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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OO대 정치학부에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가 주최한 '대입제도 개편 학부모단체 및 시민단체 협의회' 2부 토론 시간에 튀어나온 답변이었다.

수능 50% 확대를 주장하는 학부모 단체 대표와 전국혁신학교졸업생연대(이하 졸업생 연대) 단체의 대표로 나온 대학생 간에 논박이 벌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가장 공정한 입시제도가 정시 수능선발이라며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수능 정시 전형의 비율을 50% 이상을 보장하라"는 한 학부모 단체의 주장이 1부 단체별 입장 발표에 이어 2부 토론 시간에도 강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졸업생 연대 대표가 정시가 확대되면 "고등학교 교실은 EBS문제집 풀이로 고통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며 수시 선발제도인 "학생부 종합 전형이 더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우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전형 방법"이라며 논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부모 단체 대표가 논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학생은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저런 질문이 공적인 자리에서 적절한지 기자가 당황스러워하는 순간 그만 답변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1부 단체별 입장 발표 시간에 그 대학생은 자신을 군산시에 있는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고 소개한 바 있었다.

유수한 대학과 유수한 학부의 이름을 졸업생 연대 대표가 씩씩하게 말하자, 일순간 장내는 조용해졌다. 학교 이름을 질문하였던 그 단체의 대표는 더 이상 논박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논쟁을 벌이다가 열세라고 느끼게 되면 '나이라는 권위'에 호소하기 위해 "당신! 도대체 몇 살이야?"라고 묻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묻는 사람보다 더 많은 나이의 대답이 돌아오면 그 권위에 눌러 더 이상을 논쟁을 하지 않는 경우와 비슷했다. 19개 단체가 모인 협의회에서 유수한 대학과 학부의 이름이 나오자 그 학교의 권위에 압도당한 것일까? 잠시 뒤 협의회 종료 시간이 늦어지는 상황을 걱정하던 사회자의 마무리 발언으로 협의회를 마쳤다.

10일에 개최된 호남·제주권 국민 제안 열린 마당에서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교육부 이송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광주교육청
▲ 10일개최된 호남·제주권 국민 제안 열린 마당 10일에 개최된 호남·제주권 국민 제안 열린 마당에서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교육부 이송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광주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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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

교육부는 한달 전인 4월 11일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교육부는 대입 제도 개편을 유예하면서 입시제도 전반을 숙의와 공론화를 거쳐 결정하고, 4차에 걸친 대입정책포럼, 전문가 자문,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 등을 수렴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교육회의에 최종적 결정을 바라는 이송안을 보냈다.

교육부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해 국가교육회의가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제안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 선발 방법: 수능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 간의 적정 비율
◯ 선발 시기: 대학입시의 단순화 및 수업의 정상화를 위한 수시‧정시 통합 여부
◯ 수능 평가방법: 절대평가 전환, 상대평가 유지, 수능 원점수제' 반영 여부


그 밖에도 다음 사항에 대해 필요한 경우 결정하거나 의견을 제시해주기를 교육부는 요청했다.

◯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제고: 자기소개서 및 교사추천서 폐지 등 전형서류 개선, 대입 평가기준 및 선발결과 공개
◯ 2015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 과목 구조
◯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대학별고사, 수능 EBS 연계율
◯ 창의적 사고력과 표현력을 평가하기 위한 논‧서술형 수능 도입
◯ 고교학점제 기반의 성취평가제 및 학생부 전형 등 '중‧장기 대학입시 방향


위의 요청 사항을 받아 국가교육회의가 대입제도 개편안을 제안하면 교육부가 이를 반영하여고교 체제 개편, 고교학점제, 내신성취평가제 등을 포함한 교육개혁 종합방안을 8월 말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입제도 개편 국민제안 열린마당' 개최

이에 따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는 지난 3일 충남대에서 '대입제도 개편 국민제안 열린마당(중부권)'을 개최하여, 학생, 학부모, 교원, 시민단체 등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10일에는 호남·제주권에서 열린 국민제안 열린마당을 개최하였고, 14일에는 영남권(부산 벡스코 컨벤션홀), 17일 수도권(서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런 진행 과정 중에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가 주최한 '대입제도 개편 학부모단체 및 시민단체 협의회'가 지난 11일 급하게 열렸다. 학부모단체 및 시민단체 협의회의 원래 계획안에는 장소가 '한국장학재단 연수실'로 적혀있었으나, 참석자들에게는 집결장소가 정부서울청사 후문 안내동이라는 문자가 발송되었다.

