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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어른이 이때쯤에는 봐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남 해남공공도서관 앞에 있는 서림공원에서 코를 씩씩 거리며 아이 하나가 내게 따졌다. 이미 또 다른 아이에게 팔이 잡힌 깐따(전병오)는 아이들에게 기분 좋은 연행을 당하고 있었다. 삐야(정수연)는 나와 깐따를 구하려다가 아이들에게 잡혔다. 이렇게 어른 세 명이 아이들의 삼엄한 감시 아래 나란히 바위에 걸터앉았다. 술래잡기 방식과 비슷한 '솔개' 놀이를 하고 있을 때의 풍경이었다.

지난 3월 11일 입학식날, 글고양이 친구들이 해남공공도서관을 찾았다.
 지난 3월 11일 입학식날, 글고양이 친구들이 해남공공도서관을 찾았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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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초등 저학년으로 구성됐다. 삐야, 깐따, 여우(김성훈)는 아이들이 부르는 세 선생님의 별칭이다. 마치 만화 캐릭터 같은 별칭이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편하다. 캐릭터는 아이들 말로 '성깔'이 있다. 삐야는 새침하게 아이들을 대하며 규율을 담당한다. 깐따는 우주에서 왔기 때문에 4차원 적사고로 지구별 아이들을 관찰하려다 아이들에게 핀잔을 당하기 일쑤다. 또한 여우는 어리숙하여 늘 아이들에게 세상을 사는 법에 대한 식견을 듣기를 좋아한다.

왜 교사는 능동적이어야 할까. 오히려 매주 토요일마다 이뤄지는 문화예술수업에서 우리는 철저히 게을러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효과는 놀라웠다. 아이들은 게으로고 속없는 어른들을 가르쳤다. 놀이를 하는 방법, 학교에서 유행하는 것, 학원을 다니며 있었던 경험, 자연의 꽃과 나무에 이름을 붙이고 왜 그런지 설명해 줬다.

3월 17일 지역에서 하는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캐릭터 가면을 만들고 있는 글고양이들
 3월 17일 지역에서 하는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캐릭터 가면을 만들고 있는 글고양이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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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만들고, 그리고 책을 읽히는 강제적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사계절을 느끼게 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사뿐사뿐 글고양이학교'을 만들었다. 핀란드 교육법, 하버드 식 강의법, 하브루타 독서법 등 시중에는 많은 교육법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교육법이라고 말을 했다. 과연 그럴까.

아이들이라는 전체의 틀로 획일적으로 다가가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스러웠다. 유나, 평강, 연우, 우린 등의 이름이 곧바로 아이들의 교과서가 됐다. 15명의 아이들이 하나의 교과서로, 오늘은 은혜를 배우는 시간, 오늘은 헌승이를 배우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꽃을 좋아하는 아이,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등 개별의 아이가 사고하는 텍스트에는 어떤 문구가 있을까.

모두 다른 아이들은 관계의 확장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 사용 설명서'라는 기록을 통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해지고 싶은 네 마음은 알지만, 때리거나, 놀리는 것으로 우리는 친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아이들은 수긍하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했다.

모든 아이들은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인사를 무조건 받는 것은 정당할까? 어른인 우리가 꼬마 시절에 인사는 언제 했었는가. 반가워야 했다. 차렷 열중셧, 그다음 출석번호별로 아이들을 호명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고양이라는 별칭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은 '냐옹'으로 인사하고, 아이들과 놀고 싶은 철 없는 어른들은 톤을 조절하며 '캬아옹' 하며 반갑게 아이들을 맞았다. 순서는 없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것이다. 

사방팔방, 도서관 2층 강의실 칠판에 이것저것 낙서를 하다가, 가위를 찾다가, 서림공원에서 뛰어 다니다가 아이들은 잊어버린 사실을 기억해 내기도 했다. 맞다, 지금 해야 할 것. 맞다, 놀리면 안 돼.

그러다보니, 선생이 하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너희들을 위한다는 명분도 사라졌다. 교사가 더 많이 안다는 권위에 맞추어 아이들에게 주문해야할 것들 또한 사라졌다. 몸만 가서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실제로 아이들과 놀았다. 숨찰 때까지 뛰어다니며 술래가 됐다. 숨이 차면 잠시 놀이를 그만두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구름을 보기도 하고, 가만히 그 구름을 떼어낸 모양을 가지고 닮은 동물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여우가 책을 펴서 소리 내어 읽었다. 바다의 섬처럼 퍼져있던 아이들이 여우의 소리를 듣고 몰려왔다. 그래도 관심 없어 하는 아이들은 있다. 하나둘 아이들이 가깝게 모이고 웅성거리고, 멀찍이 지켜보던 아이가 '뭐하는 것이지' 하며 호기심을 비춘다. 이때쯤에 깐따도 책을 펼쳤다. 여우에게 미처 책 이야기를 듣지 못한 아이는 깐따에게 간다. 깐따는 소리내어 읽어주는 대신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한다. 아이들은 서툰 발음으로 따박따박 글자를 읽었다. 그래도 관심이 없다고? 그래도 좋다. 삐야가 개별적으로 소외된 아이, 관심 없어 하는 아이 옆으로 가서 그 아이가 집중하고 있는 놀이를 함께 한다. 이 표현도 안 맞을 줄 모른다. 삐야는 그 놀이에 끼워달라고 졸랐다. 아이는 마지못해 귀찮은 어른 하나를 넉넉한 품에 안아줬다.

