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양생태공원 생태교육센터
 고양생태공원 생태교육센터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생태교육센터 2층에서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건물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건물을 누가 잡아 흔드는 것처럼 울렸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저도 놀랐지만 수업 중이던 교육생들도 놀라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생태공원의 입구에 자리 잡은 생태교육센터는 고양생태공원과 잘 어울리면서 생태환경을 상징하기 위해 나무로 지은 2층 건물입니다. 1층에는 작은 도서관과 사무실, 화장실, 생태전시실 등이 있고, 2층에는 교육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깔끔했던 외관이 지은 지 5년이 지나면서 적당히 낡은 분위기로 변해 제법 고풍스러워졌습니다. 멀리서 보면 멋진 전원주택처럼 보입니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건물을 손봐야 되겠지만, 튼튼하게 지어서 쉽게 무너질 염려가 없다고 믿었는데 건물이 흔들리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진인가? 이 정도로 흔들리면 지진 강도가 제법 세다는 건데, 설마. 그런데 저 요란한 소리는 뭐지? 강의를 중단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강의를 듣던 교육생들은 계속 술렁거립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달라는 눈빛입니다.

창가로 가서 바깥을 내다보니 공원은 평소와 다른 게 없습니다. 생태교육센터 건물을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건물의 흔들림 역시 그치지 않았습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륵. 드르르르르륵. 나중에는 머릿속까지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소리가 건물 외벽을 두드리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 5분쯤 지난 뒤였습니다. 저런,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

오색딱따구리가 남긴 흔적
 오색딱따구리가 남긴 흔적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숲속의 타악기 연주가 오색딱따구리입니다. 우리 공원을 대표하는 깃대종인 오색딱따구리. 생태교육센터 외벽이 나무라서 둥지를 만들려고 벽을 쪼아대는 것이 분명합니다. 둥지를 지으려면 아무도 없는 밤에 몰래 할 것이지, 한낮에 뭐하는 짓이야. 생태수업을 방해하고 있잖아. 오색딱따구리에게 귀띔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건물의 제일 높은 곳에서 드러밍(Drumming 드럼을 치는 듯한 소리)을 하고 있으니 그저 멈춰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벽을 손으로 두드렸습니다. 그 울림이 퍼졌는지 잠시 흔들림이 멎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동안이었습니다. 1~2분 정도 지나자 소리가 다시 들리면서 강의실이 흔들렸습니다. 이번에는 부리에 더 힘을 줬는지 흔들림이 더 심해졌습니다. 소리도 더 커진 것 같았습니다. 소리와 울림이 적당해야지 참고 교육을 이어나갈 텐데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색딱따구리 선생님, 그만 좀 하시죠. 둥지는 저기 자작나무 숲에다 지으세요. 여기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번에는 더 힘껏, 더 오래 벽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소리와 흔들림이 멎었지만, 이번에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건물이 흔들리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오색딱따구리는 결국 위대한 연주를 멈췄습니다. 둥지를 지으려고 찾은 나무가 절대로 안전한 둥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벽 뚫기를 단념했을 것입니다.

교육을 끝내고 바깥으로 나와 생태교육센터 건물을 확인하니, 외벽 꼭대기 부분에 이미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구멍 크기가 제법 큰 것을 보니 딱따구리의 드러밍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건물에 없을 때부터 구멍을 뚫다가 경계심이 느슨해져 낮에 구멍 뚫기에 도전한 것 같습니다. 둥지를 완성할 때까지 몰랐다면 생태교육센터에 오색딱따구리가 살림을 차릴 뻔 했습니다.

오색딱따구리 수컷
 오색딱따구리 수컷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오색딱따구리는 고양생태공원의 깃대종입니다. 깃대종을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 공원을 대표하는 간판모델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공원에서 관찰되는 딱따구리는 전부 세 종류로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입니다. 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예쁘고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오색딱따구리를 깃대종으로 삼았습니다.

