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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결혼 후 처음 시댁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일이다.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밤잠을 줄이면서까지 온 집안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했단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 선택한 잔칫상 메뉴들은 고기와 해산물, 신선한 채소들을 총망라해 사진으로 봐도 군침이 돌았다.

안타깝게도 그 날, 친구는 시어머님께서 뭔가 마뜩찮아 하시는 느낌을 받았다. 대놓고 말씀하시진 않았으니 착각이길 바랐지만, 알고 보니 그 느낌이 맞았다고. 아직 어머님이 마냥 어려웠던 터라 뭔가 말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친구는 이런저런 걱정을 했는데, 그녀의 추정은 싹 다 틀렸다. 이유는 오직 밥과 김치 때문이었다.

친구는 음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다. 묵직한 찬이 많을 때는 밥을 적당히 담아내 남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그녀에겐 당연했다. 그건 손님이 정성들인 찬을 더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기도 했다. 그날, 김치는 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철이 지나 시어버린 김치는 손님상에 어울리지 않는 듯해 직접 만든 장아찌 몇 개로 대신했다.

시어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잔칫상에는 당연히 차고 넘치는 음식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밥 역시 마찬가지다. 밥공기가 차지도 않게 담긴 밥은 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영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김치가 없는 밥상이라니. 시어머님께 김치란 밥상 위의 수저와도 같은 존재였다.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한 국가 안에서 평생을 살았어도 이렇게나 다르다. 하물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 왔다면, 말해 무엇하랴.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고 단정 짓거나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해결책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기,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우리를 문화심리학으로 안내해 주는 반가운 책이 있다. 제목부터 유쾌하다.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책표지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책표지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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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아도 걱정할 것 하나 없다. 편안한 언어로 쉽게 풀어주는 저자의 수다(!)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책장은 끝나가고, 내 지식과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기분이 든다. 우선,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란 가장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가장 핵심적인 것까지 인간의 삶 전반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 봅시다. 여러분은 치약을 앞부터 짭니까, 뒤부터 짭니까? (중략) 이 '치약 논쟁'에서 옳고 그름이 있을까요? 문화란 이런 것입니다. 명확하게 한편이 옳거나 그르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서로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고집할 뿐입니다.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익숙한 것을 옳다고 믿고 있을 뿐임을 깨달아야 치약 논쟁을 끝낼 수 있습니다." (pp16-17)


1부는 '멀고도 낯선 세계 문화, 이방인의 마음'이다. 문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나아가 독자들로 하여금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타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바른 시각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모든 과정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신대륙 발견'이 품고 있는 불편한 진실, 익숙한 영화들 속의 오리엔탈리즘, 여러 종교가 특정고기를 금지하는 이유, 근친상간이라는 금기가 내포하는 것 등등. 읽다 보면 세계의 여러 문화를 진화론적 질서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잘못된 일인지, 우리가 서구 중심적인 사고에 얼마나 길들여져 왔는지 깨달을 수 있다.

'문화의 패턴'이라는 대목은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종종 외국의 문화나 사람들을 보고 겪어 만들어진 타인의 견해에 대해서, 딱 잘라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네가 만난 그 사람이 그런 거고, 네가 간 그 곳만 그런 거겠지. 섣부르게 일반화 하지 마."

과연 그럴까. 성급한 일반화엔 나 역시 반대한다. 그러나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직접 체험해 얻은 산 경험들이, 문화와는 거리가 먼 오직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일 뿐인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저자는 한 집단에 속한 모든 개인이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개인들은 분명 문화를 내재화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를 할 때는, 문화 내 개인 차가 아닌 문화 내 개인들이 공유하는 부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이것이 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의 패턴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의 패턴이란 다른 문화와 구분될 수 있는, 특정 구성원들에게 공유되는 유형"(p165)이라는 것. 물론 이것은 조심스러운 작업임을 분명히 한다.

"관건은 어떤 문화에 대한 기술이 그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했느냐는 것일 터입니다. 그 문화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과정을 패턴화했는지 제대로 분석했다면 그 설명은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감상이나 주관에 따라 다른 나라의 문화를 평가하고 또 쉽게 일반화하는 것은 많은 주의가 필요한 일입니다." (p168)


우리는 타문화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모두가 전문가는 아닐뿐더러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이 보고 겪은 모든 것을 경시할 필요는 없다고, 그 역시 타 문화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편견을 배제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노력은 필수다.

2부는 '가깝고도 낯선 문화, 한국인의 마음'이다. 저자는 의외로 자국민인 우리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한다. 이 장은 한국인으로서 궁금했고, 답하고 싶었던 문제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에겐 우리의 심리학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마음은 언어로 경험되고 언어는 마음을 만듭니다. 한국인의 말로 한국인의 마음을 연구하는 한국인 심리학은 한국 문화와 한국인 이해에 가장 적합한 도구인 것입니다." (p216)


2부 역시 수많은 주제들을 넘나든다. 왜 한국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지, 일본 귀신과 한국 귀신의 차이점, 개고기 논란이 품고 있는 진화론적 인식, 나라마다 다른 드라마 방영 시간 등등.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최근까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들을 상세히 다루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생존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했던 가슴 아픈 근현대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이제는 변화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단지 '살아간다는 것' 이상의 가치를 찾으려 했고 추구해 왔기에 인간 사회는 조금씩 나아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입니다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희생 위에서 나만 잘 살겠다는 생각은 결국 내 삶마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413)


나아가 넘쳐나는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을 향한 혐오"(p428)를 접어야 한다고, 이를 위해서는 상대를 나와 동등한 관계로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심리학을 알려주는 이 책은,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익숙해지면 결국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p435)


책은 기대를 훌쩍 뛰어 넘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사방팔방을 넘나드는 소재들은 유익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하다. "저, 재미있는 사람입니다"하는 저자의 너스레가 사실이어서 더욱 반갑다.

끝으로 굳이 문화심리학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가슴에 품어야 할 말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마지막으로, 어떤 문화에 사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입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아왔고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그들의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16)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 방구석 문화여행자를 위한 58가지 문화 패키지 여행

한민 지음, 부키(2018)


태그:#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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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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