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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아, 나 다른 일할까 봐."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큰일은 아닌데. 애가 아파. 아픈데 내가 출근을 해서 뭘 해줄 수가 없어."
"그렇구나. 많이 아파? 나도 일하기 싫어. 그렇지만 돈 벌려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일하고 싶은 것 있어?"
"아니, 아직 그렇지는 않고. 힘이 드네. 애는 A형 독감이래. 병원 갔다 왔어. 다음 주 수요일까지 학교도 못 간대. 이번주 주말에 애를 봐줄 사람이 없는데... 너 시간 되니?"
"응! 나 시간 괜찮아. 내가 내려가서 봐줄게. 걱정 마."
"담임 선생님한테 연락해봤는데, 같은 반 친구한테 옮았다고 하더라고. 진짜 고맙다. 조심히 내려와."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A형 독감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2일 누나가 사는 경북 구미로 내려갔습니다. 누나 아이들이 근처 부모님 집에 와 있었습니다. 집에서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항상 밝은 조카입니다. 아픈 아이인데 낯빛은 노랗고, 이마에는 쿨 패드를 붙였습니다. 눈은 아파서 울었는지 부어 있었습니다. 

"괜찮니? 많이 아팠지? 요즘 학교 가느라 많이 피곤했나 보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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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만져보니 아직도 뜨거웠습니다. 누나는 아이 둘을 제게 맡기고 출근을 했습니다. 누나는 근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꼭 1시간마다 온도를 재고, 38도가 넘으면 약을 먹이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골골거리는 조카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상태를 체크하고 좋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오후가 되어 결혼식을 갔던 어머니가 돌아왔습니다. 잠시 눈을 붙일까 싶어 방에 누워 있는데 어머니가 급히 저를 불렀습니다.

"훈아, 빨리 나와 봐. 얘 코피가 너무 많이 난다!"

거실로 나가보니 조카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피를 본 조카는 크게 놀랐는지 울기 시작했습니다.

"삼촌, 코에서 피가 자꾸 나와. 어떡해."
"괜찮아, 괜찮아. 나으려고 그런 거야. 삼촌이 휴지로 코 막아줄게. 걱정하지 마. 조금만 있으면 피 멈출 거야."

휴지로 코를 막고 지압을 해주는 동안 조카는 제 손을 잡고 놓지를 않더군요. 쉽사리 코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휴지를 세 번 정도 바꾸고 나서야 멈췄습니다. 피가 멈추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저도 긴장이 풀렸습니다. 일을 마치고 누나가 돌아왔습니다.

"코피 났다며? 어떡해! 괜찮니?"

누나는 조카를 꼬옥 안아주고, 그래도 열이 내려서 다행이라며 위로했습니다. "애들을 봐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누나는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어머니와 둘이 저녁을 먹으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얘가 아픈 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응? 무슨 스트레스? 요즘 초등학교 적응하느라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래?"
"그것도 그렇지만... 애가 아프다고 했던 그날 네 누나가 애를 데리러 학교를 갔는데 눈이 퉁퉁 부어서 나왔다고 하더라.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오줌을 많이 참았다고. 잠이 쏟아져서 쉬는 시간에 엎드려서 잤는데 눈 떠 보니 수업이 시작되었대. 오줌이 마려워서 선생님한테 화장실 가고 싶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뭐 했냐고 안 보내줬다고 하더라. 제 딴에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어. 오줌 안 싼 게 다행이지. 그리고 나서 집에 와서는 끙끙 앓기 시작했다."

얼마 전 뉴스에도 화장실 가고 싶다던 학생을 선생님이 보내주지 않아 결국 교실에서 오줌을 쌌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 학생은 얼마나 창피하고, 오줌을 참느라 힘들었을까요. 더군다나 조카는 초등학교 1학년인데... 만약에 오줌이라도 쌌으면 아이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되었을 것입니다.

