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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위하여

내가 이 기사를 연재하고 있는 이유 중의 또 하나는 후일 사가들을 위해서다. 나는 영어도 몹시 서툴고, 게다가 운전면허증도 없다. 그런 내가 한국전쟁 사료(史料)를 찾고자 미국에 애써 가서 이 사진들을 모은 뒤 이를 정리해 기사로 발표하는 것은 후세 사가들에게 한국전쟁의 진실을 더 정확히 알리고자 함에 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해 1953년 7월 27일에야 그 포성이 멈췄다. 3년 남짓 1129일 만에야 정전협정을 맺은 동족상잔의 아주 잔인한 전쟁이었다. 200년~300년이 지난 그때 후세 사가들은 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하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체험한 나는 2004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들을 보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이 사진 위에 선명히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꼭 13년째 한국전쟁 사진들을 검색, 수집, 연구하고 있다.

나는 육군 장교(ROTC 7기)로 군사학을 배웠고, 전방부대에서 각종 무기들을 살펴본 바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나 국군들이 사용했던 무기들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은 거의 없었다.

인민군 무기는 주로 소련이, 국군 무기는 대부분 미국이 원조한 것들이었다. 후세 사가들이 이런 사실을 꿰뚫는다면 20세기 조상들은 참으로 어리석고, 무지 몽매했다고 여길 것 같다. 강대국이 원조한 무기로 동족끼리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서로 살상했다고.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42회에서는 한국전쟁 중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의 무기 사진을 골라 봤다. 나는 이 사진들을 이 기사에 배치하면서 '우리는 꼭 그렇게 싸워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을 골똘히 해봤다. 1950년 한국전쟁은 강대국의 땅따먹기 영역 싸움에 우리 겨레가 놀아난, 그들의 대리전쟁에 희생양이 된 꼴이 아니었을까. - 기자 말

유엔군 측 무기들

1950. 8. 13. 국군이 81mm 박격포 조준 연습을 하고 있다.
 1950. 8. 13. 국군이 81mm 박격포 조준 연습을 하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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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9. 6. 미 항공모함 갑판에서 전투기에 장전할 폭탄을 옮기고 있다.
 1950. 9. 6. 미 항공모함 갑판에서 전투기에 장전할 폭탄을 옮기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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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1. 14. 미 해군이 원산 앞바다에서 기뢰 제거 장비를 투하하고 있다.
 1950. 11. 14. 미 해군이 원산 앞바다에서 기뢰 제거 장비를 투하하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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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7. 22. 청진, 미 군함이 동해에서 북한진지를 향해 맹렬히 함포 사격하고 있다.
 1951. 7. 22. 청진, 미 군함이 동해에서 북한진지를 향해 맹렬히 함포 사격하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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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0. 28. 미 해군 하사관이 새로 개발한 네이팜탄을 전투기에 장전하고 있다.
 1951. 10. 28. 미 해군 하사관이 새로 개발한 네이팜탄을 전투기에 장전하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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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블릭 F-84 쎈더 제트기다. 야간 출격 전문으로 개발된 전투기로 한국인들은 일명 “쌕쌕이”로 불렀다. 한국전쟁 기간 중 이 F-84 전투기는 주야간 전천후로 출격하여 전후방 하늘을 누비며 맹위를 떨쳤다.
 리퍼블릭 F-84 쎈더 제트기다. 야간 출격 전문으로 개발된 전투기로 한국인들은 일명 “쌕쌕이”로 불렀다. 한국전쟁 기간 중 이 F-84 전투기는 주야간 전천후로 출격하여 전후방 하늘을 누비며 맹위를 떨쳤다.
ⓒ 황병용(재미동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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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7. 1. 미 해병이 탱크에서 기관총을 정비하고 있다.
 1953. 7. 1. 미 해병이 탱크에서 기관총을 정비하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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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으로 전투기에 장전할 폭탄을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크레인으로 전투기에 장전할 폭탄을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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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빈소총. 1941년 미국에서 만들기 시작한 소총으로 중량 2.36kg 유효사거리 200m이다. 필자가 군 복무할 1970년대 전후 이 소총은 소대장 중대장 등 주로 초급지휘관용으로, 경찰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카빈소총. 1941년 미국에서 만들기 시작한 소총으로 중량 2.36kg 유효사거리 200m이다. 필자가 군 복무할 1970년대 전후 이 소총은 소대장 중대장 등 주로 초급지휘관용으로, 경찰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 황병용(재미동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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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소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 소총이자, 6·25 당시 국군의 주력 소총이었다. 무게 : 4.2kg, 최대사거리 : 3,200m, 유효사거리 : 460m의 개인소총으로 한국인 체형에는 다소 무거운 개인화기였다. 이후 M16 소총이 개발 보급되었다.
 M1 소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 소총이자, 6·25 당시 국군의 주력 소총이었다. 무게 : 4.2kg, 최대사거리 : 3,200m, 유효사거리 : 460m의 개인소총으로 한국인 체형에는 다소 무거운 개인화기였다. 이후 M16 소총이 개발 보급되었다.
ⓒ 황병용(재미동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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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군 측 무기들

인민군 기계화 부대의 중기관총
 인민군 기계화 부대의 중기관총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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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탱크부대의사열
 인민군 탱크부대의사열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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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포용 항공기 관측장비.
 고사포용 항공기 관측장비.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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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해군함정의 고사포
 인민군 해군함정의 고사포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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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제 기뢰. 기뢰는 수중에 부설해 진동이나 수압 혹은 자기장이나 음향 등에 의해 폭발하며, 수상함이나 잠수함을 격침시키는데 주로 사용하였다(2009. 11. 블라디보스토크 무기 전시장에서 촬영).
▲ 기뢰 소련제 기뢰. 기뢰는 수중에 부설해 진동이나 수압 혹은 자기장이나 음향 등에 의해 폭발하며, 수상함이나 잠수함을 격침시키는데 주로 사용하였다(2009. 11. 블라디보스토크 무기 전시장에서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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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제 어뢰.자동장치에 의해서 물속을 전진하면서 군함 ·잠수함 등에 닿으면 폭발하는 폭탄(2009. 11.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무기 전시장에서 촬영).
▲ 공산군 측 무기들 소련제 어뢰.자동장치에 의해서 물속을 전진하면서 군함 ·잠수함 등에 닿으면 폭발하는 폭탄(2009. 11.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무기 전시장에서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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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5. 유엔군들이 노획한 인민군 개인화기들.
 1951. 5. 유엔군들이 노획한 인민군 개인화기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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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식장총(일명 '딱콩 총', 원명 Mosin-Nagant M-1891)으로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들이 많이 메고 다녔던 소련제 소총이다.
 아식장총(일명 '딱콩 총', 원명 Mosin-Nagant M-1891)으로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들이 많이 메고 다녔던 소련제 소총이다.
ⓒ 황병용(재미동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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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북한 인민군에게 지원한 일명 "따발총"으로 분당 900 발의 연사속도를 자랑한다.
 소련이 북한 인민군에게 지원한 일명 "따발총"으로 분당 900 발의 연사속도를 자랑한다.
ⓒ 황병용(재미동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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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 소련제 탱크. 인민군이 수도 서울을 사흘 만에 진주하는데 최대로 공헌한 무기였다.
 T-34 소련제 탱크. 인민군이 수도 서울을 사흘 만에 진주하는데 최대로 공헌한 무기였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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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



태그:#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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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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