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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최초 취재를 이끌었던 이진동 전 TV조선 기획취재부장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최초 취재를 이끌었던 이진동 전 TV조선 기획취재부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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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인터뷰는 [전 TV조선 기획취재부장 이진동의 증언 ①]에서 이어집니다.)

그와의 대화는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이진동 전 TV조선 기획취재부장의 말수도 좀더 길어졌다. 한 시간여 전보다 서먹함은 줄었고, 이야기는 좀더 깊이를 더했다. 사실 그는 원래부터 방송기자가 아니었다. 1992년 한국일보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첫발을 딛었다. 이후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긴 후 20년 넘게 신문에서, 그것도 주로 검찰 등 법조와 사회분야에서 굵직굵직한 기사를 써 왔다.

지난 1999년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비롯해 2001년 진승현게이트, 2005년 '안기부-국정원 민간인 불법도청 사건' 보도 역시 그의 작품이다.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은 대통령선거 등 정치에 재벌기업 삼성과 거대언론(중앙일보)의 유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다. 2007년 '변양균-신정아 게이트' 보도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이 기사들은 그때마다 정권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고도 남았다. 그리고 이번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이 전 부장이 올해 2월 낸 <이렇게 시작되었다(개마고원)> 책은 기자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좀더 꼼꼼히 보면, 어떻게 한 국가의 정치, 사회 시스템이 일부 세력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졌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있다. 그가 책 서문에 "'촛불혁명'의 불이 어떻게 당겨졌는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를 만나기 전에 기자도 책을 읽었다.

- (그의 책을 짚으며) 책을 봤는데요. 단순한 취재기를 담은 것 이상이던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는 남겨야 할 기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대답은 짧았다. 할말이 있어 보였다. 그의 말을 기다렸다.

"TV조선이 2016년 7월에 국정농단 사건의 불을 지피고 이후 3개월 뒤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있었죠. 그 사이에 한겨레, 경향 등 여타 언론이 브릿지(가교) 역할도 했어요. 그런데 정작 최순실이 등장한 다음부터만 알려져 있을 뿐, 어떻게 왜 등장하게 됐는지, 그 줄기의 흐름을 아는 사람은 나와 우리 취재팀 외엔 거의 없어요. 불이 왜 어떻게 지펴졌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거죠."

촛불혁명이 왜 당겨졌는지에 대한 기록

- 사실 저희도 마찬가지지만, 매일 당일 뉴스를 다루는 언론사 입장에서 어떤 줄기의 흐름을 잡고 가는 것이 쉽지 않죠.
"음... 책에도 썼지만 국정농단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이나 일반인 독자, 언론학자들도 수면 위에 보이는 부분에만 집중했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 자주 하잖아요. 정말 보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관심을 두기... 기자도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책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대로 씌여져 있었다. 그와의 이야기는 이제 그 부분으로 옮겨가야 했다.

- 책을 읽으면서 국정농단 사건의 취재부터 내부의 갈등과 탄핵, 그리고 고립 등까지...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느껴지더군요.
"(엷은 미소를 띄며) 큰 취재를 하다보면 상상 안되는 일을 마주하게 돼요. 드러나지 않게 장막 뒤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드러나는 순간엔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죠. 취재 때는 여러 일이 동시에 진행되는데, 이것을 단순히 시간순으로만 배열하면 오히려 어떤 사안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재미도 떨어지죠. 그래서 나름대로 출판사측과 머리를 맞대고 사건별로 구성을 짰어요."

- '장막 뒤에 가려진 부분'이라고 하셨는데, 취재과정에서 이런 저런 사내외의 갈등 부분 등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그랬을 거예요. (잠시 뜸들이며) 이런 저런 일들이 참 많았죠."

- 그래서요. 만약 제가 TV조선의 편집 책임자나 경영진 입장이라면, 책 내용이 껄끄럽거나 불편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회사 쪽에서 내용이든, 뭐든, 문제삼지 않았나요?
" (문제) 삼았죠. 회사에서 처음엔 출판 계약을 파기해서라도 (출판을) 일단 중지하라고 했죠."

- 아예 책을 내지말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 저는 거부했죠. 그랬더니, 회사에선 '책을 내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재판이 끝나고 잠잠해지면 내라'고 했죠. 그래서 '올 3월 10일이 탄핵 1주년이고, 그때를 맞춰 의미적 관점에서 쓴 책이라 그럴 수 없다'고 다시 거부했죠."

- '박 대통령 1심 재판 끝나고 잠잠해지면 내라'는 이야기는 결국...
"그래요. 그건 책을 내지 말라는 이야기를 에둘러서 한 거죠. 박근혜 재판이 끝나고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회사에서 책 출판 계약을 파기해서라도 중지하라고 압력"

- 회사쪽에서 책 내용을 빼거나 수정하라는 이야기는요?
"당연히 있었죠. 책 나오는 것 자체를 꺼려했는데... 제가 책을 내겠다고 하니까, 나중에 일부 내용에 대해 삭제를 하고 수정도 하라고 했죠."