11일 당일 오후 1시 집결 장소에서 인식표를 담당 직원에서 받고 그의 안내에 따라 세 번의 검문대를 통과하여 1907호 대회의실에 도착하였다. 대입제도개편 관련 협의회 서명부에 참석 여부와 개인정보의 제공 및 활용 동의서에 서명하여야 했다. 회의 참석 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은행 계좌번호를 요구하는 것은 이해가 되었으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바로 서명하고 몇몇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교육청이나 학교에서도 자그마한 행사를 하더라도 모임을 표시하는 현수막을 거는데 이 협의회는 현수막 없었다. 협의회 자료집은 없었고 각 참가단체가 그 전날 제출한 단체의 의견서를 그대로 출력하여 19부의 단체별 의견서를 회의 중간 중간에 배부 받았다.

협의회 당일 받은 협의회 일정표와 협의회실 출입을 위한 출입확인증
▲ 협의회 일정표와 출입확인증 협의회 당일 받은 협의회 일정표와 협의회실 출입을 위한 출입확인증
ⓒ 김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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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장은 인사말를 통해 "교육이 계륵이 되어 가고 있다. 대입 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현재와 미래가 대립하고 있는 형편이다"라며 "현 입시제도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해법을 여러 교육 관련 시민단체와 학부모 단체로부터 듣고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난 3일 중부권 국민제안 열린마당과 10일에는 호남·제주권 열린마당 개최 결과로 주요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라고 논의 과정을 희망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협의회 과정 내내 협의회 테이블 뒷줄에서 19개 단체의 의견서를 보면서 모든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협의회의 1부에서는19개 단체의 입장은 단체명을 기준으로 가나다 순으로 발표하였다. 각 단체당 의견 발표시간은 5분씩 배정되었고 타이머를 보면서 엄격하게 시간을 통제하였다. 대부분 5분 이내에 발표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던지 급하게 결론을 내느라 각 단체의 세세한 의견을 듣지 못하고 배부된 의견서를 참조할 수 밖에 없었다. 기자도 19개 단체 중 한 개의 단체의 대표로 참석하였는데 5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인지 처음으로 느낄 정도였다. 의견에 대한 배경 설명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허둥지둥 시간을 마치고야 말았다.

19개의 단체 중 학부모 관련 단체는 9개, 교육관련 시민단체는 10개였다. 19개의 단체의 의견들은 크게 네 부류로 분류해 볼 수 있었다.

첫째, 전면 재검토파. 이송안에 따른 국가교육회의 숙의와 공론화 과정, 즉 이번 '대입전형제도 개편 프로세스-국민참여형 공론절차'는 '국민선호도' 조사로 끝날 수 있어 대입전형처럼 수많은 요소가 얽혀있고 서로 충돌하는 문제를 명쾌히 정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렇게 처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을 예상하면서, 공론화 과정을 중지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세워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국가교육이념과 목적에 알맞게 평가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논의를 중지하고 교육기본법에 충실한 대입제도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교육을 바꾸는 사람'과 '학교시민교육전국네트워크'가 이런 의견을 내었다.

둘째, 중등교육 정상화파. 대입제도 개혁방안은 입시중심교육으로부터 탈피하여 중등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이다. 초중등교육을 정상화하여 교육이념 달성에 충실한 대입제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학입학자격고사 실시, 수능절대평가와 학생부 전형비율확대, 고교평준화 체제 공고화를 통해 입시 지옥이 낳고 있는 초중등교육의 황폐화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졸업생연대',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정의교육시민연합',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교육디자인네트워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인간교육실현 학부모 모임', '참교육학부모회', '어린이책연대' 등이 이런 입장이었다.

