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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새로운 남북 평화시대를 예고했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12시간 동안 진행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다.

두 정상의 만남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어느 외신은 문재인 대통령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제자로 표현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2000년)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도출해 낸 장본인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손을 번쩍 들어보이고 있다(2000)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손을 번쩍 들어보이고 있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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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 나이에 제1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며 돌풍을 일으켰던 김대중(1924~2009), 그는 냉전 시대였던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는다. 미·중·일·러 4대국 보장에 의한 한반도 평화통일론이 그것이다. 그는 한반도에서 어느 한 나라가 지배적인 관계보다는 각 나라가 같이 한반도와 세계 균형 안정에 관여하는 것이 남북한 공동번영은 물론 4대국 이익에도 맞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고난의 세월을 딛고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1998년 2월 25일, 그 날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비전을 국민에게 설명하며, 남북관계는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정착에 토대를 두고 발전시켜나가겠다고 약속한다.

그 후 탄탄한 이론과 실현 가능성에 바탕을 둔 그의 '햇볕정책'은 국민과 세계 각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추진됐고, 고차원의 외교로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다.

한국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 그는 반세기가 넘도록 한반도를 지배했던 불신과 대결을 넘어 화해와 협력의 길을 다져왔다.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혼신을 다했으며 남북 관계가 평화롭게 지속하기를 염원하였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것은 김대중이 평생 바쳐온 정치적 신념이자 꿈이었다.

5월을 맞아 '김대중 생애 사진전'이 전북 군산에서 열린다.

 2015년 11월 군산에서 열린 김대중 생애 사진전
 2015년 11월 군산에서 열린 김대중 생애 사진전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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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은 <5월,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 김대중>이란 타이틀로 군산시 명산동 예깊미술관에서 개최된다(5월 10일~6월 30일). 개막식은 오는 10일(목요일) 오후 5시. 교복 차림의 10대 소년에서 정치에 입문한 청년기, 야당 의원 시절, 대통령 당선과 퇴임 후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그의 발자취가 담긴 사진 150여 점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는 예깊미술관(대표 임성용)이 주최하고 후광김대중마을(다음카페)이 주관한다. 또한, 사진 전시는 <평화의 사도 김대중> <아내이자 동지였던 이희호 여사> <군산 방문> <대구·부산지역 방문> <마지막 고향 방문> 등 다섯 개 테마로 꾸며진다.

군산 관련 사진도 50여 점 선보인다. 그중 1971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유세를 듣기 위해 청중이 구름처럼 운집한 군산공설운동장을 비롯해 1987년 대선 때 월명종합경기장, 그해(1987) 여름 중앙로에 내걸린 김대중 의장 사면복권 환영 현수막, 군산지역 시군의원들과 변산 해수욕장 물놀이(1992), 구 역전광장 지방선거 지원 유세(1995) 사진 등이 시선을 끈다.

여성운동 단체 리더로, 탄압받는 야당 정치인 김대중의 아내로, 퍼스트레이디로 살아온 이희호(1922~) 여사 사진도 50여 점 전시된다. 이 여사는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회, 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의 총무, 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가족법 개정, 축첩 정치인 반대 등 여성의 권익 신장에 앞장서왔다. 특히 아이들과 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 겪는 빈곤과 인권 문제는 그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임 대표는 "이번 전시회는 김대중·이희호 관련 영상물과 추억의 명연설 녹음테이프, 유품(감옥에서 가족에게 보낸 옥중편지 사본) 등 자료를 다양하게 준비했다"고 소개한다. 야당 의원 시절인 1969년 7월 19일 효창운동장에서 있었던 시국 연설을 비롯해 '김대중 생애 영상',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2009년 6월) 인터뷰, 이희호 여사 평양방문 기록 영상물(2015년 8월) 등을 관련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미술관은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 작품을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전직 대통령 사진전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임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상가이자 서적을 수십 권 집필한 작가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그중에는 외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서적도 있고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베스트셀러였다"고 강조한다.

"김대중은 '거목', 그러나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아"

 김대중 이희호 문패 앞에선 임성용 대표)
 김대중 이희호 문패 앞에선 임성용 대표)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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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임성용 대표와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김대중(DJ)을 언제 처음 알았나?
"초등학교 때(70~80년대) 아버지를 통해 알았다. 군산 변두리에 살았는데 동네 아저씨들, 특히 새마을운동 단체 간부급들은 김대중을 선동자 혹은 빨갱이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최고 지도자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박정희는 독재자이고, 김대중은 선생님이라며 아무래도 김대중 선생이 대통령이 돼야 술자리에서 푸념도 맘대로 할 수 있고, 군산-장항 다리 공사도 처음 계획대로 이뤄진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렇게 사람들 입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접하다가 1997년인가 김대중-김종필 공동정부(일명 DJP 연합) 출범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에 있는 거구장이라는 식당에서 처음 뵈었다. 첫인상은 무척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 어딘가 엄숙하고 활력이 넘쳤으며, 카리스마도 느껴졌다. 특히 두루마기 한복 차림이 인상적이었다."

