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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무슨 약이라도 타놓은 걸까. 만사가 귀찮고 꼼짝도 하기 싫다. 가뜩이나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데 이 폭염에 콩나물 한 봉지라도 사러 나가려면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7월 중순에 미리 휴가 다녀오길 잘했다 싶다가도 한편으론 남은 여름을 쉼표 없이 보낼 생각을 하니 암울하기도 하다. 아무래도 8월을 무사히 보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주 약하게 틀어 놓은 에어컨과 하루 종일 돌아가는 선풍기가 내 삶의 동아줄이랄까. 그리고 또 하나, 요즘 만화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습관적으로 책은 읽고 싶은데, 더위 때문인지 글이 빼곡히 들어찬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위에 지친 뇌가 글을 소화하려니 더 열이 나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만화방에서 순정만화를 읽으며 눈물을 흘릴 때, 그들의 감성에 공감을 못했다. 친구들이 최고라며 추천해 준 <인어공주를 위하여> 류의 만화를 몇 편 보긴 했지만 남주인공 푸르매가 내겐 그리 멋져 보이지 않았고 여주인공 슬비의 수동적인 모습도 답답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처한 환경과 그들이 겪는 이야기, 하다못해 옷과 머리 모양까지 뭐 하나 현실적인 게 없었다. 나는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는 게 더 좋았다. 토요일마다 만화방이냐, 노래방이냐를 두고 친구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성인이 되어 적성검사를 하고 나서야 내게 현실적인 성향과 활동성이 유독 강하다는 걸 알았다.

아마 나처럼 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판타지 소설이나 막장 드라마에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사람, 소설보다는 에세이나 르포를 좋아하는 사람, 텔레비전에서 시사프로와 다큐멘터리를 골라 보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만화책들이 있다.

일에 지치나 더위에 지치나, 지치면 쉬어야 하는 건 똑같다. 현실에 딱 발을 붙인 채 잠시 공감하며 쉬어갈 수 있는 만화책을 소개한다. 내가 아주 아끼는 '최애템'으로만 골랐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 외 수짱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 이봄 펴냄

 아무래도 싫은 사람 / 마스다 미리
 아무래도 싫은 사람 / 마스다 미리
ⓒ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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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이다. 우리나라에도 책이 여러 권 번역되어 있을 만큼 팬 층이 두텁다. 마스다 미리의 책은 저마다 매력이 있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느 책을 소개해야 할지 머리가 좀 아팠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내가 이 작가의 세계에 발을 들어놓게 된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 '수짱'은 서른여섯 살 독신 여성으로 카페 점장이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과 함께 일하며 겪는 괴로움이 짧은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마스다 미리는 인물을 단순하게 그려 그림이 담백하고 내용도 뭐 하나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일상성' 때문에 독자들은 수짱의 고민을 바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유독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에겐 그리 나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유독 내 신경을 긁는다.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몇 배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수짱은 자신이 누군가를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무엇 때문에 불편하고 화가 났는지 늘 생각하지만 이를 겉으로 티내진 않는다. 가볍게 넘기려 하지도 않고 상대를 미워하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카레를 해먹고 피자를 시키고 사촌동생과 저녁을 먹는 일상을 성실히 해내며 고민을 이어간다. 우리 모습 그대로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나는 사회성이 부족한 편이다. 정말 싫은 사람을 만나면 나는 무조건 피하고 본다. 수짱은 과연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지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장면. 수짱은 어떤 결단을 내린 뒤 오랜만에 꽃향기를 맡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 이 느낌, 나도 알 것 같다.

문제에 휩싸여 있을 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고민이 해결되고 나면 그제야 보인다. 마스다 미리는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중요한 고민을 떠안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하고 담백하게 보여준다. 내가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 중에서
 '아무래도 싫은 사람' 중에서
ⓒ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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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수짱의 연애>와 함께 '수짱 시리즈'이다. 연애며, 결혼이며, 직장생활, 뭐 하나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속에서 작은 행복을 꿈꾸며 사는 이들이라면 수짱이 좋은 친구, 선배, 동생이 되어 줄 것이다.

조금 더 진한 힐링을 원한다면 <주말엔 숲으로>를 추천한다. 갑자기 시골생활을 선택한 하야카와와 도시에서 이래저래 부대끼며 사는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두 친구는 가끔 하야카와네 집에 놀러간다. 일상으로 돌아와 어떤 순간을 마주했을 때, 하야카와와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백하게 그린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엄마와 아빠의 일상을 담은 <엄마라는 여자> <아빠라는 남자>도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

<혼자를 기르는 법> 1, 2
김정연 지음 / 창비 펴냄

 혼자를 기르는 법 / 김정연
 혼자를 기르는 법 / 김정연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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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좁은 원룸에 혼자 사는 이십대 후반 사회 초년생 여성, 이름은 '이시다'.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인공이다. 시다가 살아가는 환경과 조건, 처우가 안 봐도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시다는 친구가 맡긴 햄스터를 키우다 소동물 사육에 입문해 동네 주민 오해수와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된다.

이들 사이에서 말풍선으로 오가는 대화도 재미있지만 공손한 듯 뼈가 실린 시다의 독백이 가장 돋보인다. 독백은 대화할 사람 없이 혼자 사는 시다의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면서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에 적절한 설정이다.

여섯 컷으로 하나의 완결된 에피소드를 그려낸 작가의 구성력과 연출력이 놀랍다. 이 안에 주제와 위트, 유머와 씁쓸한 뒷맛까지 모두 담은 것도 모자라 독자의 공감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더욱 놀랍다.

 '혼자를 기르는 법' 중에서
 '혼자를 기르는 법' 중에서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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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지금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물론 만화라는 형식에 맞게 기발한 상상과 유머가 곳곳에 드러나지만, 20대 청춘의 외로움과 사회의 높은 벽 앞에 느끼는 좌절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20대들에겐 웃음과 공감을, 다른 세대에겐 젊은 '홀로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순진하면서도 '똘끼'가 있고 순하디 순하지만 가끔 욕도 뱉을 줄 아는, 자신보다 약한 작은 생명의 처지를 이해하는 마음 따뜻한 친구 한 명 얻은 느낌도 든다. 2016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다.

<리틀 포레스트> 1, 2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 세미콜론 펴냄

 리틀 포레스트 /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 이가라시 다이스케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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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원작이다. 작가인 이가라시 다이스케는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자급자족하며 지낸 실제 경험을 <리틀 포레스트>에 담았다.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해 먹는 과정이 상세히, 지극히 현실적으로 나온다. 식재료에 대한 설명과 꽃과 나무의 그림 묘사도 풍부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골 생활을 간접 체험하는 느낌이다.

생소한 식재료와 낫토떡, 뱀밥, 생강떡, 무 타르트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은 그 맛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다. 음식 설명에 비해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약한 편이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분명한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영화와 가장 큰 차이는 결말이다. 엄마와의 새로운 관계를 암시한 영화와 달리 만화에서 엄마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단순한 음식 만화를 넘어 저자의 삶에 대한 철학이 돋보이는 책이다.

 '리틀포레스트' 중에서
 '리틀포레스트' 중에서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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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 실린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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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