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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김종건은 1960년에 태어났고 지난해 4월, 30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퇴직자가 되었다. 기자의 지인 중엔 퇴직 기념 부부 동반으로 유럽 여행을 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김종건은 퇴직기념으로 편안한 유럽여행이 아닌 1000km의 국토를 하루에 40km씩 24일간에 걸쳐 도보로 배낭여행하는데 성공했다.

배낭 안에는 텐트, 버너, 코펠, 라면, 햇반 등을 넣고 이곳저곳에서 야영을 했다. 이 도보여행을 위해 그는 4개월간 체력강화 훈련을 하기도 했고 그것은 그 몸의 좋은 토양이 되었다.

50대 후반 '청년'의 이런 무모한 도보여행계획에 그의 아내는 반대했다. 그러나 그가 막상 도보여행을 시작하자 아내와 두 딸은 반대하면서도 24일간 매일매일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전폭적으로 응원하고 따스하게 지지해 주었다.  

 저자 김종건
 저자 김종건
ⓒ 김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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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017년 퇴직한 50대 후반 저자가 24일간 우리국토 구석구석 1,000킬로미터를 걸은 기록이다. 우리 역사와 자연을 둘러보고 회상하며 꼼꼼하게 기록한 소중한 자료다. 낙동강과 민간인 학살지 노근리를 걸으며 한국전쟁의 비극을 생각했고, 남한산성을 걸으며 병자호란의 아픔을 되새겼다. 또 옥천읍을 걸으며 민족분단의 희생양이었던 시인 정지용의 삶을 돌아보았다.

길을 걸으며 논에 우렁이를 뿌리는 시골 할아버지를 보았고, 읍내 초등학교의 해맑은 아이들의 눈을 응시했다. 또 수 백 년 간 마을 어귀를 지키는 고목들을 보며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

이 책에는 이렇게 50대 후반 저자의 오래된 상념과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저자와 동갑인 기자는 이 책을 읽으며 1970, 80년대의 우리나라 시골마을의 추억과 향수에 대한 기억들이 소록소록 떠올랐다. 그래서 이 책은 마치 과거를 회상하고 상념에 젖어 빛바랜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것 같은 뭉클한 느낌을 준다.

지난 50여 년 간 동시대를 살면서도 기자는 저자와 전혀 다른 곳에서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왠지 저자가 오랜 친구처럼 여겨지고 아주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지난 일주일간 저자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이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시인 정지용 생가
 시인 정지용 생가
ⓒ 김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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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간 1,000km의 국토종횡단 도보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했는가?
"첫째, 본질적인 질문으로 '지금까지 나는 누구로 살아왔나?'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둘째,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퇴직 후 편히 먹고만 사는 게 능사인가? 그럼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셋째, 옛날에는 노인이라고 칭할 나이지만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나, 그걸 다시 확인해야 했다."

-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정지용 생가 인근에서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쫓았다는 얘기가 생각났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독자들에게 설명하면?
"삼국지에 보면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마의가 쳐들어가는데 제갈량의 후계자인 강유와 맞닥뜨린다. 이때 사마의는 제갈량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 없어 제갈량이 무슨 비책으로 나올지 몰라 머뭇거린다. 이 얘기는 제갈량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나관중이 소설화 한 것이리라. 정지용 생가 주변은 간판마다 정지용의 시가 새겨져 있고 정지용의 이름을 이용하여 마을을 알리며 먹거리나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죽은 정지용이 마을 사람들에게 이름을 팔아먹고 살라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현상에 눈을 뜨며 모순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저자가 24일에 걸쳐 도보여행한 1천킬로
 저자가 24일에 걸쳐 도보여행한 1천킬로
ⓒ 김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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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부터 와보고 싶었던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민간인학살 장소를 비로소 은퇴 후에 도보로 첫 방문하며 든 감회가 있었을 것 같은데?
"노근리 학살 사건을 알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한 즈음이었다. 나의 집은 가난한 편에 속했기에 어렵사리 입학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는 게 목적이었다. 그건 어느 정도 달성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회적 현상에 눈을 뜨며 모순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제구조,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부터 반민특위,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 등 과거의 역사를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노근리 사건도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는 매우 충격이었다. 그런 사건을 공론화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 당시 언젠가는 총탄 자국의 굴다리를 보러 가겠다고 다짐했다."

