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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문재인 정부가 세번째 금융감독원장으로 윤석헌 서울대 교수를 내정했다.윤 교수는 금융분야 '전문성'과 '개혁성'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동안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분리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고 한국의 금융산업이 낙후된 원인이 재벌에 있다며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진보 성향'의 원로학자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그가 금융판 적폐청산 기구인 금융혁신행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것도 정부가 그의 '개혁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윤 원장 내정에 대해 "재벌과 관료들, 늑대(김기식) 피하려다 호랑이(윤석헌) 만난 격"이라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금융혁신과 재벌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라고 분석했다.

윤 원장은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원장과 장실장은 경기고 선후배 사이로 각기 다른 시기에 한국금융학회장을 맡은 이력이 있다. 전문가들은 둘 다 현 정부의 핵심과제인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을 이끌어 갈 적임자로 평가하고 있다.

장하성 실장은 문재인 정부 실세로 알려져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현 정권의 핵심실세는 임·하·룡'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다름아닌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정의용 안보실장을 일컫는 말이다. 문 대통령이 부처의 자율성과 주인의식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소위 '인수위' 없이 급작스럽게 탄생한 정부인만큼 대통령의 철학을 꿰뚫고 있는 측근 참모들에게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내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이 인사를 발표하면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라는 속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내정자의 국회의원 시절 해외출장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이 있을 것이다. 주로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 늘 고민이다"

대통령이 직접 써 김의겸 대변인에게 전달했다는 이 글은 인사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즉, 개혁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과감한 외부발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말해 현 정부가 금융분야를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상황은 문재인 정부 초기 법무부 장관 임명때와 유사하다.

정부는 법무부장관 내정자로 '안경환 서울대 교수'를 발표했지만 안 내정자가 젊은 시절 부적절한 처사로 물러나자 박상기 연세대 교수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 때에도 언론에서는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났다'는 말이 자주 인용됐다.

흔히들 정부의 인사를 비판할 때 '코드 인사'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이 용어는 김기식 전 의원이 금감원장으로 내정됐을때도 등장했다. 정부에서 코드가 유사한 사람들만 중용한다는 것이다. 경제분야 핵심요직에 참여연대 출신이 포진한 것도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내정자. 정치권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참여연대 3인방'으로 부른다. 재벌개혁을 강조하는 참여연대 출신이 문재인 정부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을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전형적인 '코드 인사'라는 말이다.

사실 '코드 인사'라는 말은 어느 정부든 자유로울수가 없다. 한마디로 언론이 짜놓은 프레임에 불과한 것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것은 대통령이 가진 철학과 국정이념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국정에 담아낼수 있는 인사를 뽑아야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그런 행위를 '코드 인사'라는 프레임으로 가둬버린다. 한마디로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초기 주요 요직에 시민단체 출신이 포진했지만 '코드 인사'라는 언론의 프레임을 이기지 못해 집권 3년차에는 시민단체 출신이 사라졌다고 한다. 국정운영의 시작점인 '인사(人事)'에서부터 '개혁'보다는 '무난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는 아직 '개혁', '적폐청산'을 우선하는 모양새다. 개혁적인 인사가 언론과 보수진영의 공격으로부터 낙마해도 더 강한 호랑이를 데려오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잠시 '문재인 정부 신년 기자회견' 때로 돌아가보자.당시 처음 시도된 자유질의 방식으로 많은 기자들이 손을 들어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중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대목이 있는데, 전자신문 기자의 질의였다.

기자는 "오늘 보라색 옷을 입고 나온 것이 '신의 한수'였다"는 말과 함께 '청와대 2기 내각 구상과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에 대해 물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 방향에 대해 장하성 정책실장이 추가 설명할만큼 세부적으로 답변했지만 내각구상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그 후 기자가 재차 질문을 던졌고 사회를 진행하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본인도 관심있는 질문'이라며 거들었지만, 대통령의 답변은 듣는 기자들이 민망할 정도로 간단했다.

'질문 자체가 뜻밖'이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2기 내각에 대해 구상한 바가 전혀 없음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대통령의 철학과 비전을 잘 공유하는 '인사'와 계속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인사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원칙'과 '기준'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분명 참여정부 때의 경험도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다. 한동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문재인을 잘못봤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참여정부 당시 국정홍보비서관을 역임한 바 있는 노혜경 시인은 문 대통령에 대해 "자체로는 훌륭한 인격자이고 신사지만,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고 권력의지가 없고 더구나 정치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라 불안했고 때론 미워하기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과거에 사로잡힌 자신을 반성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비서실장'으로서 국민의 마음을 잘 읽고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시민 작가도 문 대통령을 다 알지 못했다는 걸 고백하며 "대통령을 개에 비유하면 안 되지만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듯 그냥 물어버린다"고 말했다. "할까, 말까 하는 경우가 없다"며 "자기 권한을 확실히 행사하는 것이 진짜 마음에 든다"고 호평했다.

이쯤되면 문 대통령의 '코드 인사'가 오히려 감사해진다.

그의 코드 인사가 집권 1년 차 대통령 중 최고인 지지율(83%)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보수언론과 정치권의 '코드 인사' 비판에 걱정보다는 오히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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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사,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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