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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의 공연.
 '아퀴'의 공연.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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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모두 다 내려놓고 훠이 훠이 올라가자. 애들아 올라가자, 엄마 보러 올라가자, 애들아 올라가자, 아빠 보러 올라가자."

한선희씨의 노래 <애들아 올라가자>가 세월호 팽목 분향소(진도)에서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지난 16일, 4년 전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벚꽃나무 아래에서 졸업사진을 먼저 찍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떠 올리며 자리에 앉았다.

팽목항 선착장에 있는 주인 잃은 신발
 팽목항 선착장에 있는 주인 잃은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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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세 번이나 더 피고 졌지만, 주인 잃은 신발은 아직도 소금기 먹은 바다 바람을 맡고 있었다. '진상 규명! 적폐 청산!'이라 쓴 노란 깃발이 입을 꾹 다문 하늘을 향해 너풀너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색이 바랜 현수막이 있었다.

언니들은 우리와 동갑이 됐다

고창석 선생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적혀 있는 현수막
 고창석 선생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적혀 있는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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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는 다정한 아빠이자 자상한 남편이었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학생들이 우선이셨던, 영원한 '또치샘' 고창석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마지막까지도 학생들을 구출하려고 목이 터져라 외치셨다던,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주신 참스승이셨습니다. 선생님의 그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선생님의 가족들과 수많은 제자들. 국민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진도 국악고등학교 학생들
 진도 국악고등학교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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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때 아이들의 나이인, 진도 국악고등학교 학생 50여 명도 추모 현장을 방문했다. 이들은 이제 동갑이 되어버린 형, 누나, 언니, 오빠를 만날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멈춘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후 4시 16분에 있을 '4.16 세월호 학살 4주기 팽목항 추모문화마당'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날의 참사 이후, 우리의 정신적인 시간은 결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말이다.

때문에 조금은 웃어도 괜찮았다. 면이 익은 사람들끼는 악수도 하고 서로의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잘 살았다는 말보다는 살아보자는 다짐의 악수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기억을 위로하며 자신의 역할을 찾는 자리이기도 했다.

추모 행사의 시작은, 전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퀴'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장구와 북 등에서 웅장하게 울리는 소리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사람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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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묵념 의식이 진행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오른손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그 음악이 생소한 청소년들도 입을 웅얼거리며 따라 부르려 애를 쓰는 눈치였다.

주최 측은 그 사황을 잘 이해하기에, 가사를 미리 선창하여 알려주기도 했다. 참고로 이날 추모 공연의 주최 주관은,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전교조전남지부, 진도민주단체연석회의, 한울남도아이쿱생협에서 맡았다.

다짐을 위해, 잊을 수 없는 세월호에 탑승해 먼 곳으로 여행을 간 아이들 304명의 이름이 호명되기도 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눈시울을 훔쳤다. 그 이름이 애달파서가 아니었다. 그리움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 이름이 가진 두려움과 공포를 체험했던 것도 아니었다. 참사가 있던 날, 먼저 구조된 아이들은 안산 고대병원으로 가게됐다. 무분별한 취재 속에 아이들은 전원 구조라는 거짓 오보의 폭력을 언론에게 당했다. 자살을 시도 했던 아이, 약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 그 과정에서 국가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304명의 호명은 구조된 아이들의 죽은 친구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고, 끝까지 너희의 죽음에 대한 원인은 명명백백 밝히고, 그에 따라 벌 받아야 하는 사람은 벌 받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팽목항을 지켜 주십시오"

4.16 세월호 참사 4주기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하는 진도군민주단체대표자
 4.16 세월호 참사 4주기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하는 진도군민주단체대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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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이번 행사를 취재하고 간 몇 언론사의 카메라도 보았다. 행사의 마지막에, 진도군민주단체 대표자가 읽은 '4.16 세월호 참사 4주기 대국민 호소문'에 귀를 기울여 주는 언론사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현장에서는 말이다.

그 본문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기억과 흔적을 남겨야 한다'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호소문은 아니었다. 견해의 다름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정확한 맥락을 살펴볼 기회까지 축소·왜곡하여 박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진도군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아픈 역사와 그 현장은 소중히 보존해야 합니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고발하는 아우슈비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꽃넋이 서려 있는 서대문 형무소, 6.25 민족전쟁의 아픔이 서린 거제도포로수용소 등이 그러한 현장들입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에 대한 오열과 절규, 탄식과 분노로 가득했던 팽목항은, 전 국민이 함께 아파했던 통곡의 바다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박근혜 청와대와 각료, 해경과 승무원들의 철저한 부패와 무능, 무책임과 방기 속에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침몰한 것이 세월호가 아니라 대한민국호라고 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있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참극이 일어난 지 오늘로 벌써 4주기입니다. 이에 저희 진도군 민주단체대표들은 진도군민과 국민들께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첫째, 국민해양안전관 건립에 대한 저희의 견해입니다. 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을 비롯하여 전국에는 최소 54개의 안전체험관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학생들이 수영을 하지 못해 일어났습니까? 승무원과 일반 승객들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했습니까?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 많은 안전체험관을 두고 또 해양안전관을 짓겠다고 합니다. 이는 참사의 원인을 승객들의 안전부주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실을 호도하는 국민해양안전관 건립에 반대합니다.

둘째, 진도 팽목항 4.16 추모공원 조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곳 팽목항에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후원물품을 보내준 이들, 수백만의 방문객들, 미수습자의 수습을 촉구했던 시민들, 기다림의 공연과 기억예술마당을 해오고 있는 예술인들이 그들입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유가족이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는 고통과 희생과 봉사, 진상규명의 염원이 담긴 팽목항 일대의 시설물들이 온전히 보전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곳 분향소 일대의 4.16 추모공원 조성을 희망합니다.

셋째, 세월호 선체 보존에 관한 사항입니다. 현재 보존 범위를 두고 여러 안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선체를 일부만 남긴다든지, 배를 분해하여 전국 각지로 보낸다든지 하는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자체가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에 선체는 온전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날의 슬픈 역사를 온저히 기억하고 추모하며 참사의 교훈을 후대에 제대로 전하기 위함입니다. 최근 세월호 거치 장소로 거론되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해당 지자체마다 찬반양론이 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어떻게 보존하느냐?'하는 문제는 국민들이 지혜를 모아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진도군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4.16 참사의 아픔이 오롯이 현존하는 이곳, 팽목항을 지켜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2018년 4월 16일
진도군민주단체대표자 일동"


행사는 질서 정연하게 마무리 됐다. 행사에 참여했던 일부 사람들은 분향소에서 조금 떨어진 팽목항 선착장으로 가기도 했다. 기억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보기도 하고, 하늘나라 우체통 부근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의 시간을 보냈던 날이었다.


태그:#진도, #팽목항,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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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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