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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부터 불과 며칠 전까지 한 달 가까이 옻 알레르기로 크게 고생했다. 살아오면서 겪은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이란 생각이 든다.

4월 마지막 일요일. 형제처럼 지내는 이웃 형님이 참나물을 비롯한 봄나물들을 밭에서 많이 뜯어 줬다. 그와 함께 (참)옻순도 줬다. 물론 옻순도 별 탈 없이 먹는지 물어본 후였다. 그런데 물어보는 그 순간 (흔한 말로 뭐에 씌었는지) 옻이 오르지 않는다고 알려진 '개옻순'으로 들었다. 그래서 형님이나 나나 그것의 위험성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처음 접하는 옻이었다. 옻이 오르지 않는다는 개옻순이라지만 막상 꺼려졌다. 20여 년 전, 옆 가게 아저씨가 옻닭을 먹은 후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친 후 온종일 담가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찝찝해 모두 버렸다. 그래서 며칠 후 시작된 가려움이 옻 때문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미세먼지나 꽃가루로 인한 알레르기 같은데요.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눈과 피부 알레르기로 오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급한 마음에 찾은 약국에서 이처럼 말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한편으론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피부가 적응하지 못해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가려운 것을 참지 못하고 긁어서 더 가려운가 보다', '면역력이 약해졌거나 다른 질환 때문 아닐까?', '이제 나도 이렇게 나이 더해가며 하나 둘씩 병이 시작되나 보다' 등으로도 여겼다.

그런데 병원 진찰 결과 옻순 때문이었고, 3주 넘게 많은 고생을 했다. 참기 어렵고, 긁어도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 그런, 정말 지독한 가려움이었다.

"옻이나 은행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피부 발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옻나무 옆에만 가도 옻 오른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에요. 실제로 그런 분들 많거든요. 그런데 데쳤다면서요. 데칠 때 발생하는 수증기만으로도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옻이 오를 정도로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씹어 맛보기까지 했다니 결론적으로 먹은 거나 같은 거지요. 매우 심한 경우이긴 한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얼굴에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데치는 경우 얼굴에도 많이 나타나거든요. 목이 가려울 때 얼음찜질 하신 것이 크게 도움된 것 같네요."

첫 병원에서 처방해준 4일치 약을 먹고도 낫기는커녕 증세가 더 심해져 바꿔 찾은 동네 병원 의사의 소견이다. 의사는 내가 갈 때마다 안쓰러워 하며 최대한 긁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잠결에 나도 모르게 박박 긁다가 깨곤 했다. 그렇게 오른팔에서 시작된 가려움은 왼쪽팔로 번져 손등에까지, 그리고 온몸으로 번졌다.

약 때문인지, 옻 때문인지 앉아 밥 먹는 것까지 힘들곤 했다. 걸핏하면 눕고 싶었다. '이렇게 실명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눈이 흐려지고 붓기까지 했다. 결국 안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머릿속은 뭔가 뭉텅이로 빠져나간 듯 개운치 못한 한편 멍하게 고통스러운 상태가 계속됐다. 걸핏하면 체하곤 했다. 한번도 앓아본 적 없는 치질 증세까지 찾아왔다.

봄나물을 먹는 계절이 되면 옻순무침, 옻순튀김, 옻순나물이 식탁에 올라온다. 웬만한 시골에선 옻나무 껍질을 벗겨 옻닭 해먹는 걸 조그마한 잔치로 여길 정도이며, 옻닭이란 간판을 단 식당도 눈에 자주 뛸 만큼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만화가 허명만씨는 <식객>에서 옻나무가 최고의 산나물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옻을 먹는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옻나무를 별미로만 생각해 복용하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옻나무에 옷깃을 슬쩍 스치기만 해도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피부염이 일어날 수 있다. 옻나무 수액의 독성은 핀 머리끝에 묻힌 한 방울로 옻에 민감한 사람 500명에게 발진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강력하다. 더욱이 옻나무의 부작용은 피부반응뿐만 아니라 신장 등 내장기관에도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한방에서는 몸에 열이 있거나 알레르기 체질, 고혈압 환자가 복용하면 독약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 296~297에서.

여하간 옻으로 고생해보지 않았거나, 옻닭을 건강식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옻이 오를 수 있을까?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실은 나도 그랬다. 어쩌다 한두 사람이나 겪는 고통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먹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눠주겠다는데 버리더라도 일단 받자. 버리기 직전 어떤 맛일까 궁금해 씹어 보기까지 했던 것이다.

<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 책표지.
 <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 책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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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문학동네 펴냄)는 옻을 비롯하여 감자, 헛개나무, 유채, 고사리, 겨우살이, 원추리, 차(茶), 수선화, 나팔꽃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들과 건강을 위해 혹은 이제까지 먹어왔으니 별다른 의심 없이 먹고 있지만 실은 몸을 해치기도 하는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식물들을 다룬다.

