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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어떨까? 2017년 여름. 소기업·자영업자들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불현듯 뉴욕시가 떠올랐고, 관련 자료들을 검색하면서 이 도시를 직접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경제의 뿌리를 이루는 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 관점에서 뉴욕시를 조망해 본 자료를 거의 본 기억이 없었고, 무엇보다 크고 작은 소기업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메가시티 뉴욕의 지원 생태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뉴욕 탐방단을 꾸리게 되었고, 금년 3월 일주일간 뉴욕시를 방문해 소기업들을 지원하는 일을 수행하는 여러 기관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지면을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기자말>

뉴욕 주는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뉴욕시를 포함, 10개 지역(region) 62개 군(county)에 약 2천만 명이 살고 있는 4번째로 큰 주(state)로, 주 경제에서 소기업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뉴욕 주 개발공사(Empire State Development)의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사업체 중 98%가 소기업이고, 고용인원 10명 중 4명이 소기업에서 일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업종별 평균 매출액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업체를 소기업으로 분류하지만, 뉴욕 주에서는 상시 근로자 100인 이하의 사업체를 소기업(small business)으로, 20인 미만 사업체를 마이크로 기업(micro business)으로 분류한다.

뉴욕 주는 2010년부터 경제 정책의 핵심을 '지역 기반형 풀뿌리 경제구조 발전'으로 설정하고 소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뉴욕 주에 존재하는 소기업을 지원하는 임무를 띤 기관이 이번에 방문한 뉴욕 주 개발공사(ESD)다. 설립된 지 올해로 만 77년이 되는 주 개발공사는 중소기업 지원, 일자리 창출, 낙후지역 개발, 지역별 핵심 산업 육성을 목표로 삼고 사업자금 대출, 보조금 지원, 세금 공제, 부동산 개발, 마케팅 지원 등 다양한 금융, 비 금융 지원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 산하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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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주 개발공사(ESD) 누리집 메인화면 esd.ny.gov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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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중심에 위치한 개발공사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우리 일행은 기대 이상의 회의 준비와 환대에 큰 감동을 받았다. 때늦은 겨울폭풍과 폭설로 도로 사정이 나빠져 회의 참석 예정자 중 두 명이 공사 사무실에 올 수 없게 되자 화상 회의를 할 수 있는 장소로 두 사람을 이동케 한 다음, 회의에 참여하도록 조치를 취해주고 예정 시간보다 회의가 훨씬 길어졌음에도 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 내용과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해외 기관 탐방을 많이 다녀봤지만 흔치 않는 일이었다.

우리가 보낸 방문 요청서한을 잘 읽었다면서 공사 사업 및 현황 소개를 직접 해 준 소기업 지원 담당 임원(Bette Yee)은 개발공사의 사업 운영전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주었다.

- 인프라 구축, 혁신 공간 개발, 상업 지구 및 노동시장 개발을 위한 전략적 투자
- 다양한 지역사회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의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 인구 유지, 기업 성장 등 21세기 경제 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산업 발전 지원
- 여성, 소수민족 등 취약계층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대해 동등한 경제적 기회 부여
- 조사연구,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한 창업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 지원
- 혁신 기반 경제 발전을 위한 지역 대학과의 연계 강화

중앙에 흰 옷을 입은 여성이 담당 임원인 Bette Yee여사다
▲ ESD 관계자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중앙에 흰 옷을 입은 여성이 담당 임원인 Bette Yee여사다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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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역사회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의회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지역대학들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접근법이었다. 현재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학은 물론이고 연방정부, 뉴욕 시 산하기관, 지역 단체, 비영리 기구 등 다양한 사회경제 주체들과의 협력 및 네트워크를 강화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주 개발공사가 추진하는 정책 중 소기업을 위한 지원 사업이라 할 만한 것은 크게 세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뉴욕 주 내 주요 지역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지원센터(Entrepreneurial Assistant Program Center)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 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은 사람과 성공한 사업가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네트워킹 프로그램(Business Mentor NY)이다. 그리고 지역별 산업 구조와 특성에 맞춰 핵심 산업을 육성, 지원하는 프로그램(NY STAR)이 운영되고 있다.

지원센터(EAP Center)는 인구 구성, 산업 구조 등 지역 특성에 따라 전략적으로 선정되며 총 24개가 존재한다. 지원센터로 인증을 받으려면 기업들의 접근이 용이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야 하고 자금 조달능력, 멘토링 경력 등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비영리로 운영되는 교육 및 컨설팅기관이나 지역밀착 금융기관, 지역기반 대학(community college)들이 주를 이룬다. 각 지원센터들은 예비 창업자나 창업기업들을 대상으로 사업자금 융자나 채무보증 같은 금융지원 프로그램과 경영교육(60시간), 컨설팅, 일대일 상담, 주 정부 공공조달 자격인증 서비스 등 경영지원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운영한다.

뉴욕주 개발공사(ESD) 소개자료에서 발췌
▲ 뉴욕주 EAP Center 위치 뉴욕주 개발공사(ESD) 소개자료에서 발췌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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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공사는 각 지원센터에 매년 목표를 부여하고 사업성과 측정을 통해 센터별로 예산 지원을 차등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성과가 일정 수준에 미달될 경우, 다음 연도 예산 일부를 삭감하는 식이다.

