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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사 교육장소에서 귀농·귀촌에 대한 홍보를 잠깐 하겠다며 어느 지역의 관계자가 찾아왔다. 농촌 지자체마다 인구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요즘에는 찾아다니면서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종 지원과 혜택이 많다고 하는데, 보험상품을 홍보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2년 전 귀농을 한 그가 생각났다.

5년 전, 인천시 부평에서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라는 뜻의 겨리출판사에서 그와 처음 만났다. 건물 옥탑의 작은 사무실과 옥상에는 상자에 흙을 담아 여러 작물을 키우는 텃밭이 인상적이었다. 대학교에서 공부한 국문학과의 전공을 살려서 졸업 후에는 출판사를 다니다가 월간지 기자를 하던 같은 과의 후배를 우연히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을 했다.

2013년 직접 책을 만들겠다며 아내와 함께 겨리출판사를 창업했지만, 점차 누적되는 빚 때문에 물류센터에서 짐을 나르는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책을 만드는 기쁨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에도 상처를 남기는 일들이 많아졌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고민이 깊어지던 때, 서울 방배역 근처에서 우연히 전라북도의 귀농·귀촌 홍보관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출판을 도시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강했고 문화사업을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시도해보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지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인생 2막 3장, 이제 시작해야겠구나. 막연하지만 내 농사를 짓고 사람들 관계를 일구고 지역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6년 10월 정채영(49)씨는 승용차에 필요한 짐들만 싣고 전북 완주군의 농촌마을로 가족은 남겨둔 채 홀로 내려왔다. 지낼 수 있는 집을 미리 알아봤지만, 전기도 끊겨 있고 화장실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불편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전기도 없이 일주일을 지내다가 인근 지역으로 다시 옮겨야 했다. 농촌에서의 첫 출발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몸서리쳐지는 기억이라며, 너무 쉽게 생각하고 준비가 소홀했던 자신을 탓했다.

귀농인을 바라보는 농촌의 정서

농사에 자신을 내려놓고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고 싶다는 정채영 농부가 밭을 갈고 있다
 농사에 자신을 내려놓고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고 싶다는 정채영 농부가 밭을 갈고 있다
ⓒ 송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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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집은 월세로 얻었지만 도시와 시골의 정서적인 문화 차이를 겪었고 과정 또한 순탄치는 않았다. 그나마 500평의 밭이 생겨서 위로가 되었다. 지역주민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비닐하우스 농가를 찾아가서 돈을 받지 않고 농사일을 도우며 배우려고 했지만 '텃세'를 느꼈다.

마을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맺으며 서로 도와주는 것이 농촌의 정서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쉽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농촌의 정서라는 것은 새로운 사람에 대한 환영보다는 경계심으로 시작되고 관찰하면서 지켜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채 지원과 혜택 위주로만 설명하는 홍보정책은 귀농인들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자체의 귀농·귀촌 정책에 많은 것을 의지하고 내려왔지만 현실은 달라서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관과 단체에서 주도하는 귀농·귀촌 홍보는 법과 현지의 상황을 제대로 말하지 않아요. 귀농인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대부분 조건부이고 나이가 몇 살인가를 따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사비용을 지원하는 정책도 여러 가지를 따지기 때문에 실제로 받는 경우는 드물어요. 농민을 지원하는 정책도 300평 이상을 소유한 농지원부가 있거나 임대를 하더라도 농업경영체 등록에 필요한 임대차계약서를 써주는 땅 주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지난해 9월에 인근마을로 세 번째 이사를 했고, 인천에서 살던 집을 정리해 현재는 가족이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30만 원의 집을 얻었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한 번 더 집을 보려고 찾아갔다가 동네에서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부동산에서 알려준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을 듣고 계약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저렴하게 나온 땅이 있어서 집을 짓는 것도 생각을 했었지만 진입로가 없는 맹지였다. 주변의 땅 주인이 진입로를 만들 수 있도록 동의를 해줄리가 없다. 있던 길도 땅 주인이 바뀌면 길을 막아서 싸움과 소송까지 벌어지는 일도 흔하다.

"농촌의 땅과 집값이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빈집은 많지만 매물은 거의 없고 부동산을 통해 나온 땅과 집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현지사정을 모르는 귀농인들이 쉽게 속을 수도 있습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것은 농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그림이 필요해

두번째 귀농지역에서 딸과 함께 수확한 양파를 손질했다
 두번째 귀농지역에서 딸과 함께 수확한 양파를 손질했다
ⓒ 송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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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땅과 집을 장만하는 것보다 지역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시간을 들이는 일이 먼저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현재 지역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있고,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900평의 협업농장에서 여럿이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될 줄 알았지만, 결국 혼자 밭을 일구게 되었다. 그동안 밭에 방치된 풀과 비닐을 걷어내고 정리를 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고, 풀을 태우다가 큰불로 번져서 소방차가 달려오는 소동도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지역 주민들은 그의 진정성을 느끼고 응원과 관심을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금씩 지역에 적응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그는 농사에 자신을 내려놓으며 그동안 긴장하고 위축되었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싶다고 한다. 본업이었던 출판일도 지역에서 부인과 함께 준비하고 있으며, 최근에 출간한 책은 처음으로 적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1년에 세 번 지역을 옮기고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누군가는 먼저 그 길을 갔을 수도 있고, 준비하는 누군가도 같은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고 서둘러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정채영씨. 그는 귀농·귀촌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현지 상황도 잘 알아봐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명확한 그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귀농, #귀촌, #농사,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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