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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가 정신병자가 되어 버린 아들을 찾아서 끌어안으며 통곡하고 있다.
▲ 4.3 퍼포먼스의 한 장면 늙은 어머니가 정신병자가 되어 버린 아들을 찾아서 끌어안으며 통곡하고 있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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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3시 경 서울 광화문 지하도 곳곳에는 회색빛으로 바랜 바지와 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옷은 물론 머리카락과 신발까지도 머드팩을 하고 피흘리며 쓰러져 있거나 쪼그리고 넋나간 표정을 지으며 처절하게 앉아 있었다.

웃옷에는 동백꽃 한 송이가 새겨져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건 70년 전 제주 4.3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어보았더니, 4.3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도권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4.3 의 모습을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있다.
▲ 광화문 지하도에서의 4.3 퍼포먼스 수도권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4.3 의 모습을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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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으로 나와서 4.3분향소에 들러 분향을 하고, 주변에 전시되어 있는 4.3 관련 홍보물이며 책자, 영상 등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에서 좀 전에 보았던 그 회색빛의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행색과 행동을 살펴보았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머니, 남녀 젊은이 등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하면서 서서히 걸어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제 4.3이 '대한민국의 역사'로 자리잡고, 그 진상들이 밝혀지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됨을 환호하는 대동의 한판 춤
▲ 4.3 대동 춤 이제 4.3이 '대한민국의 역사'로 자리잡고, 그 진상들이 밝혀지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됨을 환호하는 대동의 한판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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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에는 애절한 춤을 추거나 음습한 소리를 내면서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70년 전 제주 4.3 때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의 절규를 복장과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3만 명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하여 희생이 되었지만 이념의 굴레를 씌워 입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그 긴 세월을 칙칙한 갯벌흙 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광장에 모여 무언극을 펼치더니 시간이 좀 지나자 그들은 웃옷을 벗어 던지고 각양 각색의 긴 천을 흔들며 풍물패의 음악에 맞춰 신나게 한판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이제 억울하게 짓눌리고, 숨겨지고, 금기어가 되었던 4.3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억울한 희생에 대하여 제대로 밝혀내고, 보·배상도 받아 역사의 당당한 기록으로 쓰여지는 것을 퍼포먼스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였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인 김현주씨에게 참가하게 된 경위 등을 물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페이스북을 통하여 지난 3월 달에 자발적 참여자들을 모았다. 4월 3일을 상징하는 숫자인 403명을 목표로 모은 것이다. 따로 연습을 한 것도 없고, 오늘 오전에 모여 복장을 지급받고, 머드팩을 하고 이렇게 진행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모았는데,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형태의 퍼포먼스는 최초로 하는 것이지만 이미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는 시행해 오고 있다." 

광화문 광장 분향소 앞에 마련된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4.3 추모곡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수들이 참여하여 음악회가 열렸다.
▲ 4.3 추모 작은음악회 광화문 광장 분향소 앞에 마련된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4.3 추모곡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수들이 참여하여 음악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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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4.3 해법에 많은 공감

저녁 시간이 되자 광화문 4.3 분향소 앞에서는 4.3 추모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안영석씨 등 5명의 민중가수들이 자신들이 작곡한 제주 4.3을 주제로 하는 노래와 다른 곡 한두 개를 곁들여 불렀다. 안영석씨가 부른 <내 이름은 진아영>이란 곡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왔다. 4.3 때 총을 맞아서 턱이 날아가 없어져 버린 할머니가 평생을 힘들게 살다가 2005년 한많은 인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 할머니의 한을 노래로 담은 것이다. 그 노랫말의 일부를 옮기면,

"나는 턱이 없는지 몰랐어/왜 저들이 총이 나를 쐈는지/나는 씹지 못해 삼켰어/지금도 어딘가 총을 쏠 것만 같아/ 중략 /나는 턱이 없어/이 미친 세월이 삼켰어/내 이름은 진아영/나의 상처를 감싸주던 하얀 무명천/이젠 아픔을 끊어야겠어/나도 말해야겠어"
그러면서 안영석씨는 말했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대립이 있으면 타협을 하고 조정을 하면서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힘을 가진 자가 자기 논리로 정리를 해 버린 사례가 많다. 제주 4.3도 그렇다. 도망갈래도 도망갈 곳도 없는 제주 섬에서 힘, 권력을 가진자들의 자신들의 논리로 짓밟아 버렸다."

그 외에도 '바위처럼' 작곡자인 안석희씨의 <남쪽에 봄이>, 임정득씨의 <기억의 방향>, 손병휘씨의 <붉은 섬>, 김영씨의 <가매기 몰래 식게> 등 제주 4.3을 주제로 한 노래들을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참석자들에게는 이날 불렀던 4.3노래 CD를 무상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김영씨의 곡 <가매기 몰래 식게>는 제주어인데, 표준말로 바꾸면 '까마귀도 모르는 제사'라는 뚯으로 4.3 때 희생된 사람들이 제사 지내는 것조차 숨어서 지내야 할 정도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세월 동안 금기어가 될 정도로 쉬쉬할 수 밖에 없었던 제주인들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란다.

이날 분향소를 찾아 분향을 하고, 4.3 작은 음악회에 참석한 양주에 사는 김재광씨는 말했다.

"제주 4.3을 좌익세력의 무장 투쟁 진압이라는 논리로 몰아간 역대 정권들이 이념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4.3 관련된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더 많은 진실들을 밝혀내고, '4.3 사건'이라는 용어 자체가 남로당 무장 봉기한 날짜에 촛점이 맞춰진 명칭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이후부터, 최소 47년 삼일절 발포에서부터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던 7년 동안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정리해서 그에 걸맞는 명칭이 부여되어야 한다."    

광화문 분향소에 놓여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명의의 꽃
▲ 홍준표 대표의 화환 광화문 분향소에 놓여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명의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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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광화문 분향소에는 여러 정당 대표들이 국화꽃을 보내어 4.3을 추모하고, 제주 평화공원에서의 추념식에도 참석을 하였다. 이날 추념식에 참석하기에 앞서서 '4.3은 남로당 좌익 무장폭동'이라는 페이스북 글을 올려 더불어민주당이나 제주 원희룡 지사 등으로부터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보낸 국화가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광화문 광장에 임시로 마련된 홍보관에는 4.3을 알리는 각종 홍보물과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고, 4.3의 상징인 동백꽃 배지도 나누어 준다.
▲ 4.3홍보관 광화문 광장에 임시로 마련된 홍보관에는 4.3을 알리는 각종 홍보물과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고, 4.3의 상징인 동백꽃 배지도 나누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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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광화문 광장의 4.3분향소는 4월 7일까지 운영이 되며, 그 기간 중에 종교별 추모의식도 진행된다. 4월 6일에는 제2차 4.3추모 음악회가 분향소 앞 광장에서 열리고, <순이 삼촌>의 현기영 작가와 <화산도>의 김석범 작가의 대담도 4월 6일 분향소 무대에서 열린다.


태그:#4.3퍼포먼스, #진아영, #가매기 몰래 식게, #4.3 정명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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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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