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뉴욕은 어떨까? 2017년 여름. 소기업·자영업자들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불현듯 뉴욕시가 떠올랐고, 관련 자료들을 검색하면서 이 도시를 직접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경제의 뿌리를 이루는 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 관점에서 뉴욕시를 조망해 본 자료를 거의 본 기억이 없었고, 무엇보다 크고 작은 소기업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메가시티 뉴욕의 지원 생태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뉴욕 탐방단을 꾸리게 되었고, 금년 3월 일주일간 뉴욕시를 방문해 소기업들을 지원하는 일을 수행하는 여러 기관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지면을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기자말>

현장 지원기관이 어쩜 이렇게 많을까?

뉴욕 주의 소기업 자영업 지원 생태계를 돌아보면서 느낀 소감은 그랬다. 소기업지원센터(SBDC), 지역금융기관(CDFIs), 창업지원센터(EAP Center), 자영업지원센터(BSC), 지역대학(Community college) 등등 연방과 주, 시정부와 관계를 맺고 소기업 소상공인의 자립 자활을 돕는 지원기관의 종류와 수는 생각했던 수준 이상으로 많았다. 정부의 재정 보조를 받지 않고 민간의 기부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풀뿌리 지원기관들(NPOs)까지 합하면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기업 소상공인 지원 생태계를 만들어감에 있어, 이들이 갈망하는 현실적 욕구를 찾아내고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공급해주는 기관이 가지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무리 좋은 지원제도를 설계한다 하더라도, 공급자(정부)와 수요자(자영업자) 사이에서 양쪽을 중재, 조율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지원기관이 없으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사회복지 영역에서 효과적인 서비스 전달 및 집행체계의 구축이 복지행정의 관건인 것과 같은 이치다.

www.laguardia.edu
▲ 뉴욕주 라구라디아대학 소기업지원센터 사무실 www.laguardia.edu
ⓒ 문진수

관련사진보기


현재 뉴욕 주에 존재하는 소기업지원센터(SBDC) 수는 총 23개로, 종합대학이나 지역대학, 상공회의소, 직업학교 등 다양한 곳에 거점을 두고 있다. 소기업지원센터(SBDC)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유파동과 제조업 쇠퇴로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 시점부터 미 전역에 걸쳐 1천여 개가 넘는 지원센터가 세워졌다. 지원센터가 소기업들에게 제공해주는 서비스는 창업 지원과 자금 조달, 기업 경영에 대한 상담, 교육 훈련, 개인별 특화 서비스(specialized service) 등 다양하다.

뉴욕 주 롱아일랜드 시에 위치한 라구아디아(LaGuardia) 대학도 주의 대표적인 지원센터 중 하나다. 1968년에 설립된 2년제 공립대학(CUNY)으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소기업지원센터가 문을 연(2001년) 이래 현재까지 5천 개가 넘는 지역 소기업 소상공인들과 관계를 맺고 170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거나 유지시켰다고 한다. 라구아디아 지원센터의 담당 임원(Linda Mellon)에 따르면, 센터 설립 초기에 인연을 맺은 사람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등 지역 소상공인들과 두터운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비결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센터 직원들 때문인 것 같다는 답변을 주었다.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사명감과 전문성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헌신적인 자세로 일하고 있어서 라는 말이다. 당연한 일이라 치부해버릴 수 있는 답변이지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이번 탐방 길에 들렀던 지원기관에서 일하는 이들 대다수는 목소리에 열정이 가득했고,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 질문을 귀 기울여 경청했으며, 타국에서 온 이방인들일지언정 뭔가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생태계가 작동되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중앙에 있는 여성이 사업 책임자인 제인 슐만(Jane E.Schulman)부총장임
▲ 뉴욕주 라구아디아대학 소기업지원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한 기념사진 사진 중앙에 있는 여성이 사업 책임자인 제인 슐만(Jane E.Schulman)부총장임
ⓒ 문진수

관련사진보기


센터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소상공인들에게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주고 기업가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가와 지원센터가 각각 담당해야 할 역할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성심성의껏 도와주되, 매달리지 않고 자립할 수 있도록 뒤에서 미는 것. 보조금이든 뭐든 주면 그걸로 임무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지원기관이나 본인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지원해달라고 떼를 쓰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교훈이다.

지원센터를 찾는 이들은 함께 교육훈련을 받으면서 강한 유대를 형성하게 되고, 서로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로 인식해 함께 돕고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고 한다. 시장에서 생존하는 것도 힘겨운 상황에서 동료 사업가를 돕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고 물었더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협력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각자도생이 힘겨우니 협력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인데, 지극히 옳은 말이지만,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무척 높은 수준의 질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기반의 지원센터가 아닌 독립 비영리기관들은 소상공인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역금융기관(CDFI)이면서 창업지원센터(EAP center)이기도 한 뉴욕시 차이나타운에 있는 현장 지원기관 한 곳을 방문했다. 지역금융기관은 지역공동체 개발(community development)을 목적으로 설립된 지역 밀착형 금융기관으로 은행, 신협, 융자회사, 지역개발조합, 벤처캐피털 등 다양한 형태를 띤 자금 중개조직을 말한다. 주로 낙후지역에서 활동하며 상업은행 등 주류 금융의 문턱을 넘기 힘든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대출, 투자 등 금융지원을 해주는 것을 임무로 삼고 있다.

