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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GM 뉴스가 많아졌다. GM 군산공장 폐쇄와 관련된 기사가 계속 들려온다. 기사를 읽으며 두 해 전, 한국GM에서 정년 퇴임한 노동자 생각이 났다. 그는 자신의 정년퇴임을 맞아 <내 발자국>이라는 제목의 문집을 냈다. 문집을 낸 이는 이근제씨다.

이근제님의 문집
▲ 내 발자국 이근제님의 문집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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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85년 4월 15일 대우자동차에 입사해서 2016년까지 31년간 성실한 노동자로 살아왔다. 현장 노동자가 정년퇴임을 맞아 그간의 회사 생활을 담은 글로 문집을 낸 경우는 흔지 않은 일이다.

한국GM의 전신은 대우자동차다. 대우차는 과거 대우그룹의 계열사로 김우중 회장이 그룹의 대표였다. 김 회장은 1989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제목의 책을 낸다. 이 책을 읽은 젊은이들은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큰 꿈을 가슴에 품는다. 책은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김 회장은 당시 젊은이의 우상이 되었다.

책이 나온 지 8년이 지나고 한국은 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처지가 된다. 그 발단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우그룹이었다. 김우중 회장의 화려한 경영의 뒷면엔 문어발 확장과 200조 이상의 부채경영이 있었다. 한 경영자의 성공 철학을 담은 책은 사람들을 매혹시켰지만 그 신기루는 얼마 가지 못했고 그 기업은 무너졌다. 그리고 그로 인한 모든 고통은 노동자와 국민이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 되었다.

당시 대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린 기사나 책으로 접했다. 대우를 기록한 사람은 기자나 학자, 경영자가 대부분이다. 그곳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직접 쓴 기록은 여태 거의 없었다.

부평 공장 전경
 부평 공장 전경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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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의 표지엔 <내 발자국>이라는 책 제목과 글쓴이의 얼굴 사진이 보인다. 표지를 넘기면 인천 부평 원적산에서 내려다본 GM 공장의 전경이 나온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엔 2001년 글쓴이가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던 사진이 있다. 사진 아래엔 '내 인생을 바꾸게 된 계기는 전태일문학상과 풍물이다'라는 글이 보인다.

31년간 일했던 일터를 떠나는 노동자는 과연 어떤 글로 현장을 기록하였을까? 입사 첫날의 기억은 이렇다.

입사하던 첫날부터 파업이라니....... 아는 사람이 그랬다. 한 달이 갈지 두 달이 갈지 모른다고. 시골에서 무작정 올라와 한 달 만에 구한 첫 직장인데 첫날부터 파업이라니.... 아는 사람도 없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행히 파업이 열흘 만에 끝나 출근을 하게 됐고, 회사와 집밖에 모를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다. - < 내 발자국> 책 중 들어가는 이야기에서


글쓴이는 입사 첫날부터 파업하는 상황에 접하면서 닥쳐올 자신의 고난을 눈치 챘을까? 아마 눈치를 못 챘을 거 같다. 글쓴이는 취미로 풍물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1999년 좋아하던 풍물을 그만두고, 월간 <작은책>에서 글쓰기를 배우면서 자신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게 된다.

더 많은 노동자가 글쓴이와 같이 글을 쓴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는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왔을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현장과 당사자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말로 할 힘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삶이 진솔한 글이 되어 다른 사람이 읽게 된다면 그 일을 겪지 못한 사람들도 공감을 하고 함께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될 수 있게 된다.

회사 안에도 닭장차와 전경들이 무척 많이 보였다. 전경 훈련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조립사거리까지 왔다. 전에는 조립사거리와 본관, 그리고 복지화관에서 내려주었는데 무조건 다 내리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렸다. 경찰이 내리는 사람들 출입증을 또 확인했다. 와, 이거 수갑만 채우지 않았지 완전 죄인 취급이네. 아무리 해고자가 끼어 들어올지 모른다고 하지만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닌가? - 2001년 3월 7일<내 발자국> 본문 85쪽
 
1750명의 동료가 해고되고 첫 출근 하던 날 쓴 글이다. 글엔 팽팽한 긴장감이 들어있다. 일터는 어제와 달리 전경 훈련소가 되어 버렸고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회사의 위기가 닥치면 그 위기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 된다. 임금삭감으로 휴직으로 또는 해고로 글쓴이도 휴직 기간 건설현장의 잡부 일을 구하러 다녔다.

그런 생생한 일이 문집에 남겨져 있다. 어떤 이에게는 기사 한 줄에 불과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겐 큰 고통이 되기도 한다. 1750명의 해고도 신문엔 한 줄에 불과하지만 1750명의 삶에서 이 한 줄의 문장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불행이 된다.

나를 부르네
...
서문 밖에서 해고조합원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와
구호가 들려온다.
나를 부르는 소리로 들린다.
달려가 함께 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듣기만 한다.
- 2001년 4월 17일 94쪽

 
'나를 부르네'에는 해고된 동료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글쓴이가 동료에게 느꼈던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다. 한동안은 부채의식이 남은 노동자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겨웠을까?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또 언제 잘려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GM은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한국 사업을 줄이려 하고 있다. 글쓴이는 일터를 떠나서 정년 퇴임을 했지만, 그의 동료들은 여전히 그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누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우린 다시 한번 과거의 대우차 정리 과정을 복기해야 한다. 뭘 잘못한 것이지. 복기의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의 기록은 더없이 소중할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은 좋아진다.


태그:#GM,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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