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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며칠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길고양이
 죽기 며칠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길고양이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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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떠나야 할 때
슬픔을 넘어 담담하게 혹은 의연하게
- 디카시 <병든 길고양이>

요즘 부쩍 가까이 있는 분들이 하나 둘씩 떠나간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세상에 와서 잠시 깃들다 떠나는 것은 자연의 순리고 어느 하나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나에게 의탁하던 병든 길고양이도 며칠 전에 죽었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고 일상임을 더욱 실감한다. 병든 길고양이가 나를 의탁하며 깃든 것이 올 4월 초쯤이었던 것 같다.

죽기 며칠 전의 병든 길고양이가 먹이를 먹고 있다
 죽기 며칠 전의 병든 길고양이가 먹이를 먹고 있다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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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꺾여 있고 콧물을 흘리며 눈꼽이 자주 끼었다. 처음부터 다른 길고양이와는 달리 내게 대한 경계가 없이 무조건 나를 신뢰하며 나를 따랐다. 그만큼 처지가 절실하지 않았을까. 하도 신기해서 여기 한번 소개한 적도 있다. 길고양이 치고는 정말 사람에 대한 신뢰가 으뜸이었다.

이번 학기에도 주로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한 달 만에 보기도 하고 그랬다. 볼 때마다 녀석이 기특해서 먹이를 주고 거두었더니 얼마 전부터는 아예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내 주변에만 머물러 있었다. 길고양이가 죽기 마지막 약 10여 일간 거의 함께 했다.

원래 병든 길고양이지만 식욕이 좋았기 때문에 먹이를 챙겨주면 회복될 것으로 다소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며칠 사이 급격히 악화되더니만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할 즈음 손 쓸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떠나버렸다. 지나고 보니 안일하게 생각한 내 불찰이 크다.

며칠 이어진 장마와 폭우를 견뎌낼 체력은 없었던가 보다. 죽기 며칠 전 먹이를 주면 그래도 먹었는데, 하루 딱 먹지 않더니 다음 날 바로 죽었다. 지나고 보니 길고양이도 영물인지 자신의 죽을 때를 알았던 것 같다. 죽기 며칠 전부터 부쩍 내가 의자에라도 앉아 있으면 유달리 내 발치로 와서 기대어 앉았다. 나와의 마지막 스킨십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먹이를 주어도 잘 먹지를 않고 계속 나한테로 와서 얼굴을 부비고 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가까이 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당 모과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병든 길고양이는 큰 고통이나 불안 없이 자기가 깃들던 신발장 안에서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병든 길고양이와 아름다운 추억들이 여러 사진으로 남아 있다.

병든 길고양이가 떠난 빈 자리에 찾아온 검정 고양이 내게 경계를 거의 풀었다
 병든 길고양이가 떠난 빈 자리에 찾아온 검정 고양이 내게 경계를 거의 풀었다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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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양이는 먹이를 먹고 병든 길고양이 대신 현관문 앞을 차지하고 있다
 검정 고양이는 먹이를 먹고 병든 길고양이 대신 현관문 앞을 차지하고 있다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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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고양이가 검정 길고양이를 밀어내고는 먹이를 달라고 시위하듯 한다
 노랑 고양이가 검정 길고양이를 밀어내고는 먹이를 달라고 시위하듯 한다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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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길고양이가 기다리던 먹이를 먹는다
 노랑 길고양이가 기다리던 먹이를 먹는다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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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길고양이가 먹이를 먹고는 검정 길고양이 대신 현관문 앞을 차지하고 있다
 노랑 길고양이가 먹이를 먹고는 검정 길고양이 대신 현관문 앞을 차지하고 있다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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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신기하다. 병든 길고양이 죽고 나니 다른 고양이들이 영역 다툼을 한다. 몸은 약해 기력은 없었지만 병든 길고양이가 내 거처 주변을 자기 영역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내가 제공하는 먹이를 병든 길고양이가 먹을 때는 다른 길고양이는 그것을 존중해 주었다.

힘이 세다고 빼앗아 먹지 않았다. 길고양이 세계에도 나름의 룰이 있는 것일까. 병든 길고양이는 이곳에서는 당당했다. 허약한 녀석이지만 먹이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참 신기하게 보였다. 아마 병든 길고양이는 나를 주인으로 일찍이 인정하고 나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라 스스로 생각해서 이곳에서만큼은 실력자로 지낸 것 같다.

힘의 군형이 깨지니 전운이 감도는 형국

병든 길고양이가 떠나자 곧바로 검정 길고양이가 내게 접근하여 이곳을 자기 영역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병든 길고양이가 있을 때는 겉돌더니 병든 길고양이가 떠나자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곧바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 마리의 노랑 길고양이가 나타났다. 이 녀석이 검정 길고양이를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병든 길고양이가 떠난 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길고양이들이 서성이며 영역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깨지니 전운이 감도는 형국이다. 아직 확고하게 영역을 차지한 길고양이는 없다. 어느 길고양이가 최종 승자가 될지 아니면 공생할지 사뭇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2016년 3월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



태그:#디카시,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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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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