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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와해 공작을 담은 문건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새삼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모양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이어 내려오는 삼성만의 '전통'이다. 그러나 이번은 양상이 다르다. 삼성은 지난 2016년 10월 국정농단이 불거지고, 급기야 2017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자 미래전략실 해체 등 쇄신에 들어갔다. 그러나 무노조 경영만큼은 놓지 않았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이후에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무노조 경영에 집착했음이 JTBC뉴스룸 보도로 드러났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이후에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무노조 경영에 집착했음이 JTBC뉴스룸 보도로 드러났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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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JTBC <뉴스룸 >은 지난 3일 "검찰이 확보한 문건 중, 지난해 9월 작성된 문건에는 '무노조 경영 원칙을 지속한다'는 취지의 문장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결국 삼성은 그룹 후계자가 구속되고, 이후 쇄신을 약속한 와중에도 무노조 경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삼성의 비리가 불거질 때 마다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용철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고, 이 같은 폭로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김 변호사는 2010년엔 자신의 폭로와 삼성 재직 당시 겪은 일들을 담아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내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책에서 무노조 경영의 폐해도 상세히 언급했다. 김 변호사는 무노조 경영이 '글로벌 스탠다드'와 견주기도 민망한 후진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삼성 경영진들의 생각은 달랐다. 김 변호사의 말이다.

"하지만 '무노조 경영'은 삼성에서 신앙과 다름없었다.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생각이 견고했다. 이들은 노조라는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삼성중공업에 노동조합 대신 노사협의회가 있었는데, 여름마다 회사에서 노사협의회 간부들에게 영양제까지 챙겨줬다. 일종의 '내부매수'인 셈이다.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상관없으니, 노조만 아니면 된다는 게 삼성 고위층의 경영신조였다."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상관없으니, 노조만 아니면 된다'는 대목에 주목해보자. 지난 8일 JTBC <뉴스룸 >은 "삼성이 노조원을 해고할 목적으로 지난 2014년 3월 부산 해운대 센터와 충남 아산 센터, 경기 이천 센터 등 3개 협력 업체의 문을 닫게 했고, 폐업과정에서 업체가 부담해야 할 억대의 권리금이나 부대 비용을 삼성이 대신 지불했다"고 검찰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는 걸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무노조 경영, 언젠간 임계점 이를 것"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지난 2007년 11월 26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에서 삼성물산 해외비자금 조성 증거, 이건희 회장 부인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 미술품구입에 비자금이 사용된 내역, 참여연대에 관계하고 있는 변호사들을 관리할 '로비지침' 등을 공개했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지난 2007년 11월 26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에서 삼성물산 해외비자금 조성 증거, 이건희 회장 부인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 미술품구입에 비자금이 사용된 내역, 참여연대에 관계하고 있는 변호사들을 관리할 '로비지침' 등을 공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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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영원히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 이유는 이랬다.

"삼성은 더 이상 국내재벌이 아니다. 물론 금융이나 서비스 부문은 사실상 국내기업이지만, 제조업 부문은 그렇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에서도 삼성식 '무노조 경영'을 계속 고집하는 게 가능할까. 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 통제가 다른 나라에서도 계속 통할까.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게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가능할 리는 없다. 노조 때문에 생기는 비용 보다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더 큰 상황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 노조 방지 비용은 눈덩이처럼 쌓여간다. 이런 비용을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머지않아 올 게다."

"삼성이 노조 설립 시도를 막기 위해 쓸 수 있는 돈에도 한계가 있다. 비자금을 동원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노조 방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노조를 허용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삼성은 위기에 빠진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강조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노조를 허용하게 될 때 받을 충격도 커진다."
김 변호사의 경고대로라면 무노조 경영은 삼성이 안고 있는 리스크 중 하나인 셈이다. 실제 이 같은 경고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은 10일 자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룹 내에 노조가 확산되는 건 이미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 "이제는 지금까지 해왔던 '무노조 경영'은 삼성 스스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닫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문제는 검찰을 비롯한 사정 당국이다. 노조파괴 문건은 이미 5년 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S(에스)그룹 노사전략'이란 제목으로 공개한 바 있었다. 그러나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비단 노조파괴만이 아니다. 비자금, 불법승계 등 삼성 관련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고, 삼성은 법망을 빠져나갔다.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전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사법부의 삼성 봐주기는 여전하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지난 2월 "최고 권력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을 겁박해 뇌물로 나아간 사건"으로 규정하고, "전형적 정경유착을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없다"며 이재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어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의 중형을 내렸지만, 삼성 관련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단을 내렸다.

삼성 비리를 세상에 알렸던 김 변호사는 현재 광주교육청 감사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KBS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추적60분>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김 변호사는 거절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자신의 폭로 때문에 아들마저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지금이 삼성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

"재벌이 온 사회를 장악하고 흔드는 이 현실은 경제정의 질서와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태롭게 하는 불의이며 새로운 폭력입니다. (중략) 삼성의 로비를 통해 부끄럽게도 하수인이 된 권력기관의 잘못을 우리는 쓰라린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삼성의 불법을 애써 외면하고 때로는 은폐하고 있는 검찰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이 기회에 지적합니다. 따라서 삼성과 검찰이 스스로 허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이 기회를 꼭 포착하시기 바랍니다."
위 인용문은 2007년 10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김용철 변호사의 1차 폭로 직후 발표한 성명이다. 김 변호사가 폭로했던 삼성 비자금, 그리고 비정상적인 경영승계, 노조파괴는 10년이 지난 지금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사법부, 그리고 언론은 삼성에 우호적이다.

10여 년 전 삼성과 이를 위시한 재벌의 전횡을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당시 검찰과 조준웅 특검은 이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 버렸다. 5년 전,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바로잡을 기회가 한 번 더 찾아왔으나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 한국 사회는 더욱 흉물로 진화한 삼성을 마주대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정부마저 바로잡지 못하면, 삼성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의 희망이 사라질 위험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10년 전 정의구현사제단의 성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검찰의 의지가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가까운 시일 내에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명예회복도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우리 사회는 그에게 큰 빚을 졌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자식마저 취업시키지 못한 아비라며 자책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를 복권시켜야 할 시점이다.


태그:#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생각한다, #무노조 경영, #이재용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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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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