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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 수는 9만9186명으로 전체 초·중·고생의 1.68%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취학 아동 역시 11만6000명으로 다문화 학생 수가 점차 증가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결혼 이주여성과 그 자녀에 대한 정책과 지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언어습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외모와 함께 차별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결혼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건강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막 지고 난 벚꽃들 사이로 연초록의 나뭇잎이 다투어 올라오는 4월 중순. 영호네 집이 있는 광주시 퇴촌면으로 향하는 길은 어느새 여름인가 싶을 만큼 싱그러웠다.

영호네 집은 연립주택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작은 마을에 있다. 진입로가 좁아서 반대쪽에서 공사차량이라도 들어오면 무조건 차를 빼거나 정리가 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연립주택 공사가 한창인 동네.

영호 엄마 꺼비다는 퇴촌에서 송정동에 위치한 '올프렌즈센터'(다문화, 이주노동자 쉼터)까지 버스로 30분 걸린다고 했지만 막상 차를 가지고 가보니 그리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지난겨울 그 모진 추위에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이렇게 먼 거리를 온 것인가. '나라면 추워서도 귀찮아서도 안 오고 싶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문을 두드렸다. 오래된 연립주택인 듯 현관문 장식이 여기저기 비틀려 깨져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지금 나는 공부 중이었어요.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 방문 선생님이 오셔서 공부하고 있어요."

신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추위였다. 여름이 느껴졌던 바깥 기온과는 확연히 다른 실내온도. 봄철 햇살 좋은 날은 외부보다 실내가 더 춥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발이 시릴 정도까지는 아닌데, 그의 집은 실내화를 신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발이 시려 왔다.

가방 속에 넣었던 겉옷을 얼른 꺼내 입고 자리에 앉으니 군데군데 시커멓게 곰팡이 핀 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내 난방을 하지 않아 결로 때문에 생긴 곰팡이지 싶었다.

"우리 집 춥지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살 만해요. 겨울이 다 지났잖아요. 4월부터는 그래도 따뜻해서 살 것 같아요."

꺼비다가 말을 흐리자 옆에 있던 방문 지도사 선생님이 설명을 더 해준다.

"네 선생님. 지금은 살 만한 거예요. 지난겨울 그 추운 날에도 보일러를 켜지 못했어요. 얼마나 추웠겠어요. 영호하고 둘이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살았어요. 난방비 낼 돈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날씨가 풀려서 정말 너무 좋아요. 돈이 없어서 난방도 못 하고 영호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제가 곁에서 보기에도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지난겨울 센터에서 만난 영호는 콧물과 미열을 달고 있었다. 그렇게 늘 시름시름 앓고 있다가도 밥을 주면 너무나 씩씩하게 혼자서 잘 먹는 아이. 다가가 안아주면 누구에게든 가슴에 와서 폭 안기는 아이. 작고 차가운 손, 힘없는 걸음걸이, 나이에 비해 가벼운 몸... 그때는 그저 약한 아이인가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추운 집에서 겨울을 지내며 잘 먹이지도 못했으니 늘 감기와 잔병치레를 달고 살았던 것이다.

엄마와 아들은 국적이 다르다

다문화센터를 찾은 영호와 꺼비다씨
 다문화센터를 찾은 영호와 꺼비다씨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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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엄마 꺼비다 라마(28)는 5년 전 스물세 살에 네팔에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이다. 시집올 때만 해도 잘 사는 나라, 좋은 나라 한국에 대한 꿈이 많았던 그녀였다.

"네팔에서 살기 힘들어요. 일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외국에서 결혼하려고 했어요. 한국 사람하고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들 이야기 들었어요. 결혼 회사에서 여러 사람 서류보고 영호아빠로 결정했어요. 네팔에서 본 서류에는 집도 있다고 했고 돈도 많다고 했어요. 회사도 다니고 나이도 많이 차이 나지 않고 다 좋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 거짓말이었어요. 영호아빠랑 스무 살 넘게 차이났어요. 그래도 처음엔 좋았어요. 잘 해주고 이뻐해주고... 그런데 영호 낳고 나서 달라졌어요."

당시 상황을 직접 보지 않은 나로서는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결혼해 오십 가까워 얻은 아들을 왜 싫어했을까. 부부 사이 문제는 두 사람 모두에게 물어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에게는 들을 길이 없어져 버렸다.