- 좀 전에 저희가 이야기한 그 '경제부장' 이야기 부분이겠군요.
"그렇죠. 일단 내용에선 크게 두 가지였어요. 우리 취재팀이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갈 때 문제의 경제부장이 안종범과 뒷거래를 하면서 취재를 방해했다는 부분이에요. 또 다른 부분은 '최순실 보도'가 TV 조선에서 제대로 나가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 당시의 갈등을 다룬 부분이에요. 아마도 조선일보나 TV조선 내부 문제가 다뤄지는 것 자체를 불편해 했던 같아요."

- 어떻게 하셨어요? 그 부분들이 다 빠지거나 수정됐나요.
" 처음엔 완강하게 버텼어요. 그러다가 아까 말한 것처럼 '탄핵 1주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책의 흐름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일부 표현과 내용을 순화하는 선에서 타협을 봤죠. 회사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서 내부에서 일어난 내막들이 두루뭉술하게 쓰여진 측면이 있어요."

그는 '두루뭉술하게 씌여진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꺼렸다. 대신 "책의 원고 초고에는 취재과정에서의 내부 방해, 국정농단 세력과의 뒷거래 행위가 상당히 심각하게 녹아들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초고 원고지 분량이 얼마나 됐나'라고 묻자, 그는 "원래 처음엔 (원고지로) 2500매 정도였다"고 했다. 몇 차례의 탈고 과정을 거치면서 900매 정도 분량이 사라졌고, 책이 세상에 나왔다.

- 책이 나온 이후 회사 반응은 어땠어요?
"(곧장) 상당히 껄끄러워했죠. 책을 내면서, 회사 내부에 대한 기록은 팩트(사실) 중심으로 최대한 절제하고, 저의 해석이나 판단은 최소화했어요. 그래도 조선일보나 TV조선 내부에서 볼 때는 불편하고, 언짢고, 불쾌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실 책을 보면, 그의 노력(?)이 엿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언론사 입장에선 취재 과정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다시 그의 말이다.

"나는 그래요. 이것이 하나의 역사적 기록이기 때문에 철저히 기록적 관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어떤 외부의 현상을 기자의 시각에서 봤다면, 내부도 마찬가지라고. 내부인의 시각으로 보기보단 똑같이 기자적 시각에서 (내부가) 취재되고 파악된 내용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김의겸 기자는 '정권이 바뀌기를 희망한다'고 하더라"

그와의 인터뷰 시간이 두 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카페 밖의 뜨거운 햇볕의 기운은 여전했다. 시원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했다.

- 최순실 상대로 취재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만 뽑으면요?
"(오랜만에 웃으면서) 하나만 뽑으라니... 확 떠오르는 여러 장면이 있어요. 이건 '장면'이라기 보다는 '흥분'이라고 해야겠죠."

- '흥분' 되는 장면이라면, 그 최순실 CCTV 장면이겠군요.
"그렇죠. (고영태로부터) 2014년 12월 중순 박근혜 의상실 CCTV가 담긴 외장하드를 건네 받았을 때, 이 안에 '과연 어떤 그림이 들어있을까' 하는 두근거림과 긴장된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죠. 또 하나는 김영한 전 청와대 수석의 모친 집을 한달 여에 걸쳐 하누리 기자와 번갈아 3번째 찾아갔어요. 결국 모친을 설득해서 비망록을 건네받던 장면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 최순실씨 최근 얼굴을 처음으로 지하주차장에서 잡았던 화면도 생각나네요.
"그때 후배였던 박성제, 민봉기 기자 등이 그 더운 여름에 엄청 고생을 했었죠. 나중에 최순실을 카메라에 포착하고 '최순실을 잡았다'고 보고해오던 순간도 그렇고. 지금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가있는 김의겸 당시 한겨레 기자와 밀당하면서 소주를 퍼부었던 일도 기억에 남네요."

- 책에 당시 김의겸 기자가 찾아와 나눈 일화도 소개돼 있던데요. 그 '밀당'이라는 것이 왜 최순실 보도를 하려는지를 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이죠?
"김 기자가 나에게 물어보더군요. '왜 이걸 하려고 하냐'고. 그래서 내가 되물었죠. '김 선배는 왜 하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김 기자는 '(박근혜) 정권이 바뀌기를 희망한다'고 하더군요."

- 이 전 부장은 '기자이기 때문에 한다'고 했죠?
"그랬죠. 기자이기 때문에 이 보도를 한다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요. 사실 전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알고 있는 걸 못쓰면 무능한 기자이고, 알고도 안 쓰면 기자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한 거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최초 취재를 이끌었던 이진동 전 TV조선 기획취재부장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최초 취재를 이끌었던 이진동 전 TV조선 기획취재부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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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박근혜 의상실 CCTV를 오래동안 갖고 있었잖아요. JTBC가 10월 중순 넘어서 태블릿 PC 보도하기 전에 충분히 TV조선에서 내보낼 수도 있었을텐데요.
"(한숨을 내뱉으며) 허탈하죠. 원래 우리는 국정농단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하부구조(미르, K스포츠 재단 등)를 거의 보도한 뒤 최순실과 함께 등장시킬 계획이었는데, 사내에서 제동이 걸렸어요. 그래서 내가 '사표를 내겠다'고 뛰쳐나갔던 일도 있었어요. 두고두고 아쉽고 화나기도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 '제동이 걸렸다'고 하셨는데, TV조선이 2016년 7월, 8월 나름대로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등 보도를 이어가면서, 그 이후 진짜 잠잠했어요.
"아시겠지만 당시 '조선 대 청와대의 싸움'이라는 프레임이 한동안 작동했죠. 이 싸움의 발단이 조선일보에서 낸 우병우 보도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어요."