깃대종은 생태계에 있는 다양한 동식물 가운데 특별히 중요해 보호해야 하는 생물종을 의미합니다. 깃대종은 그 지역의 생태적, 지리적,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상징적인 동물이나 식물을 선정합니다. 우리 공원은 깃대종으로 오색딱따구리와 은방울꽃, 맹꽁이를 정했습니다. 이들은 고양생태공원의 생태시민 후보자 중에 자원봉사자들의 스티커 심사에 의해 당당하게 고양생태공원 깃대종으로 뽑힌 주인공들입니다.

오색딱따구리는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텃새로 개체수도 많은 편입니다. 희귀종이 아닌 자주 관찰할 수 있는 텃새를 우리 공원의 깃대종으로 삼은 것은 우리 공원이 이들에게 안전하면서 편안한 서식처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오색딱따구리를 깃대종으로 선정한 것은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오색딱따구리가 우리 생태교육센터에 집을 짓겠다고 요란을 떤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건물인데도 경계심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둥지를 틀어도 되는 안전한 지역으로 인식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공원이 이들에게 늘 안전하기만한 곳은 아닙니다. 우리 공원에서도 자연의 섭리인 '약육강식'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오색 딱따구리들의 천적이자 포식자가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고양생태공원의 자작나무 군락지
 고양생태공원의 자작나무 군락지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우리 공원에서 오색딱따구리가 가장 많이 관찰되는 지역은 자작나무 숲입니다. 오색딱따구리는 그곳 자작나무에 구멍을 뚫어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자작나무는 숲속의 가인이라는 별명처럼 하얗고 멋있지만, 추운 곳이 고향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적응이 쉽지 않은 수종입니다. 그래서 적응하지 못하고 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죽은 나무도 바로 베지 않고, 베어낼 때도 지상에서 1미터 정도를 남겨둡니다. 딱정벌레 등이 알을 낳는 장소로 이용하고, 새들은 이 벌레들을 먹기 위해 찾아들기 때문입니다. 공원모니터링을 할 때마다 그곳에서 자주 오색딱따구리를 관찰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거기에 사는 줄 알았더니, 건물에도 둥지를 만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생태교육센터 사건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오색딱따구리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에도 살고 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우리 공원에서 가장 고즈넉한 곳으로 명상하면서 걷기 좋은 길입니다. 특히 해질 무렵이 좋습니다. 그래서 자주 산책을 하러 갑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숲길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참 이상했습니다. 평소와 달리 왠지 분위기가 어수선했습니다.

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오색딱따구리 둥지 곁을 지나는데 오색딱따구리 부부가 안절부절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평소와 분위기가 달라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오색딱따구리들은 한창 새끼들을 키우느라 날이 갈수록 멋진 날개깃이 초라해져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새들은 새끼가 부화하면 하루에 150번 이상 먹이를 잡아 나릅니다. 그러다보면 제 몸을 돌볼 시간이 없어지니 날개가, 몸이 빛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 새들이 남루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부모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끼들은 조그만 입을 벌려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치기에 바쁘죠. 그렇게 고생해서 키워놓으면 보은은커녕 그냥 제 살길을 찾아 떠나버립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일 것입니다.

오색딱따구리는 안절부절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어수선하게 이 나무, 저 나무로 바쁘게 옮겨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경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나타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색딱따구리들이 저렇게 호들갑을 떨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일이 일어나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색딱따구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볼 수 없으니, 그들에게 무언가 위험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짐작만 하고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룩뱀
 누룩뱀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며칠 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오색딱따구리 둥지를 관찰하기 위해 설치한 이동 카메라를 확인한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룩뱀이 오색딱따구리 둥지를 습격한 것입니다.

누룩뱀은 나무를 잘 탑니다. 누룩뱀이 나무에 기어오르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먹잇감이 있기 때문이죠. 아마도 누룩뱀은 메타세쿼이아 나무에 오색딱따구리 보금자리가 있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입맛을 다시면서 그 둥지를 습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동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은 참으로 가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오색딱따구리 부부가 둥지를 비운 사이에 누룩뱀이 둥지를 습격했습니다. 누룩뱀은 순식간에 새끼 한 마리는 꿀꺽 삼키고, 또 한 마리는 입에 문 채 둥지를 빠져나오다가 마침 둥지로 돌아온 오색딱따구리 부부에게 딱 걸렸습니다.

