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결식 청소년이 많나요?"

걱정스런 질문에 한울중학교 이명남 선생님은 이런 답변을 주셨습니다.

"기초수급대상자들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잘 챙겨주기 때문에 결식이 드물어요. 문제는 여기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죠. 특히 아버지 혼자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 아이들은 끼니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선생님은 마을식당 엄마밥의 등장에 대해 '꼭 필요하고 고마운 존재'라고 덧붙였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한 어머니는 제게 그러시더군요. 방학 때면 도시락을 싸놓고 오긴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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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식당 엄마밥은 서울 독산동 남부여성발전센터 1층 이지카페에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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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명의 아이와 그 형제·자매들에게 일품요리 제공

마을식당 엄마밥은 방학 중 끼니를 거르는 아동과 청소년을 한 명이라도 줄여보자며 금천구 사회적경제 특구추진단이 시작한 돌봄 식당입니다. 23일 문을 열어 다음 달 17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합니다.

대상자들은 학교 선생님들의 추천을 통해 미리 신청을 받은 25명의 아이와 그 형제자매들입니다. 운영비는 구 예산에 사회적기업들의 후원과 구민들의 기부를 더해 마련됐습니다.
낮 12시가 되자 독산동 서울 남부여성발전센터 1층에 자리 잡은 이지카페로 아이들이 하나둘 모였습니다. 첫날 메뉴는 수제돈가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돈가스에 밥·야채·단무지가 곁들여졌습니다. 테이블 중앙에는 모닝빵 한 접시가 놓였고 후식으로 수박이 제공됐습니다.

이지카페는 지역의 11개 학교와 돌봄교실에 식자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이그린의 영업장이기도 합니다. 신정희 이그린 대표는 마을식당 엄마밥을 위해 영업장인 카페를 기꺼운 마음으로 내놓았습니다. 신선한 식자재를 제공하고 식단도 영양사와 셰프가 머리를 맞대고 정했습니다.

"카페 고객 대부분이 엄마들이에요. 아이들 때문에 앉을 자리가 없다거나 시끄럽다고 불평할 분들은 아니라고 봤죠. 아이들은 급식카드인 꿈나무카드를 제시할 때면 눈치를 보곤 해요. 여기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밥만 먹고 가는 곳이 아니라 숙제도 하고 쉬어가는 공간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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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희 ㈜이그린 대표. 식자재 유통을 하는 이그린은 금천구 사회적기업 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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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레스토랑에 온 것처럼 대해주고 싶었다"며 " 철제 식판을 사용하는 데 익숙한 아이들이라 그릇도 사기로 바꿨고 앞으로도 일품요리를 제공하려 한다"고 웃었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도와주리란 믿음'에서 시작

카페에 앉아 있다 보니 누가 급식 대상자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갔습니다. 최지수 문교초등학교 학부모는 맞벌이 가정의 동네 엄마들을 대신해 아이 넷을 인솔해왔습니다. 그는 "잘 먹고 간다"며 "내일은 주방에 들어가 힘을 보태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서빙과 안내는 또래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나섰고, 주방 설거지와 배식은 학부모와 금천구 사회적경제 특구추진단이 힘을 보탰습니다. 마을식당은 완벽하게 짜인 시간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일단 하고 보자'는 분위기입니다.

조정옥 금천구 사회적경제 특구추진단 사무국장은 "손을 내밀면 누군가는 반드시 도와줄 것이라 믿었고 '이도저도 안되면 내가 하면 된다'라는 정신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통·반장이 하라고 시켰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죠. 우리는 자발적인 모임이고 학교라는 틀 안에서 힘들지라도 사회적경제 기업들과 지역주민· 학교가 공유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가고 있습니다."

초등·중학교 8곳에 130인분 아침 급식 제공

2017년 교육부와 질병관리본부가 공동 조사한 '청소년 건강 행태'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중 31.5%가 아침 식사를 거른다고 답했습니다. 결식아동 수도 33만2865명(2016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이릅니다.

선생님들은 금천구 사회적경제 특구추진단이 분기별로 여는 운영위원회에서 아침밥 굶는 아이들이라는 문제점을 제기했고, 추진단은 조식 급식이라는 해결 카드를 내놓았습니다. 사회적기업 이그린이 식자재를 금천지역자활센터에 납품하면 자활센터의 도시락센터에서 급식을 조리해 학교로 납품하는 시스템입니다.

2017년 시작한 조식 급식은 4개 학교에서 8개 학교로 늘어났고, 130여 명의 아이들이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추진단은 '얘들아, 아침밥 먹자' 캠페인을 벌였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300만 원이 넘는 돈을 모았습니다.

조 국장은 "조식 급식이나 마을 식당 모두 이윤만 따지고 보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사업이다"라며 "사회적기업들이 가치를 두고 협업의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회적경제 확산의 산실이 된 학교

금천구 사회적경제 특구추진단은 지난해 2월 '학교에 사회적경제를 더하다'로 서울시로부터 사회적경제 특구로 지정됐습니다. 학교와 사회적경제, 지역사회가 협업을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모델로 선순환적인 경제를 구축해가는 것이죠.

" 확산성이라는 측면을 볼 때 학교가 좋은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고 스스로 지역의 문제들을 해결해보는 훈련을 해보는 거죠. 사회적경제는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봅니다."
- 강혜승 금천구 사회적경제 특구추진단 운영위원장

금천구 사회적경제 특구추진단은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학교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일까' 관내 23곳 초·중·고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결과 '교육과 먹거리'라는 과제로 좁혀졌고, 이를 토대로 학생 중심의 진로체험과 동아리활동, 그리고 건강한 먹거리로 아이들의 건강을 챙긴다는 양대 목표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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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옥 금천구 사회적경제 특구추진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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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국장은 "금천구 사회적경제기업 150개 가운데 교육 분야가 20곳이다"라며 "이들이 협업을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고 학교에 다채로운 사회적경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 덕분에 올해는 협동학교 2곳이 지정됐습니다. 문성중학교는 자유학년제 교육과정 중 70% 이상을 사회적경제 콘텐츠로 채웠고, 한울중학교에서는 학교 부적응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대안교실 '땡땡교실'을 개설했습니다.

"학교는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곳이라 처음에는 망설이는 곳이 많았어요. 하지만 사회적경제 주체들의 열정과 다양한 콘텐츠들로 신뢰를 쌓으면서 지난해에는 신청학교가 너무 많아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도 그러겠죠?" - 이태순 계장(금청구청 공무원 지역혁신과 사회적경제팀)

어른이 낸 밥값은 겨울방학 급식비로 적립

폐점 시간인 2시가 가까워지자 한구석에서는 오늘 수고해준 봉사자들의 늦은 점심이 차려졌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쭈볏거리며 카페에 들어섰습니다. 한 엄마가 반가운 손짓을 합니다.

"너 00이 형이지? 네 동생을 잘 안단다. 어서 와. 여기 앉아 같이 먹자."

망설이던 아이는 씩 웃더니 어느새 어른들 틈에 끼어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고생이 많다며, 그냥 드시라며 건네받은 돈가스였지만 새털처럼 가벼운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저도 밥값을 치렀습니다. 신정희 이그린 대표는 거스름돈을 건네주며 이야기합니다.

"밥값은 후원금이라 생각하고 잘 간직했다가 겨울방학 때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한 아이라도 더 건강한 밥상을 나눌 수 있도록 말이죠."

마을식당 엄마밥은 겨울방학에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