지난, 28일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책은, <점>이었다. 피터H. 레이놀즈의 동화였다. 그림에 소질 없다고 생각한 베티가 도화지에 실수로 찍은 점 하나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는 이야기다. 사실 아이들은 책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목소리를 바꿔가며 혼자 놀고 있는 여우와 깐따가 그저 재밌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는 여우의 등에 타서 책을 뚫어지게 보는 가하면, 깐따가 책장을 넘길 때 페이지를 못 넘기게 그 손을 잡기도 했다. 그것도 놀이였다.

지난 4월 21일, 삐야(정수연)은 곡우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지난 4월 21일, 삐야(정수연)은 곡우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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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세계에서 교실의 풍경을 상상했다. 어른들은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 왜 소통이 중요할까? 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할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야 할 것을 일러준다. 그러면서 하지마라는 목록은 굉장히 많아진다. 처음 아이들이 가장 많은 우리에게 한 질문이, 이거 가위로 잘라도 돼요? 글 말고 그림으로 그려도 돼요? 등, 무엇을 해도 되냐는 질문이었다.

어른의 허락이 아이들에게는 왜 중요할까. 왜 물어볼까.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에 왜 아이들은 검열하며 두려운 낯빛을 보이는 것일까.

유채꽃으로 만든 왕관
 유채꽃으로 만든 왕관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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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공원에서 아이 하나가 비명을 지른다. 개미가 자꾸 자기를 쫓아온다는 것이다. 개미가 왜 너를 쫓아온다고 생각해? 라고 묻기도 전에 아이의 얼굴은 찌푸리고, 툭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 기세였다.

"개미는 친해지고 싶은 거란다. 너 저번에 길에서 과자 먹었지. 여우가 본 것 같은데. 그 때 과자 땅에 흘렸지? 개미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몰라. 그때 개미는 배가 고팠거든. 배가 고팠던 개미에게 너는 은혜를 베풀어 준거야. 그런데 개미가 고맙다고 말하는 방식이 너가 받아들이기 힘든 방법이었나 보다. 그치? 개미한테 그럼 한번 말해볼래. 고마운데 나는 네가 내 몸을 올라와서 인사하는 것은 싫어, 알았지? 한번 해봐."
개미가 들리게 큰 소리로 그 말을 따라하는 아이. 교육이 됐다고 흐뭇해하고 있는데, 다른 아이 하나가 왕 개미 한 마리를 손으로 집어 왔다. 백퍼센트 완벽한 교육은 없었다. 그 아이는 손으로 집은 개미를 땅바닥에 던졌다. 반대로 '개미는 그것을 싫어해' 라고 말해줄려는 찰나 아이는 씩 웃더니, 달아났다. 자신을 잡아보라는 신호였다. 내가 그 아이를 쫓아 뛰자 아이들이 또 무리지어 달아난 아이를 잡기 위해 뛴다.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글고양이 친구인 이혜원양에게 기분좋은 연행을 당하는 깐따(전병오)
 글고양이 친구인 이혜원양에게 기분좋은 연행을 당하는 깐따(전병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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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10시면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 수업은 해남공공도서관 평생프로그램 교육중 하나로 방학을 제외한 1년여 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기존에 한명의 교사가 북적북적한 아이들을 통치하는 수업 방식이 아니었다.

이런 수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해남공공도서관의 박향미 관장과 이인경 사서의 행정적 지원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뭔가 다른 것, 좀 더 재밌는 것, 제도가 아닌 교육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것 등에 대해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의 큰 틀은 만남이었다. '자연과의 만남, 책과의 만남, 예술과의 만남' 이라는 큰 목록만 정했다. 놀이판을 다양하게 열어 놓고 아이들은 기분에 따라, 놀이를 선택하게 했다. 이 놀이에서 어른들은 규칙을 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정한 것이 있다면,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집에서 한다'였다. 여기 모인 순간 우리는 모두 글고양이들이고, 글고양이 놀이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해도 되냐는 말보다는 해보고 나서 어른에게 말 걸기를 시도했다.

고민이 생겼다. 아이들은 입으로만 말을 걸지 않았다. 표정으로, 때론 행동으로 말을 걸었다. 그것들을 어떻게 다음의 상상력으로 확장할지 절반은 어른의 몫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 교과서를 붙들고 중간고사를 준비해야할 선생님들의 머리싸움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 성적은 꽤 잘나올 것 같은 예감은 뭘까? 지난 3월 11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아이들의 키도 마음도 훌쩍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태그:#해남공공도서관, #사뿐사뿐글고양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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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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