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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

[서평] 불교 대강백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
18.07.02 05:4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두 달에 한 번씩 갖는 동창 부부모임이 있었습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 했습니다. 오랫동안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 몇 년 전 전역을 해 일반기업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거의 뒤따라 도착했습니다. 의례적인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 친구가 스마트폰을 꺼내며 물어볼게 있다고 했습니다.

오래 된 동창이니 평소 내가 불교에 관심이 많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친구입니다. 스마트폰을 꺼낸 그 친구 입에서 나온 건 교리나 경에 대한 어떤 궁금증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지상파로 방송된 내용, 그 방송에서 미처 듣지 못한 어떤 은밀한 이야기가 더 없는지를 묻는 호기심이었습니다.

그동안 쉬쉬 거리며 뒷담화로나 듣던 은처승, 쌍둥이 아빠, 도박승, 권승 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신력 있는 정규방송프로그램을 통해 듣게 되니 어이없기도 했지만 방송에서는 보지 못한 또 다른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호기심이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비교적 불교에 관심이 많은 친구로 알려져 있다는 자체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순간적 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해 그 친구를 잠시 기다리라하고 밖으로 나와 차에 있던 책을 챙겼습니다. 챙겨간 책을 펼쳐 보이며 임기응변을 하듯 그런 스님들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 스님도 있다는 말로 위기 아닌 위기를 넘겼습니다.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 / 글 무비 / 그림 양태숙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8년 7월 13일 / 상·하 세트 50,000원 ⓒ 불광출판사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글 무비, 그림 양태숙,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대강백으로 널리 알려진 무비 스님이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무수한 명구 중에서 365구절의 명구만을 가려 뽑아 하루에 한 구절씩, 일 년 365일 동안 매일 한 구절씩 새길 수 있도록 해설을 덧대 엮은 내용입니다.

일 년 365일을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고, 다시 12달로 나누어 365일 동안,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고 매일 먹어도 부담되지 않는 끼니처럼 한 구절씩 읽을 수 있도록 간추린 글에 양태숙 작가가 그린 그림을 고명처럼 얹어 편집하였습니다.

불가에 전해지는 명구라고 하면 우선 고준하기 이를 데 없는 부처님 말씀이나 경전 속 경구를 먼저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는 결코 부처님 말씀이나 경전 속 경구만이 아닙니다.

그 출처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뿐 이미 속담이나 격언으로 들은 적이 있어 어느새 귀에 익숙한 말들도 있고, 처음 읽어보는 말들이지만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하는 내용들입니다.

중아,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라. 산이 좋은데 왜 다시 산에서 나오는가. 뒷날 나의 자취를 잘 지켜보시오. 나는 한번 청산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라.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 상, 298쪽


위 인용 글은 5월 1일 읽도록 편집돼 있는 내용으로,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던 고운 최치원이 '산이 좋아 세상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산다는 사람들이 다시 산을 내려오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보고 지은 시라고 합니다. 그 옛날, 국운을 불교에 의지하던 신라시대에도 삭발을 하고 출가를 하였다 다시 속세로 환속하는 파계승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말세에 이 슬픈 현상을 깊이 슬퍼하도다.불법을 외칠 만한 사람이 없구나.아직은 글 읽을 줄도 모르면서 장석에 앉고 일찍이 행각도 못했는데 법상에 앉네.돈을 들고 절을 구하는 모습은 마치 미친개와 같고속은 텅 비었는데 마음만 높은 것은 벙어리 염소와 같다.뒷사람에게 엎드려 권하노니 이러한 풍속 이제 그만들 두어오랫동안 지옥 고통 받을 일 면하기를 바라노라.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 하, 173쪽-


위 인용 글은 영지 원조 율사(1048~1116)가 진정한 주지 노릇에 힘쓰기[勉住持]를 바라면서 경계한 게송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거반 천 년 전, 그 시절에도 깜냥도 되지 않는 중이 요직에 앉고, 실력도 되지 않는 스님이 법문을 합네 하며 법단에 앉고, 돈으로 행세하려는 행태가 없지 않았나 봅니다. 

밀려두었다 몰려 읽어도 괜찮아

지금도 방학을 하며 일기 써오기를 숙제로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기는 그날그날 써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방학숙제로 받은 일기쓰기는 그러지 못한 경우가 종종입니다.

방학이 시작되고 몇몇일 동안은 그날그날 잘 쓸 겁니다. 신나 게 놀다 방학이 일주일 쯤 남게 되면 그때부터는 밀린 숙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 중에서도 제일 문제가 되는 게 일기 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다른 숙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했어도 그렇게 들통 나지 않지만 일기만큼은 귀신이 곡할 만큼 콕콕 집어서 몰아쓰기를 했다는 걸 지적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나중에야 일기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매일매일 써야하는 날씨 때문에 밀려 쓰거나 한꺼번에 몰아 쓴 게 들통 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은 365일 이라도 일기는 하루하루 매일매일 써야하지만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365경구는 때로는 당겨 읽고, 때로는 밀려두었다 한꺼번에 몰려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인생을 시리즈로 읽을 수 있는 11월 명구, '인생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 '인생 최대의 실패는 스스로 잘났다는 생각', '인생 최대의 무지는 남을 속이는 것', '인생 초고의 비애는 질투', '인생 최대의 착오는 자포자기', '인생 최대의 죄는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 '인생에서 가장 가련한 성품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과 같은 명구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울림입니다.

이 또한 시리즈로 이어지는 12월 명구, 차와 관련한 명구는 구증구포를 해도 쉬 범접할 수 없는 차의 세계를 깊고 진하게 우려내는 다선(茶禪)의 경지입니다. 

자족장락(自足長樂), 글자 수는 비록 네 글자밖에 되지 않아 깍두기 한 토막을 한 입에 아사삭하고 씹어 삼키듯 한 눈에 읽게 되지만 무비 스님이 덧댄 해설에 배어있는 감칠맛 같은 가르침은 명구에 스며있는 산해진미 같은 지혜로 읽히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 / 글 무비 / 그림 양태숙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8년 7월 13일 / 상·하 세트 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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