'한방에서 옻은 소화를 돕고, 피를 맑게 하며, 몸속 온갖 균을 죽이는 작용(295쪽)'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서도 '마른 옻은 어혈을 삭힌다거나, 소장을 통하게 해 회충을 죽인다거나, 멎은 월경을 다시 하게 한다. 생옻을 오래 먹으면 몸을 가볍게 한다' 등으로 처방하고 있다. 최근에는 항암제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자랄 때만해도 허약한 아이들에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옻을 먹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날엔 몸에 좋은 보양식이라며 옻닭을 즐겨 먹는 사람들도 많고, 귀한 음식으로 대접하기도 한다. 만화가 허영만씨처럼 옻순을 봄나물 중 으뜸으로 치거나 먹을 수 있는 때를 기다릴 정도로 즐겨 먹는 사람들도 많다.

여하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옻 사랑은 각별하다. 그런데 옻으로 고생하는 와중에 이 책과 병원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말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반면 옻의 부작용을 너무 간과한다거나, 사실과 달리 잘못 알려진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가볍게 생각한다거나 옻닭을 먹기 전 약을 먹고 먹으면 괜찮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일반인 40퍼센트는 옻 오를 수 있어
피부염은 물론 신장 등 내장기관에도 부작용

보통 옻닭을 먹은 후 초기 증상이 발생하기까지는 평균 47.7시간이 걸린다. 빠르면 30분 만에 증상이 나타나지만 16일이 지난 후에야 발현하기도 한다. 특히 대부분의 환자들은 옻을 여러 번 복용한 후 증상이 발생하지만, 단 한 번 옻닭을 먹었을 뿐인데도 옻이 오른 경우도 40퍼센트에 이른다.

옻을 유발하는 물질은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다. 일반적으로 옻산이라고 한다. 옻나무를 태우거나 삶는 경우에도 우루시올을 함유한 연기나 증기가 인두 안쪽, 호흡기, 폐, 눈에 발진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산불이 나서 옻나무가 타는 지역도 위험지대가 된다. 우루시올이 타오느는 연기와 함께 먼지나 재에 실려 떠다니며 우리 몸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옻은 항원성이 강하고 쉽게 제거되지 않아 남편이 옻을 먹고 부인과 성관계를 하면 부인에게도 접촉피부염이 나타날 수 있다. - 298~299


옻으로 고생한다고 하자 사람들 대부분 "옻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거나, "그래서 한번 옻 오른 사람은 다시는 오르지 않는다. 앞으로는 몸에 좋은 옻을 맘껏 먹을 수 있어 좋겠다"와 같은 위로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옻만큼 몸에 맞으면 좋은 약도 없다더라. 그동안 여러 번 먹었어도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면 몸에 맞는 것이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며 축복인 양 은근히 뻐기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런데 의사와 이 책에 의하면 나처럼 옻이 오른 사람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옻은 물론 은행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흔히 알려진 것처럼 '개옻은 옻이 오르지 않는다=참옻만 옻이 오른다'도 아니다. '옻나무뿐만 아니라 옻나무속의 개옻나무와 검양옻나무, 산검양옻나무도 옻나무 피부염의 주원인으로 알려지고 있어 주의해야(301쪽)"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책은 음식재료로 쓰이거나, 관상용 식물로 키우거나, 약효가 뛰어나 약재로 쓰이나 독성도 많은 식물 등, 특징이나 쓰임에 따라 5부로 나눠 식물들의 독성을 들려준다. 그런데 인류와 함께 해온 역사나 풍습, 문화, 해당 식물에 대한 상식까지 풍성하게 풀어놓고 있어서 흥미롭다. 다시 읽은 책이다. 옻으로 고생한 후 읽었기 때문일까. 더욱 쏙쏙 와 닿았다.   

그동안 옻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물론 심지어 옻닭 먹고 죽은 사람을 가까이서 봤음에도 옻을 신중하게 대하지 않아 옻으로 고생한 것은 옻의 위험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옻뿐일까. 이 책을 읽으며 놀란 것은 우리 주변에는 위험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럼에도 옻의 독성처럼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옻닭을 여름철 보양식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다. 알레르기를 예방하는 부신피질 호르몬이 들어간 알약을 먹은 후 옻닭을 먹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별탈없이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알약 덕분에 어떤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만으로 과연 안전한 것이며, 나아가 우리 몸에 좋은 걸까? 책에 의하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옻을 여러 번 복용한 후 증상이 발생'한다고 하니 이제까지 별일 없이 먹었어도 한번쯤 심사숙고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임경수. 손창환 . 김원학 함께 씀)| 문학동네 | 2014-04-03 ㅣ정가 24,000원.



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 - 우리 곁에서 치명적 유혹을 던지는

김원학.임경수.손창환 지음, 문학동네(2014)


태그:#옻닭(옻순), #우루시올(옻산), #독초(독성, 독약), #피부발진,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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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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