"한겨레가 최순실 이름 공개 후에도, 상층부는 '최순실 보도 노(No)'였다"

- 생각나네요. 그때 청와대가 대놓고 '부패 기득권 세력의 청와대 흔들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언급하고.
"하지만 실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청와대가 우병우 보도 때문에 공격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는 (우리의) 최순실 보도를 막기 위한 거였어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회사쪽에 여러번 얘기를 했는데 (회사에선) 잘 듣질 않았죠."

그의 말은 계속됐다. 그는 "기사는 타이밍"이라는 말을 했다. 물론이다. 굳이 언론의 일이 아니더라도 '시의성'은 매우 중요하다.

"한겨레가 9월 20일 최순실과 K 스포츠재단 연결고리를 보도해요. 그때 처음으로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공개적으로 등장하죠. 그러니까 9월 20일 이후엔 청와대의 공격이 우병우 때문인 줄 알았던 조선일보나 TV조선 내부 상층부도 '최순실이 아킬레스건'이라는 걸 알게 됐을 것예요. 그렇다면 9월 20일 이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최순실 보도를 했어야 한거죠. 그런데 회사쪽에서의 제동은 계속됐고, 취재팀을 이끈 나의 역량을 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전 부장과 TV조선과의 내부 갈등은 2016년 9월과 10월 극에 달한다. 특히 한겨레의 '최순실' 이름 석자가 공개된 이후 더 커졌다고 한다. 그는 "본부장을 설득했지만, 돌아온 답은 무조선 '최순실 보도는 노(NO)'였다"고 회고했다.

"나와 취재팀 입장과 회사 상층부 입장이 달랐던 거죠. 그때 상당히 힘들었어요. 박근혜 의상실 CCTV도 있고, 최순실이 국정운영 개입을 뒷받침하는 문건들도 손에 쥐고 있고, 최순실이 이성한(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한강에서 회유했던 일도 취재돼 있던 상황이었어요. 나와 취재팀 후배들 입장에선 정말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죠."

- 일부에선 '오래동안 굳이 CCTV를 갖고 있어야 했나. 차라리 보도 초기에 썼으면 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도 있어요.
"알아요. CCTV를 왜 빨리 안 썼느냐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요.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최순실만이 아니라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먼저 하나 하나씩 드러낸 다음에 '배후가 최순실이다'고 등장시킬 때 CCTV가 나오는 게 맞다고 봤거든요. 취재가 안돼 있으면 몰라도, 취재가 돼있는 상황에선 그게 순서였다고 본거예요. 그 타이밍을 잡는데, 회사 내부에서 제동이 걸렸으니..."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미 2년 전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그는 회상하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와의 인터뷰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같은 대형 사건 보도 이면에는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출신 지역과 함께 과거 잠시 정치권에 몸담았던 이력 등이 흘러나오면서 온갖 이야기들이 정보지에 오르기도 했다.

- 아마 들으셨겠지만, 이번 보도 전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정치권 진출설부터... 돌아보면 김의겸 기자도 결과론적으로 현 정부의 주요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는 셈이 됐는데요.
"과거 한때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간 적 있어요. 지금 보면 수업료를 제대로 쓰고 나왔죠. 한때 겉멋이 들어서 잠시 외도를 했지만, 앞으론 정치권에 기웃거리거나 그럴 일 없을거예요. 이번 책에도 그렇게 썼어요. 물론 책이 나올 무렵에도 '어디 캠프를 간다' 거나 '어느 당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음해성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다 흠집내기용일 뿐이예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기자 생활하는 동안 밤 12시 전에 들어가면 일을 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가족들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서 당분간 가족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책을 더 쓰고 싶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과거 취재한 자료를 모아놓고 정리해보니, 충분히 책으로 쓸만한 소재들이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에, 그는 마지막 당부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저는 그래요. '기자는 진영 바깥에 서 있는 단독자 같은 직업이고 외로운 직업이어야 한다'고. 사실 이번에 TV조선 일부 간부의 일탈적 행동 때문에 그동안 국정농단 사건을 고군분투하며 취재했던 후배기자들도 함께 비난 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밖에선 TV조선이라는 매체만 보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부에 열심히 일하는 후배기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거죠."

[첫 보도] 국정농단 특종보도 TV조선, 뒤로는 청와대에 정보 제공
[전 TV조선 기획취재부장 이진동의 증언 ①] "그는 미르 첫보도부터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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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많은 분들께 배우고, 듣고, 생각하는 고마운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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