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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들이 늘어나는 시대

여성 혐오에 맞선 남성 혐오
18.05.20 21:0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마음이 뒷걸음질치는 시대

'잉(여들의 격) 투기'라는 영화를 몇 해 전, 학생들한테 보여준 적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으로 활동하는 녀석이 주인공. 그는 늘 저와 티격태격하던 '젖존슨'이 <현실에서 맞장뜨자>고 불러내서 나갔다가 그놈한테 일방적으로 줘터지고 그 얻어맞는 광경이 영상으로 인터넷 공간에 퍼져나가자 복수의 칼을 갈러 격투기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한다"는 줄거리의 영화입니다.
몇 해 전,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데 그 옆에 얄랑궂은 녀석들이 주저앉아 피자 치킨 배달 시켜 배 터지게 처먹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지요. 세월호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투쟁'을 벌이겠다면서!
 
토요일(19), '홍대 몰카 편파수사'에 항의한다며 전국에서 젊은 여성 만여 명이 몰려 들어(-꽤 큰 규모) 대학로에서 항의 집회가 벌어졌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위에 서술한) 두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인터넷에서 '여성 혐오' 활동을 벌이는 녀석들(일베 등등)과 맞장뜨던 '남성 혐오' 패거리중 한 명이 현실에서 쇠고랑을 차자, 남성들만 은근히 편드는 경찰한테 복수한다며 드디어 '현실 투쟁(잉여들은 이를 '현피'라 일컫는다 함)'에 나섰습니다. 그 집회를 훼방놓겠다고 집회장 주변에서 얼쩡대던 몇몇 남자놈들이 물벼락을 맞고 밀려났는데 이 남자놈들을 '폭식투쟁 패'에, 집회를 연 여자들을 '세월호 유가족'에 빗대어 말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처녀들은 성스러운 싸움에 나선 것이고, 거기서 얼쩡대던 남자녀석들은 파렴치한 인간말종이라고 여기는 것이 온당할까요?

판단해야할 문제는 그저 인터넷에서 팔팔 뛰던 일부 여성들의 행동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그녀들이 더러 허물이 있다 해도 기본적으로 옳다"며 감싸고 돌았던 일부 진보동네(언론,시민단체)의 안목(판단력)도 시험대에 오른 것 같습니다.
먼저 편파수사! 경찰의 반박문이 바로 나왔습니다. 최근얼마 동안만 따졌을 때 이것으로 남자애들이 34명 쇠고랑 찼고 여자는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범위를 더 널리 잡아도, 남자애들이 여자애들보다 3배나 많이 처벌됐습니다. 명분(옳음)을 중히 여기는 시민단체들에서 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있다면(그럴 거라고 보이는데), 과연 '편파수사 반대'가 옳은 명분이었는지 스스로 진중하게 돌아볼 일입니다.
여자들이 품는 피해의식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 몰카 범죄는 대부분 남자들이 저지르는 일이고 그 빈도수가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피해의식을 씻어주기 위해 입건되는 피의자들을 몽땅 잡아가두고 유죄를 때려야 할까요? 그것은 경찰 아닌 법원의 몫인데 그럼 다음에는 경찰 아닌 법원을 겨냥해서 항의집회를 할 심산인가요?

이는 '편파'의 문제가 아니라 법리法理의 문제요, '처벌 강화(경찰국가화)'가 꼭 바람직한 방향인지도 미심쩍습니다. 대중문화와 관련해서도 여성 네티즌들이 '여성 비하 표현'을 사사건건 끄집어내서 비난하는 일이 많은데 그네들 입맛에 다 맞추려면 한국 사법당국은 돼먹지 않은 검열 칼날을 마구 휘둘렀던 박정희 시절의 '검열 당국'으로 되돌아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방향 상실증'이 걱정스러워집니다.
대학로에 모여서 외쳐댄 일부 젊은 여성들의 발버둥에는 무엇인가 간절한 구석이 없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과녁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서 싸움을 건다면 아무리 더 큰 목소리로 외쳐댄다고 해서 의미 있는 사회적 반향을 불러내지 못합니다. 그저 헛수고를 하고 맙니다.