 선택권은 선생님에게만 있는 걸까?
 선택권은 선생님에게만 있는 걸까?
ⓒ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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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서 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 내가 무슨 자격으로 글을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들도 가만히 있는데 말이죠. 아동 권리 옹호 기관에 있는 지인이 생각났습니다. 이 일은 아동의 권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고 제3자의 시각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어떤지, 이 일을 어떻게 푸는 것이 현명한지 물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입장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한 아이를 화장실에 보내면 너도 나도 화장실 보내달라고 그런다고 하더라.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기가 힘들대. 그리고 원칙이 있잖아.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을 가거나 하고, 수업 시간에는 공부를 한다. 이런 원칙을 어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 그리고 오줌을 얼마나 참았는지, 오줌을 참은 것 때문에 애가 아픈 건지 확실히 알 수 없잖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
"아니, 애들이 오줌 마렵다는데 보내주는 게 어려워? 한 아이를 보냈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도 막 간다고 하는 건 아니잖아. 원칙이 사람보다 중요해? 얘는 초등학교 1학년이야. 몸이 아픈 아이였다고. 그만 이야기하자. 끊어."

지인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지만 전 섭섭했습니다.

'네 가족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원칙? 누구를 위한 원칙인데? 융통성도 있어야지.'

이런 좁은 생각도 들었지요. 한두 시간이 흐르자 흥분은 가라 앉았습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한 명의 선생님이 이십여 명의 아이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옳은 걸까?' 

지난 번 제가 쓴 '합죽이가 됩시다, 합'이라는 옳지 못한 표현을 쓰는 선생님에 대한 기사에 달린 네티즌의 댓글이 생각났습니다.

[관련기사 : "합죽이가 됩시다" 선생님, 이 말의 뜻을 아시나요?]

"기자는 조카 5명이라도 조용히 시켜 봤나... 500명, 1000명 조용히 시키는 방법이나 알고서 그러는지.. 너무 확대 해석으로. 다 싸잡아 나쁜 사람 만드는 듯..."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좋은 방법은 무엇일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누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나, 애는 좀 어때? 괜찮아? 엄마한테 들었어. 사실이야?"
"응... 애는 괜찮아졌는데, 이번에는 둘째가 독감에 걸렸어. 열이 팔팔 끓어. 큰일이야. 처음 아팠던 날, 학교에 데리러 갔는데 눈이 퉁퉁 부어 있더라고.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쉬는 시간에 잠들었는데 깨니까 수업 시작했었나 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선생님한테 말했는데, 쉬는 시간에 뭐 했냐고 하면서 안 보내줬다고 하더라고."
"아... 그게 진짜였구나. 아... 정말 어이가 없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지. 왜 우리 애 화장실 안 보내주셨냐고, 이렇게 물어보려다가 괜히 애한테 안 좋은 영향 끼칠까 봐... 혹시 오늘 우리 애 무슨 일 없었냐고 돌려서 물어봤어.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더 안 묻고 애가 아파서 내일 학교를 못 갈 것 같다고 얘기하고 끊었지."

"와... 진짜... 화나네."
"그치? 그런데 어떡하겠어, 내가. 오줌 안 싼 게 다행이지. 같은 반 친구 엄마한테 들었는데 자기 딸은 바지에 오줌을 쌌었대. 정말 속상했지만 담임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잘 봐달라고 그랬대. 그러면서 나보고도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보라고 했는데... 난 잘 모르겠어. 애한테 계속 물어보기도 좀 그래. 얘는 선생님 좋아하거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누나가 왜 일을 그만두고 싶은지, 왜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다른 애들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의 애를 신경 쓰지 못하는 현실이 많이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주말이 끝나고 짐을 챙겨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내내 이 일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무엇을 위해 원칙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갈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그 원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함께 하면 더 좋은 방법을 만들 수 있다
 함께 하면 더 좋은 방법을 만들 수 있다
ⓒ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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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 냄새나는 글을 쓰겠습니다. http://blog.naver.com/doctor29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