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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부 오름으로. 너무 다른 매력을 지닌 거문 오름, 다랑쉬 오름을 다녀와서 제주에 있는 동안 되도록 많은 오름들을 보고 싶어졌다. 아부 오름은 영화 <이재수의 난> 촬영 이후 유명해졌다는데 나는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오게 됐다.

버스에서 내리자 아부 오름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정상까지 걸어 10여 분이면 충분. 너무 쉽게 오른 데 반해 마주한 풍경은 놀라웠다. 멀리 한라산과 의기 충만한 호위 무사처럼 보이는 오름 군단들. 이전에 몇 번 제주에 왔을 때는 어떻게 오름을 그냥 지나쳤는지 의아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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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오름에서 버스 한 정류장 거리에 거슨세미/안돌/밧돌/민 오름이 한데 모여 있다. 걸어서 갈까 했지만 한낮 해가 뜨겁고 얼마 전 길을 잃었던 게 생각나 마침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타고 보니 다랑쉬 오름 가던 길에 정류장에서 교통카드를 찾게끔 도와주셨던 기사 님 차였다. 내릴 때 "또 뵙겠습니다" 하며 모두가 웃었다. 

이름이 가장 흥미로운 거슨세미 오름을 향해. 그런데 지금껏 가본 오름들과는 달리 안내판도 거의 없고 인적도 드물었다. 혼자서 한적한 숲길을 꽤 오래 걸은 끝에 '거슨세미 물 0.4km, 오름 정상 0.9k'라고 적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이름의 기원이 됐다는 거슨세미 물 쪽으로 가려 했으나 곧바로 마주한 키 큰 갈대밭 앞에서 방향을 잃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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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 발길에 스러진 듯한 갈대밭 위를 따라 올라가니 여러 개 무덤이 나타났다. 발자국의 주인이 성묘를 온 것인지 오름을 찾아 온 것인지 혼란이 왔으나 다른 길이 없어 계속 걸었다. 망자들의 명복을 빌며 슬쩍 무섬증이 이는 것을 부러 무시하며 나아가니 마침내 제법 정돈된 산길이 나왔다.

그리고 좀 전 아부오름에서 봤던 한라산과 안돌과 밧돌 오름 등이 한층 가까이 보였다. 그렇게 얼마쯤 더 올라가니 너무 황량해서 으스스한, 마치 오래된 수세식 변소 같기도, 영화 속 고문실로 이용되던 욕실 같기도 한 건물이 덩그러니 있었다. 하필이면 바로 앞엔 사람 한 명 누일 만한(?) 땅이 붉게 파헤쳐져 있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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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변소도 고문실도 아닌 다만 너무 허접한 관리동 안에서 막 낮잠에서 깬 중년 남자가 나왔다. 불안을 숨기며 부러 밝은 목소리로 "여기가 어디냐?" 물으니 "오름 정상"이라고 했다. "관리인이냐" 하니 "그렇다"고. "오는 이는 거의 없다"고도 했다. 이런 곳에 온종일 혼자 있으려면 관리인도 무척 무료하고 무서울 것도 같았다. 사실 내가 무서웠다.

아저씨는 친절했지만 수풀 우거진 오름에서 처음 만난 남자 사람이었고, 그냥 거기 있을 뿐 관리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물증은 없었다. 그래서 그만 "제 뒤에 두 사람 오고 있던데요" 하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의심과 불안은 아저씨와의 대화 중에 서서히 풀렸는데, 그는 내 고향 부산에서 30여 년 운전 기사로 일하다 정년이 되어 당신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다고.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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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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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치고 아저씨가 알려준 방향으로 내려오니 처음 가고자 했던 '거슨세미 물'로 보이는 작은 샘이 나왔다. 표지판은 없었다. 타고왔던 버스 안내원에 따르면 이 샘이 하류인 바다 쪽이 아닌 한라산을 향해 역류하는 것 같다 해서 '거스르다'란 뜻의 '거슨'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만 실감이 나진 않았다. 수량이 적을 때이거나 그 물이 아니거나.

원래 생각은 거슨세미/안돌/밧돌/민 오름을 오늘 내 모두 껑충껑충 올라서 볼 작정이었으나 만만했던 아부 오름과 달리 이미 거슨세미 오름에서만 상당한 시간과 체력을 썼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정류장에 서서 전화로 버스 시각을 확인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배차 간격이 1시간으로 늘어나는 점심 시간은 지났으니 길어봤자 30분일 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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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이나 거슨세미 오름 환경 조성에 관계된 분이나 나와 같은 탐방객들에 부탁 말씀. 영화나 CF 등으로 유명해진 일부 오름 외에 다른 오름들도 기본적인 안내판이나 탐방로 관리에 신경을 써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길. 그리고 오름 정상에서 온종일 머무는 관리인 분을 위해서나 정상의 경관을 위해서나 그 황량한 건물 수리좀 부탁 드립니다!

PS. 환승 버스를 기다리던 비자림에서 숙소 인근까지 차를 태워주신, 수원에서 오신 노부부께 감사 인사 전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고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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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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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의 실시간 여행이 궁금하다면?
https://www.facebook.com/pg/travelforall.Myoungju
http://blog.daum.net/lifeis_ajourney

뺑소니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강호에게 휠체어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여행 중에 만나는,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도 할 수 있는 만큼 돕고자 합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쉬고 놀 수 있는 여행자 공간(게스트하우스)를 다시 열고자 합니다. 저희의 여행을, 동물들의 보다 행복한 삶을, 다시 열 게스트하우스에 초대 받고 싶은 분은 '원고료'로 응원해주세요!



태그:#아부오름, #거슨세미오름, #제주도 여행, #한달살기 여행, #고양이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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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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