그녀들은 '여성 몰카, 당장 규제하라'고 화를 내고 외쳐댔지만 경찰들의 분발을 다그친다고 해서 쉽게 해소될 문제가 아닙니다. 경찰 만 명을 증원해서 사이버 범죄, 몰카 범죄 다스리는 쪽에 모조리 투입하는 게 해결책일까요? 탓하려면 몰카가 마구 범람하게끔 과학기술문명이 걷잡을 수 없는 쪽으로 마구 치닫는 것을 탓할 일이고(...군사인공위성을 마음껏 활용하여 승용차를 운전하는 시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면 대다수 사람들이 혐오 행동을 자주 벌이지 않는, 인문 교양이 널리 뿌리내린 사회를 이뤄내는 쪽으로 찾아야 할 일이 아닐까요?

후자後者의 길을 개척하는 것은 아시다시피 너무나 더딘 일입니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그 길로 찾아가야지 "국가(=경찰/판사)야, 몽둥이 들고 나와서 얘네들, 두드려패줘!"하고 권력을 불러대는 것이 좋은 방향은 아닙니다. 세상에 몰카 범죄 저지르려는 사람은 자꾸 늘어나고, 그에 따라 (그들을 때려잡을) 경찰을 마구 늘리는 것이 '좋은 세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에 남자들은 다 악당(한남충)이고, 여자들은 다 천사일까요? 여성혐오는 극악한 범죄이고, 남성혐오는 죄없는/순진한 짓인가요? 그런 눈먼 이분법을 휘둘러대서는 '여성 혐오'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여성 혐오자'들을 가라앉힐 길은 "아, 내(우리)가 쪽팔리는 짓을 했구나."하고 깨달음을 퍼뜨리는 것이지, 쇠고랑 채우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한때 '일베'가 기승을 부렸지만 요즘은 남성혐오 커뮤니티들이 더 기세가 높아졌는데, 남성혐오자들이 목청을 높이는 한, 여성혐오자들이 소멸할 리 없습니다.
간추리겠습니다. 여성들은 '여성몰카 해결책'을 세우라고 경찰(정부)한테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일상 속에서 온갖 혐오와 차별을 반대할 수 있는 도덕적 정치적 주체들을 북돋는 길입니다.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잠재적인 몰카범(?)들을 몇 안 되는 경찰이 무슨 수로 잡습니까. 그런데 (제 성질을 못 이기는) 일부 여성들은 그런 깜냥들이 돼 보이지 않습니다. 집회장에서는 "남성 혐오도 자중하자! 우리가 쟤들한테 빌미 준 것도 반성한다."는 얘기도 나왔어야 합니다. 최근 들어 남성을 겨냥한 몰카가 늘어나고 있다는데, 그래 놓고 (몰카를 찍는) 일부 남자들을 비난해 봤자 말발이 서지 않습니다.

21세기 지구촌은 좋았던 진보계몽의 전통들이 사그라들고 도덕적 정치적으로 퇴행하는 움직임들이 널려 있습니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것도 수상쩍고,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타락한 언어'로 도배질되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지금 세상에 (일부든 대다수든) 남자만 타락한 것이 아니고 여자들도 적지않이 타락했다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동네는 10%만 타락했어. 너희는 50%가 타락했지? 그러니까 우리가 옳아..."하는 따위의 어불성설語不成說을 집어치워야 우리의 언로言路가 가까스로 열릴 것입니다.
  ((엊그제 방영이 끝난 '나의 아저씨'를 놓고 방영 초기에 마구 험담이 쏟아졌지요. 글깨나 쓴다는 문화비평가, 신문기자들이 페미니즘 대열에 상당수 가세했더랬는데 작품이 다 드러난 지금, 그 험담이 얼마나 허튼 '아무말 잔치'였는지 밝혀졌습니다. 대중문화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그들의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태그:#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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