성과 측정 기준으로는 경영교육 수료생 수 같은 산출(output)지표도 있지만 매출액 증가액, 일자리 창출 수 같은 성과(outcome)지표도 포함되어 있다. 뉴욕 주는 소수민족이나 이민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설립한 소기업들(MWBEs, Minority or Woman-owned Business Enterprise)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를 정부 공공조달 시 우선 구매함으로써 이들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지원센터는 이들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원센터의 도움을 얻어 성공한 사례들도 많았다. 부업으로 팔던 수제파이(tart)가 인기를 끌자 지원센터의 자문과 투자를 받아 대량 생산체제로 전환, 뉴욕 주는 물론 북미와 캐나다 스타벅스 매장 납품 계약을 따냄으로써 불과 1년 만에 연매출 30만 불에서 300만 불로 수직상승한 수제 파이기업(megpies)이 대표적이다.

또, 미용사로 일하다 차이나타운 센터의 도움을 받아 네일샵(nail shop)을 차려 성공한 후, 매장수를 늘려가고 있는 중국계 여성, 라오스 난민 신분으로 언어 장벽과 차별 대우 속에서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다가 마루 사업을 시작했지만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다가 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사업자금을 대출받아 마침내 170만 불이 넘는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TK flooring)로 만든 대표 등 개발공사의 연차보고서에는 센터의 도움을 얻어 인새역전을 이룬 크고 작은 성공 사례들이 깨알처럼 소개돼 있었다. 

네트워킹 프로그램은 소상공인들이 사업 운영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사업 경험이 풍부한 선배 사업가들과 멘토-멘티 관계를 맺어주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다. 2017년 한 해에만 총 889쌍의 멘토-멘티가 매칭 되었다고 한다. 멘토가 되려면 5년 이상 사업체를 운영한 경험이 있거나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멘토링은 일체의 대가 없이 재능기부로 이루어진다. 도움이 필요한 사업자는 시스템에 접속해 멘토 리스트를 검색해 적합한 사람을 선택한 후 상담 요청을 하면 되며, 만남을 통해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받는 방식이다.

성과는 눈부시다. 2014년에 문을 연 이후 현재까지 멘토링을 받은 기업체의 86%가 매출 상승을 이루었고 평균 3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한 기업도 절반이 넘는다. 창업 후 2년 생존율도 90%로 전국 평균(69%)보다 20% 포인트 이상 높다. 흥미로운 사실은 도움을 받은 멘티(83%가 만족감 표시)보다 도움을 준 멘토의 만족도(95%)가 더 높다는 점이다. 설문 결과, 멘토의 74%가 이 재능기부 활동이 본인들의 전문성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도움을 받은 사람과 준 사람 모두가 만족감과 사업에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문자 그대로 상생(win-win)의 질서를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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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주 비지니스 멘토 누리집 메인화면 businessmentor.ny.gov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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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혁신 기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NY STAR)으로는 제조업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FuzeHub), 기술 기반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CAT), 첨단기술 산업을 영위하는 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COE), 소기업 소상공인을 돕는 비영리 기관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MEP), 창업 기업을 위한 혁신 공간 프로그램(Innovation Hot Spot) 등이 존재한다. 혁신 공간 프로그램이란 개발공사가 제공하는 인큐베이션 공간에 입주하는 창업기업들에게 세금 감면이나 투자 유치 등 혜택을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 밖에도 도심 외곽(upstate)지역 활성화를 위해 이 지역에 창업을 하거나 이전하는 혁신기업들을 대상으로 10년간의 면세 혜택, 대학과의 공동 연구개발 투자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지역 내 일자리 창출 진작을 위해 신규 채용한 임금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확대하고 대출, 보조금, 세금공제, 부동산 개발, 마케팅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지역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는 개발공사의 사명(mission)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주 개발공사 방문을 마치고 인근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동행한 동료들과 '소기업 자영업자의 성공을 돕는 지원기관의 역할'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이들의 지원체계나 방식이 우리보다 월등히 낫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시스템 측면에서 본다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투입되는 재원의 크기가 다르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만, 재정 규모만으로 비교우위를 판단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들에겐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것이 무엇일까?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였지만, 개발공사 방문을 통해 깨닫게 된 교훈은 이러하다.

첫째,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둘째, 어떤 프로그램을 도입하건, 참여자들의 자발적 활동을 유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 셋째, 지원의 형식과 내용은 철저히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넷째, 민관을 아우르는 협력 구조와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 다섯째, 지원효과를 높이려면 양적인 측면에 매몰되지 말고 제대로 된 모범사례를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내용들은 오래 전 정부가 발표한 지원정책이나 연구문헌 안에 포함되어 있을 법한 이야기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주소를 냉정히 살펴보면, 후한 평가를 줄만한 대목은 별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정부의 지원방식은 근본적 처방이 아닌 대증요법에 가깝고, 의미 있는 성과보다 산출의 크기에 경도되어 있으며, 당사자들은 수혜자(beneficiaries) 마인드에 젖어 있고, 지역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는 현장 지원기관은 찾아보기 힘들며, 큰 기업들은 소기업 자영업자들을 돕기는커녕 이들의 밥그릇을 뺏는 일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 지방선거가 끝났다. 지역민들의 민심에 따라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많이 바뀌었고 민선 7기에 당선된 분들의 임기가 곧 시작된다. 정부 국정 지표 중 하나인 '더불어 잘 사는 경제,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을 이루려면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당선의 영광을 얻은 이들 모두 '우리 동네와 지역을 위해 이렇게 하겠노라'고 공약집에 넣은 약속들을 성실히 실천해 가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뉴욕시 소기업, 자영업자 지원기관을 지난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방문했습니다.



태그:#뉴욕주 개발공사, #EMPIRE STATE DEVELOPMEN, #EAP CENTER, #BUSINESSMENTOR NY, #NY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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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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