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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이 놓혀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아침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이 놓혀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아침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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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종필 전 총리의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일단 정부는 훈장을 추서할 방침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오전 11시 정례브리핑에서 "준비되는 대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김종필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훈장 추서를 둘러싼 논란을 보고 자연스럽게 군 복무(전투경찰) 시절을 떠올렸다. 난 군 복무 시절이던 1994년 말에서 1995년 초 서울 중구 청구동(신당동)에 있는 고 김종필 전 총리의 자택에서 경비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나를 비롯해 여섯 명의 대원들이 2인 1조로 24시간 김종필씨의 자택을 지켰다. 근무 시간을 빼곤 비교적 활동이 자유로웠다. 그래서 전방에서 복무하는 동기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고, 이런 이유로 전역해서도 술자리에서 흔히 하게되는 군 복무 시절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론 고 김 전 총리는 꽤 부지런했다. 아침 7시께 김종필씨의 비서가 자택으로 출근했다. 이때부터 주변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김종필씨가 탄 차량이 자택을 출발해 국회를 향할 즈음이면 근무자들의 경계는 강화됐다. 당시 청구파출소장인 신아무개 경위는 매일 아침 김종필씨가 출근할 때마다 현장에 나와 상황을 통제했다. 신 경위는 김종필씨가 자택을 출발할 때 깎듯하게 경례를 했다.

내가 근무하던 시기, 설 명절이 껴 있었는데 이때 김종필씨의 자택은 그에게 문안을 드리러 온 인사들로 가득했다. 자택 밖에서 큰 목소리로 "김 총재님 만수마강 하십시오!"라고 외치고 큰 절을 한 사람도 보였다.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대고자 찾아가는 이른바 '문안정치'를 현장에서 목격한 셈이다.

고 김 전 총리의 청구동 자택 주변은 입구가 좁다. 이 좁은 입구에 문안 인파가 몰리니까 성동경찰서에서 대원들을 파견해 주변 교통을 통제했다. 통제가 심해 주변을 지나던 주민들은 "높은 사람만 사람이냐"라면서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기자들로 북적였던 1994년 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고 김 전 총리(맨 오른쪽)가 민자당 최고위원이였던 1991년 서울 가락동 정치연수원에서 열린 민자당 창당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박태준 최고위원, 김영삼 대표최고위원,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최고위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고 김 전 총리(맨 오른쪽)가 민자당 최고위원이였던 1991년 서울 가락동 정치연수원에서 열린 민자당 창당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박태준 최고위원, 김영삼 대표최고위원,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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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씨 자택은 1994년 말 기자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대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민자당 3당 합당에 힘입어 집권에 성공했다. 집권 초 고 김 전 대통령은 김종필씨와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의 밀월은 오래가지 못하고 1994년 말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민주계는 김종필씨에게 노골적으로 나가라는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김종필씨의 자택에 기자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몰려든 건 기자들뿐만 아니었다. 경찰 정보과 형사들도 자택 주변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부지런히 동향을 살폈다. 당시 현역 군인 신분이던 나는 저간의 상황을 긴장 속에 지켜봐야 했다.

결국 고 김 전 총재는 1995년 민자당을 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언론들이 고 김 전 총재가 '탈당'했다고 썼지만, 쫓겨난 셈이나 다름 없었다.

고 김 전 총재가 여당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그를 찾는 이들은 끊이지 않았다. 한번은 설 명절에 근무자들을 자택으로 불러 떡국을 대접했다. 나도 고인의 자택에 들어가 떡국을 먹었다.

고인의 탈당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종필씨의 자택 경비임무는 해체됐고 난 원대 복귀했다. 당시 상부로부터 "김 전 총재 측이 경비 병력 철수를 요청했다"는 언질만 받았다.

고 김 전 총리가 청구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전해 들었다. 내가 고인의 자택에서 경비근무를 했던 시절은 김종필씨의 정치 역정이 요동치던 시절과 겹쳤다. 현역 군인 신분이던 내가 기자들이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그에게 문안인사를 오는 광경 그리고 경찰 정보요원이 부지런히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본 건 행운이었다. 그러나 김종필씨 측에서 병력 철수를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선 젊은이들을 제멋대로 부리는 것 같아 불쾌한 감정도 들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김종필 전 총리가 지난 4월 18일 신당동 자택에서 자유한국당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를 만날 때 모습.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김종필 전 총리가 지난 4월 18일 신당동 자택에서 자유한국당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를 만날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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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 전 총리는 생전에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렸다. 난 매일 아침 파출소장이던 신 경위가 현장에 나와 상황을 통제하는 모습이 불편했다.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그리고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등의 경호는 경찰 고유업무에 속한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김종필씨를 향해 경례하는 모습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경찰로서는 부적절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김종필씨는 유력 정치인이었지, 경찰과 같은 공권력의 경호를 받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간밤에 눈이 많이 와 길이 얼어버린 적이 있었다. 당시는 관할 관청이 새벽에 염화칼슘을 뿌리던 시절도 아니어서 간밤에 폭설이 내리면 도로는 꽁꽁 얼어붙었다. 김종필씨 자택 주변길도 얼어 있었다. 이때 신 경위는 경비 근무자들을 동원해 염화칼슘을 뿌리고 주변 도로를 정비할 것을 지시했다. 그때 난 "나라를 지키러 왔는데, 정치인 앞마당 청소나 하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아마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언론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갑질 논란에 휘말렸을 것이다.

고 김 전 총재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공권력은 그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됐다. 그가 우리 정치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사의 격변기에 가까이 있었을 뿐, 역사의 진전에 기여한 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나의 군 복무 시절 기억에 비추어 유력 정치인으로 군림하면서 공권력을 사유화한 건 중대한 흠결이라고 난 생각한다. 

훈장추서가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치인은 그 어떤 경우라도 국민에게 먼저 예의를 갖춰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고 김 전 총리는 정치인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지난 2016년 1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국민 전부가 청와대 앞에 모여 내려오라고 해도 절대 내려갈 사람이 아니다"라며 정곡을 찌른 점은 기억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고 김 전 총리의 타계로 한국정치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3김'은 모두 하늘로 향했다. 정부는 그를 그저 조용히 보내주면 좋겠다. 앞서 적었듯 고인은 생전에 이미 과하게 공권력의 혜택을 누렸으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고 김종필 전 총리의 별세와 함께 문안정치 관행도 없어졌으면 한다. '한 자리' 꿰차려고 유력 정치인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구습이고 분명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태그:#고 김종필 전 총리, #청구동 자택, #문안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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