- 낙동강을 건너 왜관 읍내에 닿자마자 다시 호국의 다리를 건너 낙동강을 또 건넜고 "일부러 호국의 다리를 왔다 갔다 걸어 봤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이 또한 6.25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였다. 피아의 구분 없이 강을 사이에 놓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했을 당시를 회상하고 싶었는데 그건 강대국의 대리전쟁이라는 느낌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족상잔의 전쟁이 외세(당시의 국제정세를 보면...)에 의해 발생된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70년 전의 국제정세를 되돌아보며 걸었다."

 책표지
 책표지
ⓒ 김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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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전고개의 오르막길에서 만난 스님이 "왜 그렇게 걷느냐?"고 물었을 때 "스님은 왜 사세요?"라고 되물었는데, 결국 "살기 위해서" 또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 걸은 것인가?
"아니다!! 실제로 많이 가지지도 않았는데 난 가끔 지금 가진 게 너무 많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산다는 건 많이 갖고 물질적으로 만족한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그래서 무소유의 스님이 부러워서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 1,000km 국토종횡단 도보여행 계획에 대해 부인이 처음부터 반대하셨는데 어떻게 설득 하셨나? 또 여행 후 부인, 또 따님들과의 사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내의 반대 이유는 내가 무모한 도전을 하니까 걱정돼서 하는 것이었다. 아주 순순한 맘으로 남편을 걱정해서다. 아내의 그런 맘이 평생 나를 지탱해준 버팀목이다. 아내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감사해야지. 그래서 난 에둘러 표현하여 걱정 안하게 천천히 걸을 것이며 매일 영상 통화하고 저녁에 보고도 할 것이며 아내가 걱정하는 끼니도 잘 챙겨 먹겠다고 했다. 그러니 걱정 말라고. 그리고 매일 저녁 그날의 일들을 기록하여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고 걸으면 24일이 늘 아내와 같이 있는 느낌이 들 것이기에 걱정을 덜 할 거 같아서 그렇게 설득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24일의 걷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아내와 두 딸은 아빠의 도전을 맘껏 축하해줬다. 그리고 그간 틈틈이 기록했던 것을 가지고 책으로 출간한다고 하자 놀라며 반신반의 했다. 걷는 것도 힘들지만 책으로 낸다는 건 더 무모한 도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3개월간 글을 쓰기 위해서 인근 광진정보도서관에 매일 출근(?)할 때 아내는 손수 도시락을 싸주며 격려했다. 그리고 두 딸은 중간 중간 초고를 검토하며 독자로서 건의사항을 말해 주었다. 문학을 전공한 큰 딸은 문장전반에 대해, 미술을 전공한 작은 딸은 사진이나 페이지 레이아웃 등의 부분에 아낌없는 조언을 주었다.

우리 가족은 이번에 책을 내면서 엄청난 가족애를 발견했고 가족의 사랑은 물론 이성적인 업무교류에서도 동업자로서 각자가 훌륭한 역할을 했다. 우리 집은 정으로만 묶인 그런 집이 아닌 그 이상의 완전히 다른 가정이 되었다."

"시야가 넓어지고 조급함에서 해방된 기분이다"

 저자. 부산역 앞에서
 저자. 부산역 앞에서
ⓒ 김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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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여행 전과 비교 해 여행 후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
"첫째, 장년의 자신감이 들었다. 이제 60~70살 까지 역동적인 삶을 살 준비를 했다고 할까. 둘째, 우리 가족 간의 더욱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 것 같다. 셋째, 인생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넷째, 내 시야가 넓어지고 조급함에서 해방된 기분이다. 나 자신이 그다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겸손함도 깨달았다."

