

여름철의 경물(景物)과 서정을 읊은 다산의 시는 여러 수가 보이는데, 그중 <소서팔사(消暑八事)>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더위를 사라지게 하는 8가지 일'이다.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가 그것이다.

다산 선생은 일상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더위를 식혔던 것 같다. '사라질 소(消)'자를 쓴 것은, 더위는 이기는 대상이 아니라 잊는 대상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무엇에 온전히 몰두하면 더운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른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소확행(小確幸,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현대의 키워드를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작지만 확실한 행복(즐거움)을 찾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오늘날의 여건상 몇 가지는 쉽게 실천할 수 없지만, 매미 소리 듣기나 연꽃 구경하기 등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여름은 더운 게 순리다.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시원함의 고마움을 알고, 더위를 이겨내야 곡식의 알맹이가 영그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제 절기는 초복과 중복을 지나서 말복으로 향하고 있다. 복날을 가리키기도 하는 '엎드릴 복(伏)'자는 너무 더워 사람(人)이 개(犬)처럼 엎드려 있다는 의미를 담은 회의문자다. 가을이 여름 집에 놀러 왔다가 그 열기에 질려 납죽 땅에 엎드려 기를 못 편다는 뜻이다. 이때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삼복더위'라 한다.

바야흐로 쇠붙이도 녹일 정도의 치열한 염천(炎天) 한복판, 곧 더위의 절정에 이른 셈이다. 절정이라는 것은 곧 막바지를 뜻한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게 마련이다. 입추가 지났으니 말복도 멀지 않았다. 제까짓 게 더워 봤자 열흘 정도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더위를 날리는 건 마음의 고요함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지금쯤 어디선가 연꽃이 피고 있을 것이다. 더위 한풀 꺾이고 나면 연꽃을 보러 가야겠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자잘한 일에 너무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아야 이 찌는 듯한 여름나기가 한결 수월하리라.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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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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