중국 이민자를 포함, 뉴욕에 거주하는 아시아 출신 소기업 소상공인들을 돕기 위해 설립(1997년)된 르네상스(REDC)는 시내 3곳에 사무실을 두고 저금리 융자 등 금융지원 업무와 경영 교육, 일대일 상담 등 경영지원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마침 한국 출신의 나이 지긋한 컨설턴트 한 분이 사무실에 계셔서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우리 일행의 방문 서신을 접하고 기관에서 배려를 해 준 것이다.

renaissance-ny.org
▲ Renaissance Economic Development Corporation 누리집 renaissance-ny.org
ⓒ 문진수

관련사진보기


"르네상스는 지금까지 1200개의 소기업에 4600만 불(약 500억)의 돈을 융자(micro-loan)했습니다. 기업 당 평균 4천만 원이 조금 넘는 사업자금을 빌려준 셈입니다. 1만 개의 기업을 컨설팅(technical assistant)했고, 이 과정에서 5천 개의 직업을 창출 또는 유지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의 80%가 저소득층입니다. 성향별로 보면 절반이 여성이고, 85%가 아시아 출신 이민자 등 소수민족입니다. 다른 현장 지원기관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저소득층, 소수자, 여성, 이민자 출신 소기업 소상공인들이 주 고객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에 이민 온 지 5년 남짓 된다는 한국 시니어분이 숫자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기관 소개와 사업 설명을 해주었다. 업무 프로세스가 궁금하다고 질문하자, 융자 및 컨설팅 과정에서 꼭 지키고 있는 운영 원칙들을 알려주었다. 첫째, 고객과의 상담시간은 1시간 이상을 할애한다. 둘째, 대출 승낙 시 신용평가점수(credit score)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사업 계획 타당성, 삶의 이력 등 정성 정보를 함께 고려해 판단한다. 셋째, 금융 지원과 비금융 서비스를 연계한다. 넷째, 융자 실행 후 정기 회합 등 고객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대출 업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원칙들의 실행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특히 신용평점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줄 경우,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새로 시작하려는 사업계획이 잘 수립되었는지, 주변 상황은 어떤지 등의 정보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나아가 상담, 컨설팅, 교육훈련을 통해 사업이 망하지 않고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함께 병행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채무 불이행을 막으려면 금융 지원과 비금융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난이도 높은 과정이다.

금융 지원과 비금융 서비스의 결합

기관 성격에 따라 운영 방법이 조금씩 달랐지만, 이번에 방문한 현장 지원기관들 대부분이 이 원칙을 공통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다. 뉴욕시 브루클린(Brooklyn) 흑인 밀집지역에서 활동하는 현장 지원기관(BSRC)의 경우, 준비 안 된 창업 희망자에게는 자금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일대일 상담을 통해 돈 이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업 추진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는지를 알려주고 사업계획서를 충실히 작성케 한 다음, 금융 지원을 해주었다.

또한 금융 지원이 이루어진 후에는 매장 계약방법, 고용 관련 법률 이슈, 마케팅, 고객 관리, 금융기관 활용방법 등 실제 사업 운영에 필요한 주제들을 세미나나 단기 교육을 통해 이수케 함으로써, 창업 후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 프로그램들을 가동하고 있었다. 지역금융기관(CDFI)으로서 활동해 온 오랜 경험과 창업지원센터(EAP center)의 기능을 적절히 결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고 로버트 케네디가 뉴욕시 브루쿨린에 설립한 지역재생기관 BSRC 누리집 메인화면 : restorationplaza.org
▲ Bedford Stuyvesant Restoration Corporation 누리집 고 로버트 케네디가 뉴욕시 브루쿨린에 설립한 지역재생기관 BSRC 누리집 메인화면 : restorationplaza.org
ⓒ 문진수

관련사진보기


현장 지원기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은 풍부한 전문 인력 풀(pool)이다. 법률, 금융, 세무, 경영관리, 마케팅 등 사업 운영에 필요한 전 분야에 걸쳐 자문과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지원 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주류 시장에서 고액연봉을 받으며 잘 나가던 은행가가 비영리단체 상근임원으로 일하거나, 사업가 출신 시니어가 은퇴를 하고 무보수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경우가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대부분의 지원기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반화된 모습이었다.

시장에선 승자가 되기 위해 야수의 이빨을 드러내고 치열하게 싸우지만 그렇게 번 돈을 소외계층을 위해 베풀고, 시간이 곧 돈인 전문가들이 개인 시간을 할애해 자신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정년퇴직한 시니어들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기꺼이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기독교에 바탕을 둔 윤리의식과 문화의 발로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우리 사회의 부족함이 크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대사다. 소상공인으로, 자영업자로, 프리랜서로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극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OECD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9-2014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남성의 실질 은퇴연령(effective retirement age)은 72.9세, 여성은 70.6세다. 퇴직연령을 60세로 잡아도 남성은 약 13년, 여성은 10년 이상을 더 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쟁터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밖으로 나온 후에도 상당수는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을 지옥에서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일자리는 줄고 있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부터 정년을 마친 시니어까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의 고용률이 유지될 경우, 향후 5년간 40대 이하의 일자리가 연평균 25만 명씩 감소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들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정책을 도입한다 해도 단기간에 지옥을 천당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한다면 이들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할 수는 있다. 서비스업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산업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고 소기업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정책 강화와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언제 당신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뉴욕시 소기업, 자영업자 지원기관을 지난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방문했습니다.



태그:#뉴욕주 , #뉴욕시, #소기업 지원, #소상공인 지원, #현장 지원기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