- 걸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많이 생각했을 것 같은데?
"가족에 대한 생각이 가장 많았다. 가족은 내가 퇴직 후에도 함께 할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두 딸이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도 자기 길을 잘 가며 자기만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길 기원하며 걸었다. 아내와는 이번 걷기를 통해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뒤에는 오손 도손 같이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둘이 앉아 커피 한 잔 할 그런 날을 기다리며 걸었다.

이 모든 게 남편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회피하지 않고 앞으로 강하게 살아 나가고 싶은 나의 소망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내가 고민한 것은 가정에서는 문제가 없이 행복하겠지만 이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며 인생을 마무리 하면 다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가정에 충실하겠지만 작으나마 나 자신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걸었다. 그래서 코이카(국제협력단) 지원도 생각하게 된 거고. 자연에 대해서는 늘 경외하는 맘으로 걸었다. 우린 자연을 너무나 우습게 생각한다. 거대한 자연을 숭배하며 걸었던 24일이었다."

- 걸어서 4대강을 다 다녀오셨는데 그러면서도 책에서 "걸으며 4대강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고 내가 무슨 잣대로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저 눈에 보인 게 전부였기에 그랬다. 그 당시 느꼈던 자연 그대로만 맘속에 간직하고 싶다. 다시 생각하고 다시 가보려 하면 아마도 채색하고 덧칠을 하지 않을까 싶다."

"걸으면서 나, 인간, 자연... 이런 것에 대한 물음을 한다"

 낙동강 호국의 다리
 낙동강 호국의 다리
ⓒ 김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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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에서 실명된 목사님을 만나고 "성자를 발견했다... 삶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고 했는데? 그 생각의 상념을 좀 더 밝히면?
"걸으면서 가끔은 나, 인간, 자연... 이런 것에 대한 물음을 한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 걷기 시작할 때, 아주 힘들어 잠시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그때마다 답은 없다. 내가 삶이 어떻고 얘기할 입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삶이 구차해지지는 말자는 다짐은 했다. 그러다가 눈 먼 목사를 보니 내가 고민하고 질문하고자 했던 상대를 바로 실물로 앞에서 만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을 보면서 거대한 자연에서 느꼈던 경외감과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 "인생은 여행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1,000km 국토종횡단 도보여행을, 부인의 반대 속에서도, 무사히 끝내고 난 후 감회가 많을 것 같은데?
"아내의 반대는 나의 안위를 위한 반대였기에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게 나를 대해준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그런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기는 한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은솔이 한솔이 두 딸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졌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 가족이지만 4명 각자가 다름이 있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 것도 좋다.

가족이기에 의견도 같아야 하고 자녀들의 목적도 부모의 뜻에 비슷하게 가야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자기 생각을 죽이는 그런 집이 아니다. 우리 집은 아주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가정이 되었다. 어떤 논제에 대해 4명이서 자유스런 토의를 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도 이번 일을 계기로 된 것이다. 대화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합리적 사고로 대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책을 출간하면서 가족 간 회의를 통해 논의가 여러 번 있었고 자유스런 의견을 발표하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가족 간에도 다름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번 걷기와 책의 출간은 우리 집과 가족이 많은 걸 얻게 만들었으며 미래지향적인 가정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역시 책의 내용처럼 예전에는 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을 이젠 새롭게 도전하며 즐기는 분위기도 많아졌다. 이 모든 것에 아내와 두 딸에게 늘 고마워한다. 아버지가 되긴 쉽지만 가정 속에서 대화의 상대자가 되긴 쉽지 않은 아버지의 존재, 그런 존재는 최소한 우리 집에서는 없어졌다."


50대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 - 혼자가 되었던 1,000km의 걸음과 24일의 시간

김종건 지음, 책미래(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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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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