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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배석한 각 지방법원 판사등이 지난 6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 간담회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배석한 각 지방법원 판사등이 지난 6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 간담회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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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을 반대하던 대한변호사협회를 제압하기 위해 작성한 문건을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이 공개하지 않은 데다, 추가조치 또한 시도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명수 대법원'의 책임론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조사단 조사 범위가 아니라는 점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령상의 제한, 또 수사기밀 유지 등을 이유로 들어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의 해명은 특별조사단이 애초 이번 사건에 '형사조치'가 필요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조사 범위에 드는 사안이 아니더라도 '민간인 사찰'은 사법행정권 남용을 넘어 분명한 범죄 혐의라는 점에서 자체 감사나 별도의 수사의뢰 등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앞서 검찰은 지난 29일,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을 첫 참고인으로 부르면서 '재판거래'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한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대한변협 대응방안 검토', '대한변협회장 관련 대응방안' 등의 문건엔 상고법원을 반대하던 하 전 회장을 압박하려는 방안들이 적혀 있다. 상고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임기 내 숙원 사업이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기획조정실, 사법지원실, 사법정책실이 모두 관여해 조직적인 '민간인 사찰'에 들어갔고, 일부 계획은 실제 실행되기도 했다. 문건엔 하 전 회장의 재산과 수임 내역 정보를 수집해 외부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국세청에 이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실제 서울지방국세청은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이뿐 아니라 하 전 회장이 과거 부실하게 소송을 맡았다는 내용을 특정 기자에게 전달한다는 내용이 있고, 한 달 뒤인 2015년 5월, 해당 일간지 기자는 비판 기사를 내보냈다.

조사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비공개... 추가조치도 없었다

그러나 법원 내부조사단은 이런 정황에도 해당 문건을 비공개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민간인 사찰' 정황이 사법행정권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해당 문건들은 특조단이 관련자 하드디스크에서 자체 '키워드'로 걸러낸 문건 410개에 포함됐지만, 조사범위로 정한 ▲사법부 독립 ▲법관의 기본권 침해 ▲재판의 독립이라는 기준엔 부합하지 않는다며 비공개했다.

대법원은 '셀프조사' 당시 사찰 관련자들의 내부 징계도 언급하지 않았다. 특조단은 지난 5월 25일 오후 9시 50분께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면서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에 대해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이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시점에도 해당 사안의 관계자들은 내부 징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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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법원장 또한 특조단의 보고를 받고도 해당 사안에 대해 윤리감사실 등에 진상조사를 포함한 추가조치를 지시하지 않았다. 김 대법원장은 특조단의 비공개회의 결과를 보고받은 뒤 퇴근길에서 "조사결과를 면밀하게 잘 살핀 다음 구체적인 입장은 다른 기회에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추후 김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하 전 회장 관련 문건에 대해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문건 책임자는 대법관 후보로 추천... 법원 "은폐할 이유 없다"

문건이 실제 실행된 정황에도 특조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 5월 25일 취재진에게 "형사처벌 대상으로 수사의뢰 또는 고발 조치할 사례는 없는 것으로 봤다"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안 처장은 여론이 악화되자 3일 뒤인 5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 수사를 받을 용의에 대해) 제외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게다가 문건 작성 책임자로 지목되는 한승 전주지방법원장이 안 처장이 속해 있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으로 대법관 후보에 오르면서 과연 법원이 이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 계속된 전국법원장회의, 전국대표법관회의에서도 관련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관회의의 의견을 수렴해 방침을 정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법관들 여론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간인 사찰' 문건은 논의 테이블에 올라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당 조사자료를 검찰수사에 모두 넘길 예정이었다며 은폐할 이유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수사기관에 조사자료를 모두 넘길 것을 예정하고 있었다. 은폐할 이유가 없었다"라며 "문건을 전부 공개하지 않은 건 개인정보보호법 등 개인 권리 보호를 준수해야 하는 법령상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당 문건 내용을 공개하는 건 수사기관 몫이지만, 법원이 수사기밀을 위해 비공개 상태로 해당 문건을 제출한 게 은폐로 평가받을 일인가에 대해 헤아려달라"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해 최초 '법관 뒷조사'에 문제를 제기한 이탄희 판사를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법조계 관계자들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태그:#검찰, #대법원, #양승태, #재판거래,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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