무서운 침입자에 놀란 부모 새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누룩뱀을 공격했습니다. 힘들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새끼를 낳아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고생해서 키운 보람도 없이 새끼들이 누룩뱀의 먹이가 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무서운 것도 위험한 것도 생각하지 않고 누룩뱀의 머리와 몸통을 필사적으로 쪼아대는 오색딱따구리를 지켜보는 동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에 있는 오색딱따구리 집. 부부가 사이좋게 새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에 있는 오색딱따구리 집. 부부가 사이좋게 새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둥지에서 머리를 살짝 내민 오색딱따구리 새끼. 이때까지만 해도 평화로웠습니다.
 둥지에서 머리를 살짝 내민 오색딱따구리 새끼. 이때까지만 해도 평화로웠습니다.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오색딱따구리 둥지를 향해 슬금슬금 올라가는 누룩뱀.
 오색딱따구리 둥지를 향해 슬금슬금 올라가는 누룩뱀.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오색딱따구리 새끼를 잡아먹고 둥지를 나오는 누룩뱀. 목 부분이 불룩합니다. 새끼가 저 안에....
 오색딱따구리 새끼를 잡아먹고 둥지를 나오는 누룩뱀. 목 부분이 불룩합니다. 새끼가 저 안에....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누룩뱀은 새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입에 문 새끼 새를 놓지 않았습니다. 누룩뱀이 새끼를 놓아준다고 해도 이미 죽은 새끼 새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또 오색딱따구리들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목적을 이룬 누룩뱀은 잠시 멈칫거릴 뿐입니다. 무사히 나무 아래로 내려온 누룩뱀은 풀숲 사이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오색딱따구리 부부는 한꺼번에 새끼들을 잃었습니다. 동영상 화면을 확인하니 새끼 한 마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게 더 안타까웠습니다. 한 마리가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포식자가 한 번 방문한 둥지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계속 그 둥지에서 살면 다시 포식자의 방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오색딱따구리 부부는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 부부는 어떻게 할까요? 둥지를 떠나겠죠. 새끼를 버려두고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갔습니다. 오색딱따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려고 발소리와 숨소리를 죽이고 귀를 쫑긋 세운 채 조심스럽게 걸었습니다. 높은 가지 위에서 까치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누룩뱀이 나타난 게 아닐까 하면서 주변을 살폈지만 뱀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색딱따구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석양빛이 조금씩 물들기 시작한 숲길은 고즈넉했습니다.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몇 걸음을 채 떼기도 전에 숲길 사이에서 작은 새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까만 물결무늬가 선명한 오색딱따구리 새끼 사체였습니다. 오색딱따구리 둥지가 있던 곳에서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결국 홀로 살아남은 새끼가 며칠 뒤 이소(둥지를 떠나는 것)하다가 멀리 날아가지 못한 채 추락해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누룩뱀
 누룩뱀
ⓒ 고양생태공원

관련사진보기


누룩뱀은 가정파탄범이 되었습니다. 오색딱따구리 부부는 마지막으로 남은 새끼를 버리고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누룩뱀이나 오색 딱따구리, 어느 쪽도 나쁘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누룩뱀은 살아남기 위해 새 둥지를 습격했고, 오색딱따구리는 살아남기 위해 새끼를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딱따구리는 숲속의 나무 의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나무에서 곤충을 꺼내 먹음으로써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곤충이 나무속을 파먹기 시작하면 그 나무는 서서히 말라서 죽어갑니다. 그렇지만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파서 벌레를 잡아 먹으면 처음에는 상처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는 스스로 구멍을 메우고 건강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오색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활기찬 드러밍 소리는 고양생태공원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리는 멋진 연주인 셈입니다.


태그:#고양생태공원, #오색딱따구리, #생태교육센터, #깃대종, #자작나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