셋째. 민주시민교육파. 전면 재검토파와 중등교육 정상화파와도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초·중등교육 정상화 방안으로 학교시민교육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대입제도를 개편하려는 목적이나 목표가 정확하지 않고, 청소년들이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는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시민성을 기르는 교육, 기본소양교육으로서의 보편교육, 비판적 사고력과 협력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을 강조하면서 초·중등교육은 민주시민교육에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대입제도 개선 방향은 중등교육 정상화파와 비슷하다. '징검다리교육공동체', '흥사단교육운동본부', '전국혁신학교학부모네트워크', '학교시민교육전국네트워크'가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넷째, 정시확대파. 이들은 2019학년도에 80%에 육박하는 압도적 비율의 수시 위주의 입시 경향은 입시의 구조적 모순을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시 전형 비율을 최소 50% 보장해야 하며, 절대평가는 결사 반대, 수행평가는 폐지하거나 비중을 대푹 축소, 수능최저학력기준의 유지, 학생부 종합 전형 비율을 대학별로 10% 이내로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좋은학교 바른학부모회', '정시확대추진 전국학부모회'가 이런 의견을 내었다.

협의회의 1부에서는 9개 단체의 의견을 듣고 10분의 휴식시간을 보냈다. 또 나머지 10개 단체의 의견을 들을 뒤 다시 10분간의 휴식 시간을 진행하고 2부 토론 시간을 시작하였다.

협의회 참가한 교육관련 시민단체(10개)들의 입장문 제목
▲ 협의회 참가교육관련시민단체들 입장문 제목 협의회 참가한 교육관련 시민단체(10개)들의 입장문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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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회 참가한 학부모 단체(8개)들의 입장문 제목 모습.  어린이책연대 입장문을 받지 못하여 이 사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
▲ 협의회참가학부모 단체의 입장문제목 협의회 참가한 학부모 단체(8개)들의 입장문 제목 모습. 어린이책연대 입장문을 받지 못하여 이 사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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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의견 발표 시간이 두 시간 이상을 초과하여 토론은 짧은 시간에 마쳐야 했다. 논의하거나 주장하는 바가 너무 많아 가닥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쟁점은 정시 비중을 '교육부가 확대해야 할 것이냐', '대학의 자율에 맡길 것이냐'로 좁혀졌다. 1부 단체 의견 발표에서 정시 전형 비율을 최소 50%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단체의 대표가 정시 전형 이외의 학생부 전형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을 바꾸는 사람'의 이찬승 대표는 수능 시험 제도가 공정하다, 공정하지 않다고 표현할 수 없는 문제라고 논박하였다. 수능은 객관적인 시험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가지고 공정성 여부를 따질 수 없는 문제라고 비판하면서 공정성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고루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생연대 대표는 다시 한번 수능의 폐해를 언급하면서 "수능 정시 선발 비율 30% 때문에 학교의 모든 교육활동이 객관식 5지 선다형의 폐해에 발목이 잡혀있다"과 끈질기게 반박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한 학부모 단체 대표가 "학생은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네, OO대 정치학부에 다니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이 나온 것이다.

토론회를 마친 뒤 몇몇 지인들과 차를 나누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해야 하는가?'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숙의 과정을 거쳐 찬성·반대의 비율을 따져 공론을 결정했기에 그나마 결론에 도달하기 쉬웠고, 공론화 위원회 471명이라는 결정 주체가 있었다는 점에서 승복하기 쉬웠다.

그러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는 결정해야 할 문제가 7가지 이상이며 공론화 위원회라는 결정 주체가 없기 때문에 결정 내용의 반대편에서는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향후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결국 장기적 계획을 갖고 교육부가 전문가 그룹을 통해 결정을 하되,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제도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전국사회교사모임 사무국장 및 고문, 학교시민교육전국네트워크 고문입니다.
시민단체에도 활동하기 좋아하여 현재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태그:#교육부, #국가교육회의, #대학입시제도, #학교시민교육전국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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