- DJ 사진전을 준비하게 된 계기는?
"큰 뜻은 없다. 왜곡되고 숨겨진 진실을 여럿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기획하게 되었다. (김대중) 그분은 도전과 좌절,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한마디로 한 시대의 '거목'이었다. 그럼에도 폄훼되거나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다. 지금도 '외국에 비자금 수천억을 숨겨놓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 자료를 한 점이라도 더 챙겨야겠다는 간절함에 동교동 김대중평화센터를 방문하여 관계자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대통령 시절 집무실과 김대중도서관을 돌아봤다."

 김대중도서관에 전시된 김대중 옥중 서신
 김대중도서관에 전시된 김대중 옥중 서신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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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선고를 받았던 1980년 군사재판 모습
 사형선고를 받았던 1980년 군사재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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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도서관을 돌아본 소감은?
"자택 대문에 나란히 내걸린 김대중·이희호 문패를 비롯해 옥중 편지, 노벨평화상 증서와 메달 등 유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특히 뉴욕타임스지 표지, 경의선 기공식, 매일 아침 오대양 육대주와 주요 수교국 위치를 확인하며 외교 정책을 구상했다는 세계지도 등을 보면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오래전 김대중 <옥중서신>을 감명 깊게 읽어서 그런가. 감옥에서 아내와 자식에게 보내려고 엽서에 깨알같이 적은 옥중 편지를 대하는 순간 전율이 느껴지면서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면서 김대중은 아내와 자식보다 나라를 더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의 그릇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군산에 자그만 'DJ 기념관' 만들고 싶어"

 1971년 대선 포스터를 카메라에 담는 임성용 대표
 1971년 대선 포스터를 카메라에 담는 임성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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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를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빨갱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의 이름 앞뒤에는 '선생님'을 비롯해 '평화의 사도', '동교동', '민주화의 상징', '인동초', '빨갱이'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다. 야당 정치인으로 탄압받을 때도 대통령 당선 후에도 자신만의 철학과 소신으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DJ는 화해와 용서, 진정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사형선고 후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감옥에서 쓴 편지에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항상 인내하고 적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자'고 당부한다. 사형이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용서하자'는 말이 나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 DJ의 업적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는?
"과오도 있었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일궈낸 업적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온 리더십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김대중 리더십'은 여덟 가지가 있는데 그중 ▲ '행동하는 양심'으로 표현되는 실천의 리더십 ▲'서생적 문제 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알려지는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리더십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자율과 책임의 리더십 등 세 가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사업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교훈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앞으로 계획이나 하고 싶은 사업은?
"광주광역시에는 김대중 컨벤션센터, 목포에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진즉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전북에는 기념 건축물이나 전시 공간이 없어 안타깝다. 기회가 되면 군산에도 김대중의 참모습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자그만 'DJ 기념관'을 만들어 어린이도 관람할 수 있는 문화역사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 그 꿈이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후광(後廣) 김대중은 누구?
김대중은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출신이다. 그는 태어난 마을 '후광(後廣)'을 평생 아호로 삼을 정도로 고향을 사랑하였다. 훗날 그는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과 파도, 물새, 푸른 바다위로 쏟아지는 햇살에서 꿈과 용기 그리고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고향에서 초등학교(4년제)를 졸업하고 목포로 유학, 목포상업학교(5년제)를 졸업한다.

상업학교 졸업 후 해운회사에 취업해 관리인으로 경영 수업을 쌓는다. 광복 후에는 청년실업가로 변신, 해운회사를 인수하여 경영하였고,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다. 1960년 민의원에 당선된 후 6·7·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하에서 네 번의 죽을 고비와 6년의 감옥 생활, 10년여의 해외 망명 및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였고,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최초로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듬해(1998) 2월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은 '금 모으기'를 통해 외환위기(IMF)를 앞당겨 극복한다. 여성 지위 향상과 한류열풍, 그리고 한국을 세계가 부러워하는 IT 강국으로 만든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냈다. 아시아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공로와 남북 평화(남북정상회담, 남북공동선언 등)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매거진군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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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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