일 년 전 꺼비다와 영호를 남겨놓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말이 서툰 아내와의 어려운 소통이나 극심한 문화적 차이로부터 시작된 문제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꺼비다가 30분 넘게 버스를 타고 다문화센터를 방문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남편과 사별을 하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문밖을 나 온 꺼비다의 첫 마디는 '영호와 함께 살아야겠다' 였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영호아빠 형제들은 나보고 '이제 네팔 가겠네'라고 했지만 나는 안 간다고 했어요. 영호하고 한국에서 살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국말도 배우고 국적도 따야 돼요. 아직 국적이 없어요. 영호아빠 있을 때 하면 편하고 좋은데 그때 도와주지 않아서 못했어요. 남편 돌아가고 나서 집 명의가 영호 앞으로 되었어요. 은행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내 앞으로 할 수 없다고 했어요. 한국 국적이 없으면 그런 거래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런 거 다 몰랐어요. 귀화 시험을 준비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래도 영호를 위해서라도 빨리 국적을 따야겠다고 생각해요. 한국말, 한국 생활 많이 배워서 영호랑 한국에서 잘 살려고 해요."

"한국에서 영호랑 살고 싶어요"

남편과 사별한 후 잠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던 적이 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수급을 받게 되었지만 한두 달 만에 취소가 되어버렸다. 영호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월급 80만 원이 통장에 찍히는 순간 수급자에서 탈락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는 건 몰랐어요. 영호하고 살려면 돈이 필요했어요. 남편 돌아가고 남은 건 아무것도 없고 이 집뿐이거든요. 이 집도 6천만 원이 대출이고 4천만 원만 우리 돈이에요. 매달 15만 원 정도 이자 내야 하는데 그거 못 내고 있어요."

사별 후 꺼비다는 많이 아팠다. 남편이 생전에 있을 때도 우울증으로 여기저기 아파 병원 출입이 많았는데 사별 후에는 증상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온몸에 종기가 나고 계속 콧속과 입안이 헐더니 최근에는 유선염으로 인해 유방조직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피가 흐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본 영호는 또 얼마나 무섭고 겁이 났을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영호가 울면서 '엄마 그거 가슴 잘라버리자. 피나고 아프니까 칼로 잘라서 쓰레기통에 버리자' 그러는 거예요. 제발 잘라버리자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영호 보기에도 너무나 무섭고 아플 것 같았나 봐요."  

한두 달 일하고 받은 월급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했지만 그 뒤로는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남편 사망연금 29만 원과 영호 앞으로 나오는 한부모가정 자녀 지원금 12만 원으로 살아야 했다.

가끔 영호네 어려운 사정을 듣고 누군가가 쌀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김치와 김, 식용유 같은 것을 보내주기도 했다. 고맙고 감사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었다. 대출금에 대한 이자는 물론 이고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난방을 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귀화시험 준비를 위해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
 귀화시험 준비를 위해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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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작은 집으로 옮기려고 해요. 이자 내지 않는 집으로요. 센터 가까운 데로 이사 가면 교통비도 들지 않으니까 송정동으로 가고 싶어요. 그리고 일을 해서 영호랑 살아야지요. 지금은 몸이 아파서 여러 가지가 힘들어요. 영호도 아프고 저도 아파서 만날 병원 다니느라 다른 걸 못하거든요.

엄마가 외국인이고 만날 아프고 잘 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해요. 올해는 귀화시험을 봐서 국적도 꼭 따고 몸도 건강해져서 일자리도 구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냥 우리 영호 다른 한국 사람들 아이들처럼 잘 먹이고 공부 잘 시키고 싶어요. 네팔 안 가고 한국에서 영호랑 잘 살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할 거예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꺼비다씨는 아직 젊고 삶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곁에 영호가 있고 또 그녀의 자립을 돕는 선생님들이 있고 관심과 사랑을 보내는 마음 따뜻한 이웃들이 있다면 그녀가 한국엄마로 당당하게 뿌리내리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광주 올프렌즈센타는?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에 위치한 올프렌즈센터는 광주지역의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러시아, 벨라루스, 투르크메니스탄, 네팔 등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부모, 자녀를 위한 쉼터와 한글교실, 귀화시험 준비 등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혜원 시민기자는 광주 올프렌즈센터의 다문화팀장입니다.



태그:#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귀화시험, #올프렌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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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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