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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국어기본법'…문체부에서 낸 자료도 이 모양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시행 안내’, 과연 누구에게 주는 말인가?
18.07.19 09:30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책 읽고! 공연 보고! 연말정산 소득공제도 받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세청에서 낸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시행 안내' 자료를 보았다. 간추리면 이렇다. 올 7월 1일부터 책을 사거나 공연 보는데 쓴 돈도 연말정산할 때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한 해에 7천만원 안 되게 버는 근로소득자 가운데 신용카드로 쓴 돈이 소득의 25퍼센트를 넘으면 된다.
책 읽고 공연 보고 연말정산 소득공제도 받으라는 말 아닌가. 책 읽는 나라, 공연을 즐기는 나라, 말하자면 백범 김구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했던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짝짝짝 손뼉 받을 일인데, 안내 자료를 쓴 말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이게 과연 누구보다도 우리 말을 지키고 다듬는 일에 앞장서야할 부서에서 낸 자료인가 싶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낸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안내자료 앞면 ⓒ 문화체육관광부

BOOKSTORE, TICKET BOX는 누구나 다 아는 말인가?
표지부터 잘못되었다. 「국어기본법」 제14조에는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표지에 보면 '서점'(책방)이나 '표 사는 곳'으로 쓰지 않고 버젓이 'BOOKSTORE'와 'TICKET BOX'를 썼다. '카드'도 너나없이 쓰는 말이지만 'CARD'로 써서는 안된다. 이 말들 앞에서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까만눈이 되고 만다. 그만큼 국민의 '알 권리'를 정부기관이 침해한 셈이다.

학력과 외국어 능력으로 차별하는 안내글
어려운 말도 심심찮게 많다. 이를테면, '사업자등록증을 보유한', '도서 구입에 수반되는 배송료', '공연티켓 구입에 수반되는', '사업자로 확정된', '무대에서 실연하는 공연' 같은 말은 어렵다. '사업등록증이 있는', '산 책을 받는 데 드는 돈(책 배송료)', '공연표를 사는데 든', '사업자로 인정한', '무대에서 실제로 한 공연'처럼 누구나 알아먹을 쉬운 말로 다듬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사람에 따라 '보유, 구입, 수반, 확정, 실연' 따위 말이 더 쉽다고 여기기도 하겠지만, 누구에게 주는 말인가를 생각해보면 판단은 어렵지 않다. 한자말이나 외국어로 쓴 공공정보에 있다면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학력과 외국어 능력으로 사람을 차별한 것이다. 보기를 든 것 말고도 쉬운 말로 다듬어야할 말은 수두룩하다.

우리 말법을 살려쓰지 못한 문장들
여기에 우리 말법이 아닌 곳도 여럿 보인다. '~을 위해', '~에 대해', '~으로부터'나 입음꼴로 쓴 문장도 거슬린다. 하나씩 톺아보자.

신용카드 등으로 도서구입 및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사용한 금액
  → 신용카드 따위로 책을 사거나 공연을 보려고 쓴 금액
실제 소득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 요건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 소득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다음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여기서 '~을 위해'는 제목이나 법률, 단체 이름 따위를 줄여 말할 때 말고는 대개 말 마디를 더 늘리는 구실을 한다. 영어 'for the sake of, for one's good, in behalf of,  to,  in order to, so as to, for the purpose of' 따위 말을 하나같이 '∼하기 위하여, ∼를 위해, ∼을 위한'으로 뒤치던 버릇이다. '~을 위해'를 쓰다보면 알게모르게 한자말을 더 쓸 수밖에 없다. 또, '~을 위해'를 쓰면 의지를 나타내는 '-하려고, -하고자, -하도록' 따위 이음씨끝을 말려 죽이는 구실도 한다. 일상에서 쓰는 입말과 멀어질 때 소통이 막히고 그만큼 정책을 올바로 알지 못하게 된다.

시행일부터 도서·공연 사용액에 대해
  → 시행한 날부터 책을 사거나 공연을 보는 데 쓴 돈을

'~에 대하여' 꼴도 내남없이 쓰지만 이 말도 일본말이나 영어 교육 탓이 크다. 먼저 일본에서 행정이나 법률에서 쓰던 '니 다이시테(∼に 対にし)'를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베껴 쓰면서 우리 말에 널리 퍼졌다. 뒤로 영어 교육을 하면서 'for, about, concerning, as to, as for, in regard to(of), in respet of……' 따위를 '~에 대해, ~에 대해서'처럼 판박이처럼 뒤쳐야한다고 가르쳐온 탓도 있다.
우리 말은 입음꼴을 꺼린다. 대개 사람을 임자말로 삼기 때문에 '한다' 꼴이 자연스럽고 말뜻도 한결 깔끔하다. '-된다'나 '-진다' 꼴로 쓰는 건 영어의 수동태나 일본말 우케미(受け身, 수동표현)을 따라 쓰던 글투인데, 입음꼴을 쓰면 누가 한다는 게 흐려질 때가 많다. 가령 입음꼴로 쓰면서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사업자'로 인정해주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뒤로 꽁꽁 숨고 만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낸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안내 자료 ⓒ 문화제육관광부

중고책(최종소비자에게 판매되었던 간행물로 판매자에 의해 다시 판매되는 도서)가 포함되며, 도서 구입비에는 도서 구입에 수반되는 배송료 등도 포함
→ 중고책(마지막 소비자에게 판 책으로 팔려는 사람이 다시 파는 책)을 포함하고, 도서 구입비에는 책을 살 때 든 배송료 따위도 포함

공연티켓 구입에 수반되는 예매/취소 수수료, 배송료 등도 포함되며, '실연'이 아닌 녹화영상(영화, 방송 등) 등은 제외
→ 공연표를 살 때 든 예매/취소 수수료, 배송료 따위는 되지만, 실제 공연이 아닌 녹화영상(영화, 방송 따위)은 인정하지 않음.

(한국문화정보원)로부터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제공 사업자로 확정된 곳에서
  →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정보원)가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제공 사업자로 인정한 곳에서

그렇다고 입음꼴을 아주 쓰지 말자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우리 말이고 한글이라서 지켜야 한다는 말은 더욱 아니다. 입음꼴을 써서 더 자연스럽고 더 쉽다면 마땅히 써야 한다. 말이란 게 흐르는 물과 같아서 끊임없이 바뀔 수밖에 없다. 다만 어색하고 낯선 글투가 내남없이 두루 소통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말했을 뿐이다.

쉬운 말 깨끗한 말, 상식이고 민주주의다
길게 말했지만 공공 정보는 쉽고 깨끗한 말을 써야 한다. 국민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정책 내용이라면 국민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한다. 외국어나 어려운 말, 어색하고 낯선 글투가 문턱이 되고 벽이 되어선 안된다. 그게 상식이고 민주주의의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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