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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중항쟁은 모두가 함께 사는 대동세상을 추구했다. 사진은 5·18민주묘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5·18광주민중항쟁은 모두가 함께 사는 대동세상을 추구했다. 사진은 5·18민주묘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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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38주년, 기념행사 일정도 나왔다. 17일 전야제 때 1980년 5월 당시 광주의 모습을 항쟁 현장인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재현한다. 유동사거리에서 옛 도청 앞까지 민주대행진도 예정돼 있다.

때맞춰, 광주 운정동 5.18 민주묘지로 가는 도로 양쪽으로 이팝나무 꽃도 활짝 피었다. '영원한 사랑'을 꽃말로 지닌 꽃이다. 원산지가 대한민국, 우리의 향토 수종이다. 5월 광주의 상징이 된 이팝나무 꽃이다.

이팝나무 꽃이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과 정의를 외치다 숨진 5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 같다. 1980년 당시 광주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누면서도 결코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세상을 부르짖었다. 이팝나무 꽃이 5월 광주와 민주묘지를 상징하는 꽃으로, 5월 영령을 추모하는 꽃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연유이지 않을까 싶다.

5·18민주묘지로 가는 도로변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 이팝나무 하얀 꽃이 5월 영령들을 추모하는 것 같다.
 5·18민주묘지로 가는 도로변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 이팝나무 하얀 꽃이 5월 영령들을 추모하는 것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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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이팝나무 꽃 사이로 5·18광주민중항쟁 제38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활짝 핀 이팝나무 꽃 사이로 5·18광주민중항쟁 제38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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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꽃은 광주-담양 간 국도에서 5.18묘지를 거쳐 옛 망월묘역까지 3㎞의 도로변 양쪽에 활짝 피었다. 도로변은 물론 주택가 골목까지도 이팝나무 꽃이 하얗게 무리지어 피어 있다. 밤새 하얀 눈이라도 내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얀 눈이 가로수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 같다.

이팝나무 하얀 꽃 덕분에 거리가 밝아지고, 하늘빛마저도 환해진 느낌을 준다. 이 도로를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주며, 발걸음까지 가볍게 해준다. 낮에도 아름답고, 조명을 받는 밤에는 더욱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하얀 이팝나무 꽃. 꽃잎 하나하나가 한 톨의 쌀을 닮았다. 이팝나무를 쌀나무, 쌀밥나무로 부르는 이유다.
 하얀 이팝나무 꽃. 꽃잎 하나하나가 한 톨의 쌀을 닮았다. 이팝나무를 쌀나무, 쌀밥나무로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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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항쟁은 주먹밥을 나누면서 대동세상을 추구했다. 광주 5·18민주묘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5월 항쟁은 주먹밥을 나누면서 대동세상을 추구했다. 광주 5·18민주묘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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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이 녹아든 꽃

이팝나무는 꽃의 생김새가 쌀과 비슷하게 생겼다. 꽃이 쌀밥처럼 생겼다고 '쌀나무' '쌀밥나무'로 불린다. 꽃잎을 자세히 보면 가느다랗게 네 갈래로 나뉘어 있다. 꽃잎 하나하나는 뜸이 잘 든 하얀 밥알처럼 생겼다. 영락없이 쌀이고 쌀밥이다. 이팝나무 꽃이 오래 전, 배고픈 시절 보릿고개를 떠올려준다.

우리 선조들은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듬성듬성 피거나 만개하지 않으면 농사철에 가뭄이나 흉년이 찾아올까 걱정했다. 선조들이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기를 바랐던 것은 풍년을 비는 마음이었다. 풍년이 들어 배를 곯는 이웃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을 이팝나무를 통해 빌었던 것이다. 이팝나무 꽃이 5.18민중항쟁이 추구했던 대동세상의 의미와도 서로 통하는 이유다.

이팝나무에 활짝 핀 하얀 꽃. 밤새 하얀 눈이라도 내린 것처럼 나뭇가지에 수북히 내려앉아 있다.
 이팝나무에 활짝 핀 하얀 꽃. 밤새 하얀 눈이라도 내린 것처럼 나뭇가지에 수북히 내려앉아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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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묘지로 가는 길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 5월 영령을 추모하듯, 줄지어 피어 있다.
 5·18민주묘지로 가는 길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 5월 영령을 추모하듯, 줄지어 피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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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이름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도 전해진다. 모두 쌀과 관련돼 있다. 식물은 수분이 적절히 공급됐을 때 꽃을 잘 피우기 마련이다. 그때가 못자리 철이다. 수리시설이 변변치 못했던 시절,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 것으로 점쳤다. 물이 풍족해서 꽃이 만개했다고 본 것이다. 모내기철인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핀다고 '이팝나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팝나무의 이름이 '이밥나무'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다. 옛날 쌀밥은 왕족이나 양반들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한 마디로 이씨(李氏)들의 밥이었다. 벼슬을 해야만 이씨 왕이 내려주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쌀밥을 '이(李)밥'이라 불렀다. '이밥나무'가 변해서 '이팝나무'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팝나무 꽃 무더기. 하얗게 피어 아름답지만, 꽃에 얽혀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너무나 애틋하다.
 이팝나무 꽃 무더기. 하얗게 피어 아름답지만, 꽃에 얽혀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너무나 애틋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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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묘지로 가는 길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 올해 38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중간중간에 내걸려 있다.
 5·18민주묘지로 가는 길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 올해 38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중간중간에 내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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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시어머니 이야기도 내려온다. 꽃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착한 며느리와 마음씨 고약한 시어머니 이야기다.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한 며느리가 살았는데, 하루는 며느리가 집안의 큰 제사를 맞아 쌀밥을 짓게 되었다. 모처럼 쌀밥을 짓게 된 며느리는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밥을 잘못 지어 시어머니한테 야단을 맞을까 봐.

마음을 졸이던 며느리는 밥이 다 될 때쯤, 솥뚜껑을 열고 주걱에 밥알 몇 개를 떠서 씹어 보았다. 뜸이 제대로 들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크게 야단쳤다. 자초지종을 설명할 겨를도 없이 야단을 맞은 며느리는 너무나 억울했다.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마을사람들이 며느리의 시신을 거둬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줬다. 이듬해 봄, 그 며느리의 무덤에서 나무 한 그루가 올라와 자랐다. 싹을 틔우더니, 하얀 꽃을 피웠다. 한두 송이가 아닌, 무더기로 꽃을 피웠다. 그 꽃의 생김새가 이밥(쌀밥)을 닮았다는, 쌀밥에 맺힌 한으로 죽은 며느리의 넋이 변해서 핀 꽃이라는 얘기다.

가슴 아픈 사연을 많이 간직한 이팝나무 꽃이다. 들녘이 못자리 준비로 분주한 요즘이다. 진즉 모를 심은 조생종 벼논도 있다. 올 가을에는 우리 농민들이 일한 만큼 보람을 찾았으면, 피땀 흘려 농사지은 벼를 쌓아놓고 절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풍성한 수확 앞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농민들의 얼굴을, 이팝나무 꽃 그늘에서 그려본다.

이팝나무 꽃길을 따라가서 만나는 옛 망월묘역. 민주화를 외치다 쓰러진 열사들이 잠들어 있다.
 이팝나무 꽃길을 따라가서 만나는 옛 망월묘역. 민주화를 외치다 쓰러진 열사들이 잠들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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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팝나무, #이팝나무 꽃, #쌀나무, #5월영령, #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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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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